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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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바뀌는 제도에 전형도 까다로워 공교육으론 역부족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A씨. 그는 초·중·고 시절, 과외를 한번도 받지 않았고 학원은 문턱을 넘어본 적도 없다. 학교수업에 충실하고 혼자 참고서를 보며 공부해 명문대에 들어갔다.

그는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잘 시키지 않았다. 공부란 어차피 스스로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실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다. 또 학교에서 충분한 수업을 받았음에도 굳이 학교 밖에서 강의를 듣는데 시간을 할애한다면 혼자 학습하는 시간이 부족해 오히려 문제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다행히 그의 아이는 학교수업에 충실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아이의 대학입시를 위해 일정수준의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교육이 필요한 이유, '맞춤형 교육'

왜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을까. 첫번째 이유는 A씨가 청소년이던 시대에는 중·고교가 평준화되기 이전이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다. 입시를 치르고 들어간 학생들이기에 현재 일반 중·고등학교에 비해 학생간 편차가 크지 않았다.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비슷한 수준의 상위학교 진학을 목표로 지냈기 때문에 교사는 대부분의 학생을 만족시킬 만한 수업이 가능했다. 학생들은 강한 의지로 열심히 노력하면 학교수업과 참고서만으로도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력 차이가 큰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이뤄질 때는 어떤 학생은 쉬워서 들을 필요가 없고 다른 학생은 어려워서 따라가기 힘든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잘하는 학생이든 못하는 학생이든 그 수준에 맞춰주는 맞춤형 사교육이 필요해진 것이다. 때문에 요즘 중·고교에서는 일부 과목의 경우 수준별로 이동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대학 서열화 심화…학과보다 대학 우선시

두번째 이유는 대학진학률이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고, 대학 서열화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30%대였던 대학진학률이 지금은 80~90%로 높아졌고, 진학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과거에는 자식이 대학 갈 실력이 되어도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대학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빨리 돈을 벌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공업고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 중에도 명문이 있었다. 그런 고등학교를 나오면 일류 직장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대학진학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수준의 아이들까지 지금은 대학에 진학하려다보니 경쟁률이 높아졌고, 똑같이 공부하는 학교 외의 장소에서 차별화된 사교육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대학 서열화 현상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공고해졌다. A씨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법과대학의 경우 Y대보다 K대가 더 인정받았고 공과대학은 H대 출신을 선호했다. F대 영어전공자는 S대 출신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 수도권 소재 대학보다 지방 소재 국립대의 입시 커트라인이 더 높은 곳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전공분야가 대학교 이름에 따라 우열이 가려지는 방향으로 변했다. 대학 서열화가 고착화되면서 학교명에 집착하는 경향도 강화됐다. 대입학원에서는 특정대학의 입학을 겨냥하는 학생들로 각 반을 구성하기 때문에 특정대학을 겨냥해 입시준비를 하기에 학교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세번째 이유로 대입전형의 경우 정시보다 수시 비중이 높아지고, 수시 중에서는 논술 비중이 높아진 것을 들 수 있다. 대입에 수시가 생겨난 이후 정시에 비해 수시 비중이 점점 높아져 2010년 수시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올해에는 정시의 농어촌전형과 전문계 고교전형 인원을 제외하면 수시+정시 총인원대비 수시의 비율이 75%에 가깝다.

수시에 논술이 들어가는 대학의 경우 그 비중에 관계없이 논술이 큰 변별력을 가지므로 지원자들은 논술준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논술은 교과서나 학교시험에서 나오는 문제와 스타일이 다르며 난이도도 높다. 이공계의 논술문제는 그 대학교수들도 풀기 쉽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따라서 논술을 치르려면 학교공부 및 수능 준비와는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대학마다 논술문제의 유형과 난이도가 달라 지원하는 대학에 맞춰 맞춤형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여러 대학에 복수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으레 여러 대학에 지원하고, 지원할 대학의 선정부터 시작해 각 대학에 맞춰 수시를 준비하는 것까지 상당히 번거롭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교사들은 대학마다 다른 형태의 수시에 대비해 학생마다 개별적으로 공부시키고 준비해주기가 힘들다. 결국 학교 밖의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논술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입시제도

네번째 이유로 대학 입시제도가 자주 바뀐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국민들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가 바뀌는 것으로 국민들은 생각한다. 중고등학교는 입시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지(智)에 해당하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지덕체'(智德體)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곳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끼리 교제를 통해 교정의 추억도 쌓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입시제도가 어떤지에 관계없이 학교는 가르쳐야할 모든 과목의 교과서 교육과 아이들의 기본실력을 쌓아주는 데 충실해야 하므로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면 발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다. 기본교육이 입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학교는 입시와 무관한 예체능 교육도 시켜야 한다.

반면 과외와 학원의 사교육은 오직 대학진학 공부만을 위해 이뤄지므로 입시제도의 변화를 발 빠르게 쫓아간다. 대학진학에 꼭 필요한 공부만 골라서 시킨다. 사교육 교사들은 어떤 요령으로 공부하고 준비해야 새로운 입시에 유리한지에 대해 연구한다.

당연히 입시에서만큼은 학교 교사들에 비해 더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입시에서 사교육이 극성을 부린다고 입시제도를 바꾸면 새로운 입시를 위한 또 다른 방식의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게 되는 이유다.

순진하게 학교공부에만 충실한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된다. 그러므로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입시제도를 바꿀 게 아니라 한번 정해진 제도를 가급적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사교육을 줄이는 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잡무에 시달리고 교육적인 여러 측면을 골고루 생각하며 아이들을 지도해야하는 학교 교사들이 일관성 있게 아이들의 대학진학을 지도할 수 있어야지만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 경우 아이의 대입시기가 가까워지자 엄마가 나서서 대학진학 설명회에 쫓아다니며 입시제도를 이해하고 소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아이가 지원할 대학도 엄마가 선정했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설계하며 진로 파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이가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 복잡한 입시제도까지 파악하기는 무리다. 사교육 의존도가 그나마 낮은 가정에서는 엄마라도 나서서 입시제도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전업주부가 아닐 경우에는 흔히 사교육 전문가에게 의존하게 된다. 입시제도의 다양화는 취지는 좋지만 입시제도가 복잡할수록 일일이 파악해 아이에게 유리한 길을 찾고 그에 맞추기가 쉽지 않으므로 진학지도 전문가의 필요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교육정상화'와 '교육개혁' 등의 취지로 생겨났던 '입시사정관제도'도 이전보다 더 사교육을 조장하는 원흉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입시제도는 늘 좋은 명분하에 바뀌지만 결과적으로 사교육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기곤 했다.

"수학, 과학의 특기적성을 대입 수시적성으로 만들어주는 전문가 집단!!"이라는 학원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수능이 강화되면 수능을 위한 사교육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내신이 강화되면 내신을 위한 사교육이 늘어난다. 학교의 교사마다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스타일이 있으므로 학교 교사들의 수년간 기출문제를 입수해 분석하며 지도해주는 학원에 다니면 다니지 않는 것보다 학교 내신성적을 올리는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해진다.

사교육으로 선행학습을 받으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당장 학교 수업을 쉽게 이해하며 시험성적이 더 잘 나오게 된다. 특기활동이나 경시대회 입상 결과가 입시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면 그런 활동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부모의 아이들이 유리해진다.

입시제도와 사교육의 관계는 풍선효과와 같다. 사교육을 줄이고자 입시제도를 바꾸면 다른 형태의 사교육이 생겨나므로 자주 입시제도가 바뀌면 오히려 사교육 의존성이 높아진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것은 사회환경이 바뀔 때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대학교를 졸업해야만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결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풍토에서는 대학진학률이 높고 입시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전문성 교육을 받는 곳인데, 실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가 일자리는 대졸자수에 비해 훨씬 적다. 대학에서 배운 전문성을 활용하는 일자리가 아닌 곳으로 취업하는 청년들이 매우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럴 경우 수년 동안 거액을 들여 대학교를 다닌 의미가 없다. 결국 사교육은 대졸이라는 학벌을 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셈이다.

대졸자가 양산되고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아짐에 따라 작은 기업들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청년 실업자는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입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상황에서 출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