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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
당진에 이런 곳이? 영감과 상상이 있는 문학가의 집, 100년 역사를 지닌 성당, 감성이 숨쉬는 폐교미술관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숨은 듯 가려진 여행지를 찾아가는 매력, 당진으로 떠나보자.
◆집을 짓다, 글을 짓다
필경사(筆耕舍)? 절 인줄 알았는데, 문학가의 집이다. 게다가 이 집이 한 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이 재미있다. 집의 주인은 심훈. 중학교 때 꽤 몰입해서 읽었던 <상록수>의 저자다. 심훈은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1932년에 아버지께서 계신 당진 부곡리로 왔다. 1934년에는 직접 설계한 집을 짓고 ‘필경사’라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 농촌 계몽소설의 대표작인 <상록수>를 집필했다.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필경사의 의도에 딱 맞는 작품을 지은 셈이다.
가만히 집을 살펴보니 구조가 독특하다. 초가이지만 한옥의 형태가 아니다. 현관이 있고 실내에 화장실과 욕실이 있다. 여기에 유리창을 달았고 창문에는 화분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베란다도 있다. 화장실도 두개나 있고 욕실에 가마솥을 둔 것으로 보아 물을 데워 온수로 썼나 보다. 소규모의 야학도 가능했겠다. 그러고 보니 상록수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대목들이 그려진다. 집 뒤로는 심훈이 직접 심었다는 대나무 숲이, 오른쪽에는 ‘이곳이 상록수의 집이다’라고 말하는 듯 동백과 키 큰 상록수가 서 있다.
이제 상록수문학관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친족들이 소중히 모아 기증한 자료들이 잘 정리돼 있다. 광복을 염원했던 시 <그날의 오면>의 검열본, 연재소설의 신문·잡지와 심훈문집, 실제로 집필에 사용됐던 책상도 있다. 심훈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제작하고 출연까지 했다. 그 시대에 작가이자 영화인이었다는 것이 상당히 특이한 이력이다. ‘그는 영화가 지닌 대중 예술로서의 파급력을 확신했던 선구자였다’는 박헌호의 말처럼, 작가 심훈은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이었다. 1927년에는 영화수업을 위해 일본 유학을 했고, 수많은 영화 평론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심훈의 작품은 실용적이면서 극적이고 교훈과 계몽을 담고 있다. 영화로 만들기도 딱 좋은 구조다. 책을 읽을 때 그 시대의 다른 문학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 이런 이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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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덕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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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문학관 |
◆도포 입은 요셉, 저고리 입은 마리아
충남은 순교의 지역이다. 김대건·최양업 신부의 집안이 이곳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이후 박해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그 명성답게 이곳에도 100년이 넘은 ‘합덕성당’이 있다. 1890년에 처음 설립된 성당은 1899년 현재 위치로 이동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됐고, 1929년에 현재의 건물이 준공됐다. 초기 선교사 시절이 그러하듯 1907년에는 매괴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는데, 그런 정신이 이어진 것인지 지금은 성당과 함께 유스호스텔을 운영 중이다.
본당은 벽돌과 목재를 사용하고 종탑이 쌍을 이룬 것이 특징인데, 건물도 그렇지만 환경이 참 아름답다. 낮은 언덕에 자리 잡아 오르는 짧은 계단 주변으로 나무가 길을 만들었다. 잔디밭이 앞·뒤·옆으로 펼쳐져 작은 산책길을 만드는데 군데군데 예수와 마리아의 생애를 표현한 조형물과 김대건 신부의 동상, 뒤로는 6.25때 납치돼 유해 없이 유물만 묻혀있다는 설계자 페랭(Perrin) 신부를 비롯한 몇분의 묘소가 있다. 재미있는 건 한국식으로 승화된 요셉, 마리아, 예수의 가족상이다. 요셉은 도포에 갓을 썼고, 마리아는 치마저고리에 쓰개치마를 썼다. 안겨 있는 예수는 천진한 도령의 모습이다. 선교의 피가 흘렀다는 이곳의 모습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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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미술관 |
◆오래된 것과 아름다운 것
아미미술관은 찾기가 어렵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입구를 놓쳐 버린다.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철문 옆 낡은 우체통이 반긴다. ‘초·중고생 2000원, 성인은 3000원’. 그런데 지키는 사람도 막는 사람도 없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운동장과 오래된 나무들이 화단을 이루고 있다.
폐교다. 아니 지금은 미술관이다. 건물의 주 출입구에선 작은 천을 이어 화려하게 장식한 모빌 작품이 길 찾느라 긴장했던 마음을 풀어준다. 이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화사해 보이겠다. 이제 교실이었던 전시실을 본다. 넓은 창문들을 그대로 살려 문을 활짝 열어놨는데, 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가을 꽃, 하늘 풍경이 좋다. 실내에 그림이 있지만 창문 하나도 그림 하나인 셈이다. 벽에 걸린 개성 있는 작품들…. 들어오는 햇살이 그림 위에 그림 하나를 더 그린다. 작품뿐 아니라 작업실과 도구를 보는 재미도 있다. 짜다 만 물감, 씻어놓은 붓, 비어있는 이젤, 낡은 오르간…. 모두가 삐걱거리는 나무 마루와 썩 잘 어울리는 것들이다.
미술관을 나와 뒤로 돌아가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예전에 교장선생님 관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가가 머물며 작품을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집과 관장님 집 주변으로 오래된 물건들이 옹기종기 많기도 하다. 사발, 깡통, 장독, 맷돌, 호롱, 시계, 주전자…. 깔끔하게 정리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놓아두었다. 이곳은 ‘보는 눈 있는 자’에게 더 많은 것들을 열어주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길어진 그림자는 ‘빛 그림’의 폐관을 예고한다. 돌아갈 시간.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더라도 당진의 고요한 평화로움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곳 필경사와 합덕성당과 아미미술관의 매력이요, 여행자를 부르는 힘일 테니….
[여행 정보]
● 당진 필경사(상록수문학관) 가는 법
[승용차]
과천의왕간 고속도로 - 서수원IC에서 ‘인천, 안산, 한양대학교, 안상대학교’ 방면으로 우측 - 수인로 - 양촌IC에서 ‘발안’ 방면으로 우측 - 서해로 - ‘서해안고속도로, 남양, 매송’ 방면으로 우측 - 313 지방도 - 서해안고속도로 - 북부산업로 - 한진교차로에서 ‘당진, 송악’ 방면으로 좌회전 - 부곡공단4길 - ‘부곡리(상록마을)’ 방면으로 좌회전 - 상록수길
[대중교통]
고속버스 센트럴시티 터미널 - 당진버스터미널 - 22번 - 필경사 정류장에서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필경사: 검색어 ‘필경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251-12
합덕성당: 검색어 ‘합덕성당’ 또는 ‘합덕유스호스텔’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275
아미미술관: 검색어 ‘아미미술관’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성북리 158
< 여행 주요정보 >
충청남도 여행 정보
http://tour.chungnam.net
필경사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동절기 오후 5시까지)
심훈상록문화제
http://www.djsangnok.org
심훈상록문화제는 매년 가을에 열리며 올해 37회를 맞이한 전통의 문학제다. 축제는 추모제와 문예행사, 심훈 문학상 시상, 문학퀴즈, 북콘서트 등 먹고 즐기는 소비형 축제와 달리 청소년들이 참여하기에 좋은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사무국 041-357-4151
합덕유스호스텔
http://www.hapdeokyouthhostel.net / 041-363-1061
수용인원 110명. 숙소는 교구내 피정, 연수원으로 사용되고 대식당, 대강당 등이 있다.
아미미술관
041-353-1555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관람요금: 어린이·청소년 2000원 / 성인 3000원
< 음식 >
은영이네 손칼국수: 한진포구에 위치한 손칼국수 전문점으로 푸짐하고 얼큰하게 끓여내는 얼큰이해물칼국수가 인기다.
바지락칼국수 7000원 / 얼큰이 해물칼국수 8000원 / 해물전 1만원 / 왕만두 5000원
충남 당진시 송악읍 한진리 98 / 041-358-8861
우렁이박사: 당진은 쌀 만큼이나 우렁이를 넣은 쌈장이 유명하고 맛있다. 우렁쌈밥은 이곳의 별미로 신당교차로 부근에 쌈밥집이 몰려 있다. 특히 ‘우렁이박사’는 방송에 소개되면서 손님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담북 찜장 8000원 / 쌈장 6000원 / 박사네 정식 1만2000원
충남 당진시 신평면 도성리 499-1 / 041-362-9554
바그람: 서해바다의 싱싱한 해물과 함께 간장게장과 대하장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게장은 선물세트 택배주문도 가능하다.
해물찜정식 6만원(2인)~12만원(5인) / 아구찜정식 5만원(2인)~11만원(5인)
충남 당진시 시곡동 98-16 / 041-353-0019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