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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좀 보려 했더니 벌써 바람이 차다. 자고로 첫추위를 잘 맞아야 겨울이 건강하다 했거늘….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기습 추위를 대비해 열 일 제쳤다. 일단 몸과 맘을 보(補)하러 떠난다. 이제, 산의 정기와 바다의 기운을 온몸에 담아오자.
◆산이 깊을수록 삼이 실하다
SUV를 타고 가는 오프로드. 한쪽에 차를 세우고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엉성하게 둘러쳐진 나무 울타리를 넘으니 또다시 경사가 어마어마한 비탈이다. 걷는 건지 기는 건지 모르게 앞사람을 따라가는데, 저 분은 타고난 산사람인양 막힘 없이 쭉쭉 오른다. 큰 나무가 없으니 잡을 것도 없고, 시커먼 흙산에서 낙상이라도 하면 이후의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
산양삼이 있다고 하길래 따라와 봤다. 산양삼이라…. 말이 낯설지만 조선 중기 이후부터 사용한 용어란다. 아까 나무 울타리 안쪽이 다 삼의 생육지라고 한다. 앞섰던 어른이 삐죽 튀어나온 얇은 가지를 가리키며, ‘이게 산삼이네’ 라고 한 뒤에야 ‘그런가 보다’ 했지, 당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림에서 봤던 빨간 열매는 봄 이야기이고, 잎도 이미 다 떨어져 보고도 모르겠으니 ‘슬쩍 하나 파 갈까?’ 하는 생각은 처음부터 접는 게 좋다. 갸우뚱하는 우리를 위해 한 뿌리를 살살 파 주신다. “심 봤다!” 과연 말로만 듣던 산삼이 나온다. 비탈을 따라 더 올라가니 어르신들이 웬 실오라기 같은, 삼의 뿌리털 비슷한 것을 살살 떨어트리고는 흙을 턱턱 덮는다. 뭔가 여쭤보니 2년 된 묘삼을 넓게 옮겨 심는 것이라고 한다. 2년 동안 고작 그만큼 자랐다니 자연의 정성을 꽤나 받아야 하는 귀한 몸이다.
산양삼에서 사람 손이 하는 건 이게 다다. 삼밭에 울타리를 치고, 삼 씨를 뿌린 뒤 일정 기간이 지나 한번 옮겨 심어 주는 것. 나머지는 산이 알아서, 흙이 알아서, 비가 알아서 해 준다. “그럼, 장뇌삼은 뭐고, 인삼은 뭐예요?”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다. 장뇌삼은 산에 심되 비가림을 해 주는 등 야생에서 재배하는 것을 말하고, 인삼은 아예 밭에 씨를 뿌리고 키우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산양삼은 기다리는 품이 가장 많이 든다. 세월을 보내는 동안 쥐들에게 많이 파 먹힌다는데, 과연 흙바닥에 조그만 쥐구멍들이 여기저기 나 있다.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쓰게 되면 그 약 성분이 삼에게 영향을 미칠까봐 쥐 잡는 끈끈이를 놓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한다.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게 낫지, 흙 속에서 썩지나 않는지 산쥐가 파먹지나 않았는지 노심초사 기다리는 것만큼 애타는 게 또 있을까. 그것도 10년을 말이다. 산삼은 자연의 혜택을 오롯이 받으며, 사람의 마음과 기운을 흡입하며 자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신통한 만병통치약이 되고, 귀한 이에게 주는 보약이 되는가 보다.
어쨌든 밭을 일구어 삼을 심으니 예전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린다. 새벽 공복에 산삼 한 뿌리를 씹으며 ‘추위 따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간편하게 진액이나 가공된 삼물을 집에서 받아먹을 수도 있다. 직접 산에 올라가 그 과정을 보았더니 깊은 산의 좋은 것들이 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약발’ 한번 잘 받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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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삼 |
◆송이? 냄새만 맡고 왔네
안 그래도 귀한 송이가 올 가을엔 더 귀하다. 늦더위와 가뭄으로 수확량이 줄어서, 송이버섯 1㎏에 80만원까지 나가는 것이 있다니 올해만큼은 산삼보다 귀한 게 자연산 송이버섯이다. 그렇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물론 현존하는 버섯 중에 항암효과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약으로 먹는다면 고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송이를 즐긴다’ 하면 향을 즐기는 것일 터. 송이버섯은 소나무 실뿌리에서 기생해 특유의 송진 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그러니 송이버섯이 귀해 냄새만 맡고 왔다 해도 노력의 팔할은 건진 셈이다. 뚝배기에 몇점 올라간 송이버섯 만으로 입맛이 돌고, 곁들이는 송이주 한잔으로도 보신이 되는 느낌이다. 그 덕분에 두둑한 한끼를 먹었다면 이게 다 송이 향 덕분이다. 밥이 보약이라 했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
송이버섯도 후가공 식품이 많다. 장아찌나 말린 송이 같은 것들은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것을 골라 써서 가격이 좋은 편이다. 올해는 이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 송이 또한 해거리를 하는 식물이니, 내년을 기대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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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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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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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층석탑 |
◆시원시원한 낙산사 풍경
낙산사 오르는 길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다. 천천히 오르면 가벼운 땀이 배어 나오는 소나무 숲길이다. 도저히 불탔던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천년고찰의 화재는 일종의 상처였다. 귀중한 문화재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지 벌써 8년이 지났지만, ‘낙산사’ 하면 ‘불’이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절치부심(切齒腐心) 했었는지 모른다. 종교를 떠나서 국민이 정성과 힘을 모았고, 지금은 과거의 아픔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우뚝 선 해수관음상은 시원시원하다. 언덕 위, 동해바다를 향해 위풍당당하면서도 자애롭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살짝 내민듯한 배와 그 위로 척 걸치듯이 손을 올리고 약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신비로우면서도 친근하고 부드럽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할 때는 하얗게 빛나는 화강암 관음상이 자신의 키 16m 보다 더 크게 보인다.
이로부터의 전망은 하늘과 알 수 없는 경계를 이루는 바다다. 여기선 어느 방향에서 무얼 보든지 절경이고 감탄이다. 관음상도, 바다도, 하늘도 시원하다. 때문에 몸과 마음과 정신에 시원한 휴식을 주는 느낌이 든다. 짧아진 해는 내려가야 할 시간을 알리기라도 하듯 빠르게 서쪽으로 향한다.
이 계절에 양양…. 시간 한번 기가 막히게 맞췄다. 몸은 보하고, 마음은 비우고, 정신은 차렸으니 이른 추위쯤은 문제 없겠다. 지금부터 남은 가을을 즐기고 호기롭게 겨울을 맞으면 되겠다.
[여행 정보]
● 낙산사 가는 법
[승용차]
올림픽대로 - 서울춘천고속도로 미사IC - 동홍천 IC 교차로에서 ‘속초, 인제’ 방면으로 우측 - 설악로 - 철정터널 - 인제대교 - 한계교차로 - 미시령로 - 한계터널 - 용대터널 - 미시령터널 – 교동지하차도사거리에서 ‘양양, 대포항, 경찰서’ 방면으로 우회전 - 동해대로 – 만천삼거리에서 ‘대포항, 경찰서, 설악산국립공원’ 방면으로 우회전 - 청대로 - 조양교차로에서 ‘양양, 대포항,’ 방면으로 우회전 - 동해대로 - 낙산사거리에서 유턴 - 동해대로 – 낙산사로
[버스]
서울고속터미널 - 양양고속버스정류장 - 9번(영랑동, 고속터미널, 양양) - 낙산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낙산사: 검색어 ‘낙산사’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
< 여행지 주요정보 >
낙산사
http://www.naksansa.or.kr / 033-672-2447
템플스테이: ‘꿈길따라서 1박2일’이나 ‘체험형 1박2일’ 신청 가능
비용: 내국인 3만원, 외국인 4만원
문의: 033-672-2417
양양백두대간 산양산삼
산삼 가격: 10년근 10만~13만원
문의: 010-3343-9703
(도난을 대비해 산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음)
산삼 가공식품
현대백화점, 이마트 등에서 구입 가능
문의: 해송KNS 02-564-5650
< 음식 >
송이골: 양양의 대표적인 송이버섯 음식점이다. 돌솥으로 지은 송이밥과 함께 양양의 산나물과 찌개가 푸짐하게 나온다.
송이영양돌솥밥 1만7000원 / 송이덮밥 1만2000원 / 송이해장국 8000원 / 송이칼국수 8000원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현리 234-1 / 033-672-8040
송이버섯마을: 한우와 함께 송이버섯을 즐길 수 있다. 능이버섯을 이용한 음식도 함께 선보인다.
송이버섯전골 2만5000원 / 송이불고기 2만5000원 / 송이 샤브샤브 2만5000원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월리 226-5 / 033-672-3145
등불: 자연 송이와 한우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현지인들에게 맛있는 고깃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년 가까이 영업해 온 집으로 자연산 송이는 시가 주문이 가능하다.
양양 자연산송이버섯전골 5만원 / 자연산송이버섯국수 5000원
강원도 양양군 포월리 19 / 033-671-1500
< 숙소 >
대명리조트 쏠비치: 동해바다 앞에 자리잡은 스페인 풍 해양리조트로 한식당 ‘송이’에서는 송이 소불고기를 포함해 양양의 건강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http://www.daemyungresort.com/sb/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선사유적로 678 / 1588-4888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