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주52시간제를 유지하며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주52시간제를 유지하며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정부가 주 52시간제 근무제를 유지하되 특정 업종과 직종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주 최대 69시간' 논란을 일으켰던 근로시간제 개편 원안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란 평가다. 정부는 여론을 수렴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합의를 이루기까진 난항이 예상된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간 노사 및 국민 총 60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근로시간제 개편 방향을 설명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고용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을 수정·보완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앞서 고용부는 노사 합의를 전제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근로시간 개편, 장시간 근로 논란에 다시 원점으로

현행 주 52시간제는 법정근로시간 1주 40시간(8시간×5일)에 연장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 총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마련한 개편안은 연장근로시간을 주단위가 아닌 월 52시간(12시간×4.345주)으로 계산해 특정주 연장근로 시간이 12시간을 넘겨도 한 달 연장근로 총량만 넘지 않으면 되도록 기준을 유연화 했다.

하지만 개편안대로라면 특정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면서 반발이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근로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 1752시간보다 149시간 길다. 이런 상황에서 주 69시간이 법적으로 허용되면 장시간 근로가 만연해 질 것이란 우려가 불거졌다.


정부는 주 69시간은 매우 극단적인 상황으로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정부가 기존 노조 대신 소통 대상으로 삼으려던 MZ세대 노조마저 근로시간 개편안을 비판하고 나서자 윤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개편안의 전면적인 수정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설문 조사결과 국민들의 48.2%는 주52시간제로 인해 '장시간 근로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사업주조차 주52시간에 대한 불만이 적었다. 사업주 가운데 '현행 주 52시간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4.5%에 그쳤고 나머지 85.5%는 '애로사항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일부 직종과 업종에서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수요를 확인했다. 1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근로자 41.4%, 사업주 38.2%, 국민 46.4%가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일부 업종'에서만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근로자 43.0%, 사업주 47.5%, 국민 54.4%가 동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방안을 노사와 함께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 3월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선포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주 69시간제' 폐지를 촉구하는 모습. / 사진=뉴시스 최진석 기자
지난 3월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선포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주 69시간제' 폐지를 촉구하는 모습. / 사진=뉴시스 최진석 기자

새로운 개편안 마련까지 시간 걸릴 듯… 포괄임금제 개선은 어떻게?

보완된 근로시간 개편안을 마련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도 참여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재 노정, 노사관계가 경색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업종에 대해서만 연장근로 유연화를 추진하는 방안도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업종과 직종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가 아닌 '월'로 한다면 연장근로시간은 월52시간(12시간×4.345주)이 돼 특정 주에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초안과 큰 차이가 없어서다. 이 경우 특정 업종에 대한 장시간 근로 낙인과 건강권 문제 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근로시간 유연화 대신 '공짜 야근' 관행을 뿌리 뽑겠다면서도 장시간 공짜 노동의 주범인 포괄임금제(고정OT 포함) 자체를 규제하지 않는 점도 향후 논의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수십년간 현장에서 형성된 포괄임금 계약 관행과 노·사, 노·노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포괄임금 계약 자체를 금지하는 입법적 규제는 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야기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포괄임금제를 유지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방안은 익명신고센터 지속 운영과 근로감독 강화, 중소기업에 대한 출퇴근 기록관리 프로그램 무상 지원이 전부다. 고용부는 향후 근로시간 개편안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일한 만큼 확실히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된 현장의 수요와 관행, 다양한 이해관계 등을 고려해 노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