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외도를 이어 온 유명인이 배우자를 상대로 청구한 이혼소송이 기각된 채 형식적인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사례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유책주의에 대해 '가정 유지, 축출이혼의 방지'라는 과거의 가치관만을 강조하여 불행한 가정을 강제로 존속시킨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간통죄가 폐지된 현 상황에서 경제력있는 배우자에 의한 축출이혼을 사실상 막기 어렵기 때문에 유책주의를 유지할 현실적인 필요성도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논쟁 가운데, 대법원도 유책주의 원칙만을 형식적으로 고수하기 보다는,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의 유지의사가 없어 일방적 이혼 또는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유책주의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대법원 2021므14258 판결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의 허용은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보면서도,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고, 이혼청구자의 유책성이 상쇄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진 경우, 오랜 세월이 지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 고통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은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 의사를 판단함에 있어 별거기간 및 별거 이후의 생활관계, 이혼 후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의 사회적, 경제적 상태 등 고려해야할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상대방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거부할지라도, 그 언행과 태도를 종합하여 볼 때 일방적 비난과 소통 거부, 혼인관계의 회복을 위한 부부상담 등 법원의 조치에 정당한 이유없이 불응하는 등의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에게 혼인계속의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생각해 보건데, 유책주의 혹은 파탄주의의 어느 한 관점을 취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상대방 배우자의 보호를 위한 필요에 기한 것으로 보인다. 판례가 진일보적 기준을 제시하기는 하였으나, 모든 사안에 대하여 판사의 재량과 적용에 기대하기보다는 결국 시대의 흐름과 각 가정의 현실을 반영한 입법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파탄에 책임없는 일방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를 중심으로, 혼인 해소를 구할 권리와 혼인파탄에 대한 책임을 조화롭게 고려한 세심한 입법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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