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는 한·러 경제 협력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와 지난 7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쿨릭 대사. /사진=장동규 기자
머니S는 한·러 경제 협력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와 지난 7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쿨릭 대사. /사진=장동규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러 대사 "우크라 전쟁, 러시아 용납 못한 서방의 작품"(우크라이나 전쟁)
② 러시아 대사 "한화·루블화 결제시스템 도입하자"(한·러 경제 협력)
③러 대사 "제재로 북한 이길 수 있단 생각은 환상"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국·러시아 관계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양국 관계는 지난달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포탄 이송을 진행 중"이라는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 직후 악화됐다. 양국 관계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갈 포탄을 미국에 판매하기로 했다는 지난해 외신(WSJ) 보도로 이미 한차례 흔들린 바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매체 타스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양국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155㎜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직접 지원하지 않았으며 폴란드를 통해 우회 지원하거나 우회 지원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옮긴 것도 없다'로 요약된다. 또 '미국에 155㎜ 포탄 10만발을 수출한 것은 맞지만 50만발을 미국에 대여했는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가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머니S는 러시아가 정의하는 '레드라인'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 레드라인 넘었다는 증거 못 찾아"

사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육군 무기창고 모습. /사진=로이터
사진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육군 무기창고 모습. /사진=로이터

- 한·러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한국이 반러 체제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각종 대러 제재에 뜻을 같이했다. 한국은 지난해 3월 러시아에 대한 소위 '1차 제재 패키지'에 동참했다. 이후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에도 참여했으며 수출통제품목 명단도 발표했다. 지난해 58개였던 대러 수출통제품목은 올해 700여개로 증가했다. 한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고위급 대화도 사실상 중단됐다. 구체적으로 러·한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와 러·한 지방협력포럼이 중단됐다. 한국은 일방적으로 러시아 직통 항공편 운행도 중단했다. 물론 러·한 교류에 관해 희소식도 있다. 한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양국 교역규모가 감소했으나 우리 통계로는 되레 증가했다. 구체적인 숫자는 언급하지 않겠다.

- 지난해 양국 교역이 증가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유는 러시아가 한국으로 수출한 석유 등 화석연료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 양국 최대 화두는 결국 한국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가는지 여부다. 가정이지만 미국이 155㎜ 포탄 10만발을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하면 한국이 레드라인을 넘는 것인가. 또는 미국이 기존에 보유했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그 빈자리를 한국에서 수입한 포탄으로 채우면 그것도 레드라인을 넘는다고 보는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러시아 고위급에서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다. 한국이 간접, 즉 우회로라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다. 무기 공급이 현실화되면 러·한 관계는 파탄날 것이다. 현재 우리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등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앞으로도 무기 공급과 관련해선 한국 정부가 현 입장을 유지하길 바란다.

- 방금 한국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155㎜ 포탄 10만발을 수출한 것은 레드라인을 넘는 행위에 해당 안된다는 의미인가. 또 판매가 아닌 대여를 조건으로 포탄이 두 차례 이상 미국으로 향하면 러시아의 레드라인을 넘는 것인가.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 미국으로부터 거대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EU와 나토 차원에서도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만 레드라인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아울러 한국 언론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다. 한국 언론은 사회·정치·군 등 국내 소식을 전할 때 보수와 진보 측 입장을 모두 보도한다. 하지만 러·한 관계에 대해서는 그런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러시아와 한국은 파트너국이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러시아 입장을 직접 취재하지 않고 '제3국'인 서방 언론의 시각을 통해 보도한다. 왜곡된 정보가 넘쳐나는 이유다. 지난해 미국이 '러시아는 범죄 국가'라고 선언하자 한국 언론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안타깝다.

"SWIFT 배제… 韓기업, 대러 사업 큰 타격"

사진은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 /사진=장동규 기자
사진은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 /사진=장동규 기자

- 한국 기업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현대차는 지난 2020년 제너럴모터스(GM) 러시아 공장까지 인수하지 않았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기업이 한국의 현대차, 삼성, LG다. 이 세 기업의 대러 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우리에게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길 희망하지 않는다'고 전해왔다. 이와 관련해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한국 기업이 러시아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은 러시아의 탓이 아니다. 미국 탓이다. 한국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서방의 대러 제재 결과물이다. 물론 우리도 서방의 제재에 대한 대응조치를 내놓았다. 다만 우리는 글로벌 기업에 해를 끼치기 위해 이 조치들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불만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워싱턴에 토로해야 한다. 러·한 조선 사업이 대표적이다. 특별군사작전 직전 한국 조선 기업들은 러시아 측으로부터 대규모 사업을 수주했다. 하지만 이 모든 프로젝트는 지난해 대부분 물거품이 됐다. 한국 측의 손실이 거대하다.

- 러시아가 SWIFT에서 퇴출된 탓이다.

▶결국 송금 문제가 양국 교역을 가로막고 있다. 러·한 교류를 가로막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미국 측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러시아는 한국의 훌륭한 협력국이다. 모스크바에 근무할 당시 한국산 컵라면을 즐겨 먹었다. 오리온 초코파이도 러시아에서 큰 사랑을 받는 제품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지금도 모스크바에 법인을 유지하며 지난해 큰 수익을 남겼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양국은 협력하고 있다. 이처럼 양국은 훌륭한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한국 기업들이 서방 기업들과 달리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이러한 한국 기업들을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러·한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가 재개돼야 한다. 러·한 사이 직통 항공편도 필요하다. 직통항공권을 재개하자는 제안서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직통 교통은 동해항과 블라디보스톡 항구를 오가는 페리다. 무려 17시간이 걸린다. 미국은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이미 포기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지 않은가. 지난 2021년 특별군사작전 직전 한국 자동차 기업들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33%에 육박했다. 러시아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해외 브랜드가 삼성이라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러·한 자국 결제시스템 도입 희망"

사진은 지난해 6월(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 모습. /사진=로이터
사진은 지난해 6월(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 모습. /사진=로이터

- 러시아의 SWIFT 퇴출은 앞서 이란의 SWIFT 퇴출을 연상시킨다. 한국 정부는 이란산 원유 구매를 위해 한국·이란 원화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돕기 위해선 한국·러시아 결제시스템 구축이 필요해 보이는데.

▶자국 결제 시스템이 도입되면 양국(러·한) 사이 많은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러·한 양국이 원화·루블화로 교역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이미 루블화 교역 성공 사례를 보유한 국가다. 오늘날 러·중 가스 거래는 대부분 루블화로 이뤄진다. 그러나 결제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무엇보다 양측 정부의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러·한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 재개가 시급한 이유다. 양측 모두 부총리가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무게감 있는 단체다. 현재 한국이 위원회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

- 러시아 중앙은행이 한국 시중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해 교역하는 것이 현실성 있어 보인다.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수출하는 물품의 대금을 원화로 지급받을 경우 미국 재무부의 세컨더리보이콧에 저촉되지 않는다.

▶원화와 루블의 환율 고정 문제 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양국 정부가 동의하면 충분히 성사될 수 있다. 양국을 가로막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러시아는 루블화 교역에 이미 성공한 바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다수의 유라시아 국가와도 (각 국가의) 화폐로 거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