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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의 꽃은 연꽃이다. 꽃놀이를 하기에 썩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화려하게 군락을 이루는 연꽃의 모습은 여행자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봄 꽃놀이와는 또 다른 맛이 있는 여름 꽃놀이. 연꽃의 매력에 빠져보자.
◆눈으로, 마음으로 보기
연꽃은 탐스럽고 화려하다. 신성함과 고귀함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초라한 곳에서 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흙탕물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하여 석가모니를 상징한다. 그리고 연꽃이 자라는 곳을 극락세계로 형상화해 사찰 경내에 연못을 만든다. 인도에서는 다산, 힘과 생명의 창조를 뜻하는데,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몇 해 전 2000년 된 종자가 발아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로투스(lotus, 연꽃)를 신성시 했다. 상이집트(남부) 왕관의 모양이 동그랗고 하얀 것은 연꽃의 봉우리를 형상화 한 것이고, 국가의 상징물 또한 연꽃이다. 고대 신전의 기둥 장식이나 그림에 등장하는 연꽃만 봐도 동서양 모두에게 사랑 받았던 연꽃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연꽃은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개화시기가 7~8월인데, 장마철에 딱 맞춰 꽃이 핀다. 신기하게도 장마철 물 세례 속에서도,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 꽃은 익사하지도 말라 죽지도 않는다. 커다란 꽃봉오리를 나 보란 듯이 피워 내는데, 정작 그 꽃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생고생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뙤약볕 아래에선 선글라스와 선크림으로 중무장하고 꽃을 보러 나선다.
홍련, 백련, 수련, 가시연, 개연, 어리연, 물양귀비…. 종류도 많아 연지마다 연꽃의 새로운 매력에 빠진다. 꽃도 꽃이지만 커다란 이파리도 예쁘다. 물에 젖지 않고 오목한 곳에 물을 고여 뒀다가 또르르 흘리는 모습 때문에 일부러 비오는 날을 택해 연꽃놀이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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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곡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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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청정기원제단 |
◆비 사이로, 빛 사이로 걷기
연꽃을 보기 위해선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동틀 때 꽃을 열기 시작해 오전 10시면 만개하고 오후로 가면 꽃의 얼굴이 닫힌다. 아름다움과 매력, 뜻하는 바도 고귀한데 부지런함까지 갖췄으니 참 흠 잡을 데 없는 꽃이다. 그러니 이 대단한 연꽃을 알현하기 위해 우리네 중생이 서둘러야 할 수밖에.
전국에 연꽃이 유명한 곳을 세 군데만 소개하자면 양수리의 세미원, 시흥의 관곡지, 화천 연꽃단지가 있다. 그중 세미원은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한강 상수원 보호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보통은 ‘물 구경’ 하러 두물머리에 왔던 여행자들이 들르곤 하지만, 이 계절만큼은 세미원이 주인공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산책로를 따라 종종 깔려있는 돌들이 재미있다. ‘마음을 깨끗이 씻자’는 의미로 빨래판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한강의 물과 빨래판이 만났으니 어지러운 속은 씻고 꽃으로 마음을 채워 가면 되겠다. 돌길을 따라가면 커다란 장독대가 물을 뿜는다. 이름은 ‘한강청정기원제단’인데 삼월삼짇날 두물머리의 강심수를 길어다 장독대에 올려놓고 국태민안과 가내안녕을 기원하던 민간풍속을 형상화했다. 확실히 이곳은 물이 많고, 맑은 동네다. 이렇듯 시원하게 물줄기를 뿌리는 분수가 정원 곳곳에서 여행자의 더위를 식힌다.
연꽃 사이를 걷다 보면 여러가지 테마정원도 만날 수 있는데,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미원에서는 선조들이 남긴 연꽃 작품, 즉 시와 그림 전시는 물론 겸제 정선의 금강산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이규보 선생의 사륜정 등을 실현해 놓아 마치 작품 속을 걷는 듯한 경험을 만들어 준다.
연꽃이 없는 시기에도 연꽃을 볼 수 있는 수련전시관이 있고, 입구에는 연꽃박물관이 있다. 이 계절이 아니어도 5월에는 꽃창포와 창포, 6월에는 온대수련, 9월에는 국화꽃을 볼 수 있으니 물 맑은 곳에서 한적한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세미원의 ‘빨래판 돌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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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몸으로 먹기
연은 버릴 것이 하나 없다. 밥상의 단골 반찬인 연근조림은 연 뿌리이고, 연 줄기로는 옷감을 만들거나 즙을 내어 청포묵 등을 만든다. 씨방은 차를 만들고, 연잎으로는 차, 밥, 국수, 만두 등 응용음식이 다양하다.
연은 비타민과 미네랄 함량이 높고, 예부터 지혈제, 오줌싸개 치료로 쓰였다. 줄기와 열매는 약용으로 특히 부인병에 좋다고 하고 항암효과, 간해독, 심신안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연은 누구나 먹어두면 좋은 음식이겠다.
가장 잘 알려진 연 음식은 연잎밥이다. 커다란 연잎으로 감싼 찹쌀밥은 밤, 잣, 잡곡 등을 품고 있어 보기만 해도 몸에 좋은 일을 하는 느낌이다. 연잎향이 솔솔 나는 밥을 한 입 먹으면 꿀떡 먹듯 차지게 넘어간다. 약간의 간이 되어 있어 밥만 먹어도 심심하지가 않다. 사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조금 간편하게 먹자면 연잎돌솥밥도 좋다. 연잎을 넣어 갓 지은 돌솥밥은 한국사람 입맛에 맛 없을 수 없는 음식이다. 청양고추를 넣은 칼칼한 양념장을 곁들여 먹어도 좋고, 수육과 함께 유기농 야채에 싸 먹는 것도 별미다. 연꽃차는 궁중에서나 먹던 귀한 차로 따뜻한 찻물에 피어나는 꽃의 모양이 최고의 퍼포먼스고, 연칼국수와 연만두는 간편하게 먹기 좋다.
연꽃은 참 얄궂은 데가 있다. 비가 와서 미루고, 더워서 미루고, 서두르기 힘들어 미루면 영영 볼 수 없는 꽃이다. 그렇지만 간절함을 저버리지 않는 꽃이기도 하다. 그늘 하나 없는 연지로 오로지 연꽃만 보러 왔다면 그 정성을 배신할 리 없다. 신비하고, 영화롭고, 아름답다는 연꽃. 지금이 바로 그 꽃을 만날 때다.
[여행 정보]
● 세미원 가는 길
[승용차]
6번 국도 양평방향 신양수대교를 건너자 마자 우측 진입 - 양수리 방향 500m 전방
[버스]
청량리역 167번 - 양수리 하차
강변역 2000-1번 - 양서문화체육공원 하차
[지하철]
중앙선 용문행 - 양수역 하차
< 여행지 주요정보 >
세미원
http://www.semiwon.or.kr / 031-775-1834
내비게이션: 검색어 ‘세미원’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오전 9시~오후 7시
관람요금: 성인 4,000원 / 어린이, 청소년, 65세이상, 장애인 4·5·6등급 2000원
성수기 중 휴관일 없음(월요일 정상개관): 6월1일 ~ 8월18일
상수원 보호지역 관람자 주의사항
- 금연
- 쓰레기통 없음(쓰레기는 반드시 가지고 나올 것)
- 음식물 반입금지(사전 예약 시 향원각 4층에서 도시락 식사 가능. 문의: 031-775-1834)
- 반려동물 금지, 식물, 곤충 채집도구 금지
- 체육활동 금지
< 연꽃이 아름다운 다른 여행지 >
관곡지 연꽃테마파크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연못의 이름이다. 이곳에 조선전기 문신이자 농학자였던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연꽃씨를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최초의 연지인 셈이다. 예전에 이곳을 ‘연성’(蓮城)이라 불렀고, 이곳에서 피는 연꽃은 빛깔이 흰 백련으로 꽃잎이 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 관곡지 가까이에 3만평에 이르는 연꽃농장을 조성해 많은 여행자들이 꽃을 보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http://lotus.siheung.go.kr /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로 139 / 031-310-6221
화천 연꽃단지
오염지대였던 곳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킨 곳이다. 2005년부터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연을 심기 시작했고, 마침내 물고기가 돌아오는 아름다운 꽃밭이 됐다. 수련, 백련, 순채, 가시연, 어리연꽃 등 400여종의 연꽃이 계절 따라 피어나 비교적 오랫동안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 / 033-440-2852
< 음식 >
양평에서 연잎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다음과 같다.
육콩이네: 세미원 입구에 위치한 연 음식과 두부 전문점이다.
연잎돌솥밥(쌈+수육+순두부찌개) 1만원 / 연자전 1만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535-8 / 031-773-6733
두물머리 연밭: 연잎을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곳으로 20년 이상 된 경력의 맛집이다.
연밭정식 1만5000원 / 장어정식 2만3000원 / 연잎밥 5000원 / 연잎차 3000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514 / 031-772-6200
두물머리 연칼국수: 세미원 식물원에서 재배된 연으로 연칼국수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연밥 6000원 / 연칼국수(2인, 야채죽 포함) 1만2000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국수리 329 / 031-774-2938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