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모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서 직원에게 주력 제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모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서 직원에게 주력 제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면서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방산업체들이 주로 차입이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분 희석을 감수하면서도 유상증자를 택했다. 단순한 재무 건전성 확보 외에 보다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5일 경기 성남 성남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제48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자금조달 방식으로 증자를 택한 이유는 재무 건전성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경쟁사들과 수주전에서 주요 평가 요소인 재무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오는 4월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3조6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확보한 자금은 방산 생산시설 확충, 수출용 무기체계 개발, 글로벌 M&A 등에 투입된다.

글로벌 주요 방산업체들은 자금 조달 시 채권 발행이나 장기 차입을 선호한다. 록히드마틴은 F-35 생산설비 확대에 장기채를 활용했고, 노스럽그루먼도 고정 수주 기반을 바탕으로 회사채를 자주 발행한다. 독일의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정부의 방산 예산 확대 흐름에 맞춰 단기 차입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주로 활용해 공장 증설에 나섰다.

이들과 달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선제적인 자본 확충을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출 중심의 방산 산업 구조 때문으로 추정된다. 수출 계약은 대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며 선지급 없이 생산라인을 먼저 구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채권이나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 현금흐름 리스크와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약 281.3%다. 2020년 216.6%에서 2021년 181.0%까지 줄었다가 해외 수주가 급증한 2022년 286.7%로 다시 상승했다. 2023년 317.2%로 정점을 찍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높은 부채비율이 일부 국가와의 수주계약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역사가 100년 이상 된 주요 방산 기업들과 달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단기간에 성장을 이뤘다"며 "부채율의 증가 속도 또한 너무 빨라 채권 발행 등으로는 재무 건전성과 투자를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정책과의 정합성도 고려됐다. 방위사업청과 산업부가 추진하는 'K-방산 수출전략' 기조에 발맞춰 자본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정부 보증이나 금융지원 혜택을 유리하게 받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차원이다.

향후 글로벌 M&A나 합작법인(JV) 설립 등 전략적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차입금 기반보다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이 해외 진출 시 협상력과 유연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특유의 내부 지분구조를 감안했을 가능성도 있다. 계열사 간 자금거래나 증여가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공개된 유상증자 방식은 자금 조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된다. 이번 증자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 주주인 (주)한화도 참여한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대규모 투자를 단기간 내에 집행할 계획을 세우다 보니 자금 마련 계획에 애로가 있었다"며 "차입을 통한 투자 계획을 고민해 보았지만 이는 회사 부채비율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글로벌 분쟁 확대와 방산 경쟁 심화 속에서 선제적 투자 대응이 필수인 상황에서 재무 건전성을 고려한 유상증자가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