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아이디어도.. 여건 성숙해야 열매 맺어
<도토리>는 돼지고기와 떡을 깻잎이나 콩나물 등과 함께 즉석에서 볶아먹는 두루치기식 요리인 ‘불·떡·콩’ 등 업그레이드시킨 퓨전 떡볶이 전문점이다.
본점인 성신여대점을 비롯해 북촌점, 안국점, 명지대점 등 4개의 직영점이 있다. 늘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지창수 대표의 번득이는 재치와 아이디어가 점포 콘셉트에 그대로 드러난다.

깔끔하고 깨끗한 실내 디자인, 간편한 조리 시스템, 인덕션레인지 전용 식기 사용, 재활용 가능 내구재 사용 등등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지 대표는 고객, 특히 젊은 층의 니즈와 심리 파악에 뛰어나다.

◇ “또 망했어요!” 실패는 나의 힘
외식업 종사자들의 전직은 천차만별이다. <도토리>의 지창수 대표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선거 컨설팅, 기념품 장사, 교통 신호등 사업, 고물상 경영 등 워낙 다양한 활동과 경력을 가져 딱히 전직을 규정하기가 어렵다.

정치학을 전공한 후 구청의 7급 공무원 생활을 비교적 오래 유지했으므로 ‘공무원 출신’으로 보는 것이 그나마 가장 타당할 듯하다. 한때 무소속 연대 정치 활동에도 투신했다. 이때 단체의 상징물이었던 소모형물 제작비로 2억원을 날렸다. 부친을 비롯해 가족 친지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이었다.

다시 재기를 모색하기 위해 교통 신호등 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자본력 게임인 시장에서 돈줄이 짧은 그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때 그가 절감한 것이 있었다. 무슨 사업을 하든지 나 아니면 안 되는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는 점이었다. 진입 장벽 높은 경쟁력 있는 차별화 요소가 성공의 핵심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다.

어쨌든 이쯤 되니 식구들조차도 지 대표를 불신했다. 지 대표가 손 벌리려는 낌새만 보여도 모두 손사래를 쳤다.


워낙 발이 넓은 그의 주변에 사람은 많았다. 마침 한 지인을 통해 인하대 근처 무허가 건물의 아주 작은 공간이 있음을 알았다. 예전 숙부가 운영하는 떡볶이집의 창업을 도와주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살려 떡볶이집을 차렸다. 그런데 콘셉트가 수상했다. ‘무인 떡볶이’였다. 주인 없이 손님 스스로 만들어 먹고 스스로 돈 내고 가는 집이다. 대박이 났다.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소문 듣고 재미있다며 몰려왔다. 하지만 주변에서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진정하는 바람에 ‘무허가’의 슬픔을 씹으며 문을 닫아야 했다.

◇ ‘호통 마케팅’과 기다림, 그리고 지속적 메뉴개발과 운(運)
지 대표는 도로 무일푼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구청에 근무하는 예전 동료를 만나 이야기하다가 성신여대 앞에 점포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동료와 건물주도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점포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위치는 좋지 않았다. 눈에 띄지도 않는데다 지하였다.

앞으로 개발되면 앞이 탁 트여 좋은 위치가 될 거라는 귀띔을 친구에게 받았다. 하지만 손님 하나 없는 지하에서 온종일 혼자 지내는 게 쉽지 않았다. 1년 동안 햇빛 한 번 보지 못해 우울증이 생겼다. 매일 소주 한 병씩을 마셔야 잠을 잤다.

그러나 무작정 시간을 허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도토리>의 주력 메뉴들이 이때 다듬어진 것들이다. 적채피클도 혼자 개발해냈다. 손님이 전혀 없다가도 어느 순간 떼로 몰려오곤 했다. 그러면 혼자 감당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빛나는 아이디어도.. 여건 성숙해야 열매 맺어

그래서 생각다 못해 ‘도토리는 주인이 왕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손님이 절대 재촉하면 안 되고 자기가 먹은 그릇은 개수대에 갖다놓고, 등등 손님이 지켜야 할 사항을 적었다. 제대로 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기다리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또 실제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양질의 음식을 내놓았다.
남들이 보면 엉뚱한 내용이었지만 이게 실마리가 되어 오히려 손님이 늘었다. 학생들이 고객의 대부분인 학교 앞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부인의 격려와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여러 차례 사업에 망하고 사고를 쳐도 언제나 부인은 그런 남편을 믿어주고 편들어주었다. 부인의 믿음과 사랑은 1년 이상 손님 하나 없는 82.64m2(25평) 지하실에서 견딜 수 있었던 힘이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가게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건물이 철거되자 <도토리>의 가시성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그러던 차에 유명 프랜차이즈 <콩불>이 성신여대에 입점했다. 이때부터 학생들 사이에 어느 집 메뉴가 더 맛있는지 내기를 할 정도로 고객이 몰렸다.

차츰 소문이 퍼지자 2011년에는 Y-Star의 ‘식신로드’, SBS의 ‘생활의 달인’ 등 공중파 방송에서 여러 차례 취재해 방송으로 내보냈다. 이후 지금까지 3개의 점포를 더 늘리고 고객의 발걸음은 늘고 있다.

◇ 떡볶이에 대한 발상을 바꾼 프레임 활용의 귀재

<도토리>의 주메뉴인 불떡콩(대 1만5000원, 중 1만원)은 불고기(양념 돼지고기)와 떡볶이, 그리고 콩나물이 들어간다.

떡은 기껏 3~4위 정도의 위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불떡콩네 집 호주는 두루치기(돼지고기)가 아니라 떡볶이(떡)다. 바로 여기에 지 대표의 기지와 재치가 숨어있다. 메뉴를 떡볶이라는 프레임에 집어넣는 순간 반찬이 필요치 않다.

이런저런 부재료나 번거로운 조리과정도 필요 없다. 고객은 그저 떡볶이를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토리>의 반찬은 적채피클 딱 한 가지다. 그것도 셀프로 고객이 가져다 먹는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스러워하지 않는다. 왜? ‘떡볶이’는 보통 그렇게 먹는 것이니까.

지 대표는 외식업 종사자도 인문학적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 대표는 참나무를 사랑하고 참나무의 가치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자연환경 보호와 노인의 복지에 관심이 많다. 회사 이름 ‘도토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참나무를 닮은 싱싱하고 푸른 1000개의 가맹점을 여는 것이 그의 꿈이다. 지 대표는 그날까지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내실을 다진다. 물론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거울 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