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선 아래로 추락했다. 세계 금융위기 한파로 33달러선까지 떨어졌던 지난 2009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원유생산량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일부 산유국의 강경한 증산책에 유가 하락세가 가파르다. 유가가 20달러선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일부 산유국이 일종의 고육책을 꺼냈다. 단기적 수익악화를 감수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미국 셰일산업을 고사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공급과잉이 심화되면 세계경제 위축은 물론 OPEC 내 부도국가 속출 가능성이 높다. 과잉생산과 저유가 전략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감산합의 불발 중심에 선 ‘이란’

지난 9일 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배럴당 37.1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북해산 브렌트유와 중동산 두바이유는 각각 배럴당 40.11달러, 36.4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달 40달러선을 겨우 지켜내는 듯했지만 이달 들어 다시 무너졌다. 지난 2013년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유가가 반토막 난 데 이어 더욱 고꾸라진 셈이다.

그동안 12개 회원국들은 하루 생산한도를 3000만배럴로 정했지만 실제로는 3150만배럴을 생산했다. 이로 인해 150만배럴가량이 과잉공급되면서 약 30억배럴의 재고가 생겼다. OPEC이 원유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며 감산안을 들고 나온 배경이다. 생산량을 줄여 원유가격을 올리자는 것. 실제로 OPEC은 1970년대에 감산책을 펼치며 두차례에 걸친 유가파동을 불러왔다. 이후에도 상당기간 감산책으로 고유가를 유지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4일 OPEC의 감산 합의가 불발되며 국제유가 하락세는 더욱 급격해졌다. 이날 OPEC 회원국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례회의에서 원유생산량 감산합의에 실패했다. 감산합의 불발의 중심에는 이란이 있다. 이란은 그동안 핵 마찰로 경제제재를 당한 터라 원유판매가 저조한 상황이었다. 이란은 결국 핵을 포기하며 제재를 풀었다. 내년 1월부터 자유롭게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이란은 그동안 팔지 못했던 원유를 쏟아낼 생각에 하루 100만배럴씩 증산을 결정했다.

이 와중에 OPEC이 감산안을 내놨으니 이란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감산정책은 모든 회원국의 합의가 전제된다. 따라서 OPEC의 창립멤버이자 핵심 회원국인 이란이 참여하지 않는 감산은 어렵다. 감산안으로 유가 하락을 막으려면 모든 산유국이 동시에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이란이 생산량을 늘리는 상황에서 나머지 OPEC 회원국이 감산을 단행하면 손해를 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포커스] OPEC발 '유가 20달러 시대' 온다

◆미국 셰일산업 겨냥한 저유가 공세
OPEC의 감산합의에 반대하는 회원국은 이란만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를 더 떨어뜨려 미국 셰일산업을 무너뜨리겠다는 구상이다. 셰일업체들은 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들던 지난 2013년 이후 등장했다. 하지만 유가가 하락한 현재 상황에서는 중동 산유국보다 생산비가 비싼 셰일산업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유가 공세를 지속하면 셰일업체가 결국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게 사우디의 시나리오다.

사우디는 점유율 확대에도 큰 비중을 뒀다. 그동안 잇단 감산으로 OPEC은 물론 사우디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줄었다. 더 많은 원유를 판매해 영향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또한 감산을 하면 셰일업체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된다. 시장점유율이 줄어든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실제로 미국 셰일업계는 저유가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다. 유전정보서비스업체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지난 4일 현재 미국 내 셰일가스 시추공 수는 737개로 1년 전 1920개에 비해 61.6%나 급감했다. 또 올 상반기에만 셰일가스 관련업체 16개가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했다.

사우디뿐만 아니라 이라크도 할당량 설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박리다매’를 해서라도 나라 곳간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형편은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유생산을 늘리고 있다. 거대 원유생산국인 러시아의 증산을 막지 않고서는 OPEC의 감산합의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20달러 전망…10달러 추락설까지

이처럼 유가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세계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원유업체들이 생산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려면 유가가 배럴당 20달러선까지 떨어져야 한다고 전망했다. 현재 세계원유시장에서는 하루 평균 150만배럴의 원유공급이 남아난다. 여기에 이란이 추가로 100만배럴을 쏟아내면 초과공급이 최고 25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가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 이유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OPEC 감산합의 실패 이후 유가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유가가 20달러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골드만삭스의 전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며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 변수 외에도 제반 단기적 변수 역시 유가반등이 쉽지 않을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분석했다.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도 최근 이와 유사한 20달러 하락설을 내놨다. 이번 OPEC 총회에서도 배럴당 20달러 전망이 대세였다. 세계경제 부진으로 원유수요가 줄면 유가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심지어 10달러대 추락설도 등장했다. 미국 셰일업체들이 모두 망하려면 10달러까지 떨어져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 애널리스트는 “문제는 유가 저점을 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라며 “이란 원유생산 증가폭, 달러화 흐름 등 아직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한 변수들이 존재하고 가격변수라는 특성상 투기적 수요 등에 의해 유가 하락 폭이 오버슈팅할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하반기에는 이란의 공급증가세가 둔화되는 반면 원유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유가가 바닥을 찍고 50달러대 중반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