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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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개발업자 A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B는 시세보다 좋은 조건으로 토지·건물을 A에게 매도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A는 한창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개발을 하기 위해 해당 지역 지주들로부터 상당한 면적의 건물과 토지를 사들였다. 그러나 갑자기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고 금리 인상까지 맞물리면서 A는 대출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부진을 버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일부 잔금을 합의된 날짜에 마련하지 못해 계약이 줄줄이 해약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A는 B에게 자금경색으로 계약서상 기재된 잔금지급기일에 잔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통지했고 잔금지급기일을 한차례 연기해 줄 것을 사정했다. 결국 B는 A의 요구대로 잔금지급기일을 연기하는 대신 연기된 잔금지급기일에도 A가 지정된 계좌로 잔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 등의 제공 없이 계약이 자동해약된다는 내용의 특약을 추가로 작성했다. 연기된 잔금지급기일에도 잔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이 사건 매매계약은 자동해약된다는 특약은 유효할까?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이 있을 경우 채권자의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당연히 계약의 효력을 잃게 하고 채무자의 계약상의 권리를 상실하게 하는 취지의 조항을 실권약관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행지체라는 채무불이행 유형으로 채권자가 계약 해제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3가지가 요구된다. 상대방의 이행지체가 있고, 이행최고 및 최고기간내 상대방의 불이행, 해제의 의사표시라는 요건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실권약관은 이 요건을 완화하기 위한 약정이다.

그런데 선이행의무인 중도금지급의무와 달리 잔금지급의무는 일반적으로 소유권이전등기의무와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채무의 경우 상대방에 대한 자기채무의 이행 또는 이행제공이 있어야 위 3가지 조건 중 상대방의 이행지체를 충족할 수 있어 반드시 자기채무의 이행 또는 이행제공이 있어야 한다.

이는 대법원 판례가 일관되게 판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즉 부동산 매매계약에 있어 매수인이 잔대금지급기일까지 그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그 계약이 자동적으로 해제된다는 취지의 약정이 있더라도 매도인이 잔대금지급기일에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매수인에게 알리는 등 이행의 제공으로 매수인으로 하여금 이행지체에 빠지게 하였을 때 비로소 자동적으로 매매계약이 해제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매수인이 그 약정기한을 도과한 것만으로는 대금미지급으로 계약이 자동 해제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


사안은 정해진 잔대금지급기일에 지급을 못하고 지급기일을 연기해 주면서 별도의 자동해약 특약을 한 경우다. 이 경우에도 매도인은 자기채무인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이행제공해야만 해제가 가능한걸까.

판례는 매도인이 자기 채무의 이행제공 없이 해제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라면 예외를 인정하기도 한다. 매도인이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갖췄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매수인의 잔금지급기일 도과사실 자체만으로 계약을 실효시키기로 특약을 한 경우와 매수인이 수회에 걸친 채무불이행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잔금 지급기일의 연기를 요청하면서 새로운 약정기일까지는 반드시 계약을 이행할 것을 확약하고 불이행시 매매계약이 자동적으로 해제되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약정을 한 경우다.

이 경우는 매수인이 잔금 지급기일까지 잔금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매도인의 자기채무 이행제공 없이도 그 매매계약은 자동적으로 실효된다고 봤다.

따라서 사례에서는 연기된 잔금지급기일에는 B가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 제공을 할 필요 없이 A가 지정계좌로 잔금을 지급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자동해약이 된다는 특약에 합의했기 때문에 B는 A가 연기된 잔금지급기일에 잔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특약에 따라 반대채무의 이행 없이도 자동해약을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