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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1. 계약 전 봤던 모델하우스와 지어진 아파트가 너무나도 다르다면?
#2. 대형건설사를 상대로 과연 소송이 가능할까?
#3. 우리 아파트 관리비는 어디로 새어나가고 있는걸까?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주지 못했던 이러한 질문들의 총체적인 해답을 부동산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회사원이 제시해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파트 구매에서 입주, 관리까지 건설사가 알려주지 않는 부정과 비리를 낱낱이 파헤친 책 <아파트에서 살아남기>의 저자 김효한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자신의 책을 통해 이론적인 겉핥기식 지식이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알짜 정보’를 대중에게 전파하고자 직접 펜을 들었다고 한다.
◆쉽게 분간할 수 없는 ‘입주자 X’
지난 2007년, 김씨는 4억2000만원 상당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워크아웃 상황에 놓인 K건설사의 허위·과장광고로 인해 분양 피해를 입게 되면서 입주예정자들의 리더가 되어 이웃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개인자산의 하락과 중도금 지급의 위기 속에서 사기 분양에 가까운 아파트의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모두가 말렸지만 입주예정자들의 대표가 돼 18개월 이상의 긴 투쟁을 시작했고, 그 결과 100억원(가구당 약 1500만원)가량의 입주대책자금을 받아낼 수 있었죠.”
김씨는 자신의 책을 통해 아파트 입주자 개인이 건설사를 상대로 싸워 이긴 사례를 최초로 소개하고 있다. 스스로 땀 흘려 얻은 결실인 만큼 어느 하나 빠짐없이 ‘아파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투쟁기간 동안 재산 압류 등의 법적 압박과 온갖 회유·협박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특히 '입주자 엑스(X)'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저를 비롯한 입주예정자들을 혼란스럽게 했죠.”
아파트 안에 암약하고 있는 입주자 X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것도 책을 쓰게 된 커다란 계기였다고 김씨는 말한다.
“정체불명이라는 뜻의 엑스(X)를 붙인 것은 실제로 그들의 정체를 뚜렷하게 까발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입주자 X는 모든 아파트에 존재한다고 확신합니다. 이들은 처음엔 입주민편인 척 하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건설사의 입장을 대변하곤 하죠.”
입주자들에게 있어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업체가 아니라 바로 입주자 X라는 것. 이들은 아파트를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을 때 눈부신 활약(?)으로 입주자들을 패배의 길로 몰고 간다고 한다.
“계속해서 입주자 X를 관찰한 후 내린 결론은 아파트 분양이 시작될 때부터 ‘준비된’ 입주자 X가 ‘투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직업적인 입주자 X가 존재한다는 말이죠. 이들의 대표적인 미션은 입주예정자들이 모두 입주를 마치게끔 하는 겁니다. 입주가 완료된다는 것은 입주자들이 잔금을 다 치러서 시행사와 건설사로서는 받을 돈을 다 받고 여러 가지 책임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모델하우스서 무엇을 보았나
입주 과정에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1순위 대상이 입주자 X라면, 계약 전 단계에서 절대 홀려서는 안 될 대상은 바로 ‘모델하우스’라고 김씨는 경고한다.
“핸드폰이나 자동차를 살 때는 그렇게 신중하고 방대한 지식을 펼쳐놓던 사람이 아파트를 고를 땐 바보가 됩니다. 아파트 구매의 가장 큰 맹점은 실물을 볼 수 없다는 거죠. 모델하우스는 선분양제도가 낳은 기형아입니다.”
김씨의 경우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 생태공원이 단지 인근에 들어서고, 지하철이 도로 건너편 5분 거리에 조성된다는 광고와 모델하우스 미니어처에 철저하게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들어선 것은 도로 건너편이 아닌 단지 바로 옆 지상으로 지나가는 경전철 고가선로의 기둥이었다. 생태공원은 정부 확인 결과 2040년 이후 조성될 예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아 내거나 확률이 낮지만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광고 문구에 속지 않는 것이 더 낫겠죠. 문제는 현재와 같은 선분양제도 속에서는 완벽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광고가 나오는 시점과 실제 아파트를 볼 수 있는 시점 사이에는 적어도 3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김씨는 신용등급이 1등급에서 8등급까지 하락하는 위기 속에서도 입주예정자들의 단합을 이끌며 보상금을 받아내는데 결국 성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케이스는 매우 희귀한 것이며,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일일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씨처럼 대형건설사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입주자 X를 분별해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리더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산 압류 당하고, 협박당하고 하다보면 보통 사람들은 리더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소송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김씨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요즘 유행하는 정산소송과 하자보수소송 등 온갖 소송은 건설사가 오히려 원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설령 입주자가 이긴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배상을 얼마 받지도 못하는데다 건설사가 그 돈으로 업체로서의 의무를 다 털고 면죄부를 받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약아빠진 변호사의 수임료는 덤으로 붙는 최악의 결과물이라고.
◆입주 후 ‘무관심’이 최악의 적
“입주 후에는 입주자대책위원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 아파트는 관리비가 12만원입니다. 인천시 평균인 19만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죠. 1년에 최소 80만원 이상을 절약하는 셈입니다.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에너지 절약도 좋은 일이지만 소비자를 위하지 않는 업체를 경계하고 입대위와 관리사무소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김씨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허위·과장 분양에 관한 소송건부터 초대 입대위와 관리사무소가 저지른 갖가지 비리 의혹을 규명하는 일까지 김씨는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그렇게 힘들고 피곤하게 살면 누가 알아주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김씨는 아무것도 모른 채 불길에 뛰어들었던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제가 특별히 재수 없게 못된 건설사를 만나서 이런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아파트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겠죠. 아파트 소비자(입주자)를 억울하게 하고, 이웃의 돈을 빼돌리는 이들은 무관심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아파트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저의 부족한 경험담이 아파트 생활 백서가 되어 미약하나마 힘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