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스페셜 “가면 뒤의 얼굴”편에서는 웃는 인상을 만들기 위해 입꼬리 성형을 하는 한 여성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수술대에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불친절해 보인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던 그녀는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수술을 택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최근 들어서 이런 수술을 받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것이다.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감정노동과 서비스업의 현실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에 따르면, ‘감정 노동’이란 소비자들이 우호적인 느낌을 받도록 그에 맞는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고 관리하는 노동을 지칭한다.

 

감정노동이 주목 받게 된 배경에는 서비스업의 발달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GDP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9.5%에서 2010년 58.2%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서비스업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이 특히 많은데, 상당수가 백화점·대형마트·편의점·항공기·은행 등의 유통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200만명이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중 감정노동자는 6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현실은 그리 좋지 않다. 최근 보도된 대기업 임원의 항공사 여승무원 폭언 및 폭행 등은 감정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당수의 근로자들은 고객들을 대응하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우울증, 대인기피증, 심하면 공황장애로 이어진다고 호소한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당시 유통서비스업 종사 근로자 중 여성은 73.6%, 남성은 51.6%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아직도 감정은 통제의 대상일 뿐

그렇다면 기업들은 감정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관리할까? 많은 유통서비스업 기업들은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친절교육이 강화되었고, 특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고객을 가장한 ‘미스터리 쇼퍼’와 같은 현장 관리감독도 병행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장 관리감독을 통해 불량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를 막자는 취지이지만, 감독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되면서 상당수의 근로자들은 항상 친절함과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받고 있다. 

또한 국내 서비스업체들에서 ‘고객만족이 매출과 직결된다’는 고정관념을 강조하면서 감정노동자들은 블랙 컨슈머의 횡포를 감수해야 한다.

 

블랙 컨슈머에 대한 자체 업무 규정(매뉴얼)이 있지만, 주로 고객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며,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나 불쾌한 언행에 대한 대응이나 규제가 거의 없다.

 

예컨대, 백화점 화장품점의 판매 방침으로, 고객이 컴플레인 문제로 전화로 욕설을 할 경우 화가 해소될 때까지 가만히 듣고 죄송하다고 이야기 하라고 하고 있다.

 

만약 고객과의 마찰이 발생할 경우, 상급자로 이관하거나 대응 전담팀(고객처리센터, 민원팀)에게 인계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블랙 컨슈머 대응 방침으로 주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가령, 어느 백화점은 블랙 컨슈머 대응 방침으로 “지금 하시는 행동이 형법 **조에 저촉될 수 있으므로 자제 부탁 드립니다”라는 주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소수의 기업에 불과하며 상당수의 감정노동자들은 불량고객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사후관리 역시 미비한 수준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보상은 미미하다.

 

가령 감정노동 수당, 심리상담 프로그램, 감정노동 휴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은 소수의 기업들에 불과하며 최근에 도입된 경우도 많았다.

 

2006년 로레알코리아의 ‘감정수당’ 지급을 시점으로 감정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들은 일부 외국계 명품·화장품 기업들(샤넬·클라란스·엘카코리아·시세이도 등 7곳)이 대부분이었고, 국내 기업으로는 교보·핫트랙스와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 등이 있었다.

 

이는 감정노동에 대해 국내 기업들의 얼마나 소홀히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외부 고객만큼 내부 고객의 미소도 중요   

따라서 유통서비스업 기업들은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에 대한 사후관리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감정노동자들은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중요한 근로자로써 이들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면 근로자들의 사기와 충성심을 떨어뜨릴 것이다. 유통서비스업에서 이직률이 높은 이유도 이런 열악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서비스직 종사자의 이직률이 2011년 31.3%인 반면 사무관리직은 14.4%에 불과했다.

근로자들의 불만과 사기 저하는 서비스 품질의 저하로 직결되며 기업에게도 큰 손실이다. 근로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기존의 관리·통제보다는 심리치료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근로자들의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일하기 좋은 기업’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어 장기적으로도 기업에게 유리할 것이다.

 

기업-노동자-소비자 간 ‘감정’의 상생이 필요 이외에도 감정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존의 소극적인 매뉴얼을 적극적인 매뉴얼로 변경해야 한다.

 

지금의 소극적 대응은 오히려 블랙 컨슈머를 줄이기는 커녕 부추기고 있다. 불량 고객들은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과 감정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대응은 오히려 이들이 진상을 부리도록 방관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기업의 노력과 함께 감정노동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소비자는 왕’이니까 서비스를 해주는 노동자들에게 폭언이나 폭행도 소비자의 한 권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 인식의 변화와 기업의 노력 없이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업 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소비자들의 인식도 점차 바뀔 것이다.

 

거짓 미소로는 고객을 감동시킬 수 없어  

서비스업이 점점 커지면서 그 업계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의 근로 환경도 같이 발달해야 서비스업의 미래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달될 것이다.

 

또한 많은 유통서비스 기업들이 그들이 표방하는 “선진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의 노동환경 역시 “선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로자가 만족해야 회사도 잘 운영되고 외부고객에게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노동자들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갈 수 있는 근로환경이 하루빨리 조성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