# “준비하시고, 쏘세요!” 90년대 초반 주택복권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일요일 점심 무렵이면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자신이 산 번호의 과녁에 화살이 꽂히길 기도했다. 대중의 관심을 입증하듯 주택복권 추첨방송에는 항상 유명 연예인이 함께했다. 발사 버튼을 누르는 그 연예인의 손에 흥망성쇠가린 셈이다. “에잇, 다신 저 사람 나오는 드라마 보나 봐라!” 방송이 끝난 후 추첨한 연예인을 칭찬하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복권은 꿈이다. 1등에 당첨되기 힘들다는 것은 복권을 사는 사람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는 액땜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복권을 산 사람들도 그때부터 부자가 되는 꿈을 꾼다. 으리으리한 집을 장만하는 꿈, 근사한 자가용을 사는 꿈, 남국의 섬에서 낭만을 즐기는 꿈. 이런 꿈을 꾸며 서민들은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곤 한다. 따라서 복권은 서민과 함께 성장했고 시대의 단면을 켜켜이 담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동욱 기자
/사진=뉴시스 박동욱 기자

◆ 로또시장 ‘대박’ 로또판매권 ‘대대박’
복권시장은 지난 2002년 로또복권이 등장한 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등 당첨금이 판매규모에 따라 제한 없이 오르기 때문에 사람을 열광하게 한다. 로또 역사상 최고당첨액은 407억원으로 단숨에 부자로 거듭나기 충분한 금액이었다.

이에 힘입어 로또 판매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로또 판매금은 3조489억원으로 지난 2010년 2조4316억원에 비해 6000억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복권매출의 91%를 로또가 담당하는 것도 인기를 방증한다.

로또시장이 커지자 로또를 팔아보겠다는 사람도 폭증했다. 지난 2일 나눔로또 측에 따르면 올해 신규 로또판매인 650개소를 모집하는데 무려 8만여명의 지원자가 모였다. 경쟁률만 127대 1이다. 로또판매인 자격은 장애인, 국가유공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한부모가족 세대주 등에게 우선계약권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룬 것.

로또판매인으로 뽑히는 것이 로또 당첨과도 같아진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구조 덕분이다. 지난해 로또판매점의 평균 수입은 연 2795만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로또 ‘명당’으로 소문난 곳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또판매권이 황금알을 낳는다는 인식이 퍼지자 암암리에 판매권을 거래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로또판매인 자격을 얻더라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사업장을 차릴 형편이 안되는 취약계층은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상점 주인에게 로또판매권을 위임하거나 매각하는 것이 이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명당으로 알려진 로또판매점 10곳의 근처 부동산에 판매점의 거래가와 권리금 등을 문의한 결과 편법거래이기 때문에 시세를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로또판매점은 장애인을 비롯한 특정계층만이 거래를 할 수 있는 게 특징”이라며 “따라서 특정지역과 특정계층 안에서만 권리금 등의 시세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 대표는 “이런 특성 때문에 한번 1등이 배출된 판매점의 경우 약 2~3개월간 프리미엄이 급증하는 과열현상이 나타날 때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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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팍팍한 삶에 소소한 재미를
그렇다면 사람들이 복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또 복권 당첨은 ‘인생역전’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복권 판매는 늘어날 가능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경제가 불황일 때 복권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나온 이유기도 하다. 실제 최근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졌음에도 복권 매출이 꾸준히 증가한 점 역시 이 속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는 이런 통설이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긋는다. 복권위가 지난해 발간한 ‘복권백서’에 따르면 복권이 잘 팔리는 시기는 새로운 방식의 복권이 출시됐을 때다. 오히려 지난 1998년 IMF나 2008년 경제위기 당시 복권 매출이 정체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만 놓고 보면 경제성장과 복권 판매는 반대로 움직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등록된 외부감사대상 법인기업 1만6300개의 올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감소했다. 2분기도 역시 하락세를 이어가며 4.3% 줄었다. 부진한 실적에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자 가계도 지갑을 닫았다.

일반소비자의 소비성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의류판매액은 지난 8월 기준 전년 동기보다 9.7% 떨어졌다. 화장품·신발·가방 등의 매출도 7~8% 줄었다. 반면 복권판매액은 지난 2011년부터 꾸준히 3조원 이상을 기록하며 성장했다. 올 상반기 전체 복권판매액은 1조7700억원을 기록, 지난해 상반기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고 올해 목표판매액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

특히 연애·결혼·출산에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 소위 ‘5포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에서 복권을 구매한 비율이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지난 2013년 기재부의 요청으로 한국갤럽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복권을 구입한 경험’ 비율은 각각 53%, 61.4%로 집계됐다. 지난 2009년 조사에서 나온 20대 43.8%, 30대 58%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늘어난 셈이다.

경제불황으로 소득은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삶이 점점 더 팍팍해지자 젊은층도 인생역전 꿈을 꾸는 재미를 복권에서 찾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매주 복권을 구매한다는 이철웅씨(31)는 “월급으로 전세대출 갚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복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 소소한 희망이 생긴다”며 “당첨되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