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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 최근 유명을 달리한 50대 A씨는 남편에게 "수의를 입히지 말고 내가 평소 좋아했던 옷을 입혀서 관에 넣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어차피 화장해 재가 될텐데 수십만원짜리 수의를 입는 것이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A씨의 남편은 고인이 사망한 후 유언대로 수의를 입히고 염을 하는 대신 평소 아내가 즐겨입던 옷을 입히고 유품을 넣어서 함께 화장했다. 그는 "장례문화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겼다"며 "아낀 수의비용은 아내 이름으로 좋은 곳에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효(孝)를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만연한 게 우리 장례문화의 현실이다. 수백만원에서 1억원짜리 수의가 등장하는가하면 각종 좋은 재목으로 만들었다는 관, 그리고 관을 실어 나르기 위해 고급 외제차를 사용하기도 한다.
김일순 한국골든에이지포럼 회장(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은 "우리의 장례문화는 고급화와 상업화로 물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가운데 허례허식을 탈피하자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을 만나 장례문화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 지금의 장례문화는 전통일까
김일순 회장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의 구체적인 장례방법에 대해 얘기해놓았다고 한다. 비석이나 기념할 만한 별도의 장소는 필요없고 그저 제주도 바다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것이 주내용이다. 김 회장은 "사회와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며 웃는다.
이는 현재와 같은 장례의식으로는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도 사망자는 25만명 수준이었으나 2015년에는 30만명, 2035년에는 현재의 두배인 50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2055년에는 현재보다 3배나 많은 75만명으로 늘어 이를 추적 계산해보면 향후 10년간 총 사망자수는 310만명, 20년간 710만명, 30년간 무려 1230만명이 사망하게 된다.
강동구 생사의례문화연구원장에 따르면 현재의 사망자 1인당 평균 장묘비용으로 추계할 경우 향후 50년간 장례비용 부담 총액은 약 320조원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장례비용의 증가속도로 볼 때 실제로는 이 액수의 2~4배가량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장례를 치르는 데 과도한 비용이 든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매년 부고만 30~40건을 받는데 절반이상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 동창회나 직장을 통해 건너 건너 알았던 사람들"이라며 "돌아가신 이를 위한 게 아니라 유족 중심의 장례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유족들이 자기의 위신을 위해서 혹은 효를 내세우기 위해 남에게 알리는 게 부고의 목적이라는 것.
실제로 장례식장에 얼마나 많은 조문객이 오는가, 혹은 조화는 얼마나 들어오는가가 상주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 등 몇몇 시민사회 단체들은 현재와 같은 장례문화에 반기를 들며 장례문화의 허례허식을 꼬집는다. 염습을 하고 수의를 입히는 것에서부터 장례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염습은 본래 시신의 부패와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양반과 같은 부유층은 장례를 오래 치렀기 때문에 장시간 시신을 보관하면 냄새가 나고 수분이 생겨 입, 코, 귀 등을 솜으로 막아야 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장례기간동안 시신을 저장고에 넣어두기 때문에 부패할 염려가 없어 염습이 따로 필요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아울러 전통적으로 입는 수의 또한 전통문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예전 관직에 있던 사람들은 관복을 그대로 입혀 관에 넣었다. 즉, 수의를 입지 않고 평상복을 그대로 입혀 넣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수백만원에서 1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수의가 생기는 등 다소 과한 면이 있다.
김 회장은 "오늘날의 망자가 과연 일생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수백년 전의 낯선 의상을 입고 의례를 치러야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라며 "평소 입었던 면옷을 입으면 이질감도 없고 자연친화적이다"고 조언했다.
관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화장문화가 보편화돼 관에 안치되는 시간은 시신을 화장장까지 옮기는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큰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관은 시신과 함께 소각되기 때문에 특별히 재질이 좋은 고가 제품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며 "관의 질이 효의 정도를 나타낸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 수목장에도 거품 끼어선 안돼
매장 대신 화장하는 문화가 번지고 있지만 유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도 우리 장례문화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유골함을 모시는 납골당은 포화직전에 이르렀고 그 관리비용도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기 때문에 성묘할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는 추세다. 무연고 묘지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수목장이 대표적인 자연장의 새로운 추세로 떠오르고 있다. 수목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나무·화초·잔디 주변에 묻는 장사시설이다. 시설에 묻는 것뿐 아니라 바다에 뿌려 불필요한 관리비용을 절감하는 바다장도 최근 각광받고 있다.
장례문화가 자연장으로 조금씩 이전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폐단도 나타난다. 아무래도 형식을 따지는 장례문화가 남아있어 묘지를 쓰는 것만큼이나 자연장에서도 별도의 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어 이에 따른 관리비용의 부담을 안고 있다.
김 회장은 "꼭 이름을 달고 비석을 세워야만 추모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2대만 위로 올라가도 무덤이 버려지기 쉽기 때문에 자연장은 그야말로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안과의사이자 세벌식타자를 개발한 공병우 박사의 죽음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95년 유명을 달리한 공 박사의 유언은 조촐한 장례를 치르는 것이었다. 그는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만한 장기와 시신은 모두 병원에 기증하라. 죽어서 한평 땅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것이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부고가 세상에 전해진 것은 이미 장례를 치르고 난 후였다.
사전장례의향서를 아시나요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은 노인을 대상으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강연과 함께 '사전장례의향서'를 쓰도록 하고 있다. 사전장례의향서는 천편일률적인 장례문화에서 벗어나 고인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선택하게 함으로써 과도한 장례문화를 개선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현재까지 1만장이 배포돼 작성되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김일순 회장은 "자녀들은 효의 강박관념 때문에 남들이 하는 만큼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며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달라는 고인의 뜻이 담겨 있다면 자녀들도 효에 거스름 없이 유지를 받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바람직한 장례문화는 노인세대에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장례의향서에는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것부터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염습을 하고 수의를 입을지, 시신처리는 어떻게 할지 등 장례 전반에 걸친 내용을 직접 선택하도록 돼 있다. 예컨대 부고는 ▲널리 알릴지 ▲알릴 사람에게만 알릴지 ▲장례 후 알릴지 중 선택하는 식이다. 또 장례식은 ▲전통문화 계승차원에서 지켜달라 ▲간소하게 치러 달라 ▲가족과 친지만 모여 치러달라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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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김일순 회장은 "자녀들은 효의 강박관념 때문에 남들이 하는 만큼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며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달라는 고인의 뜻이 담겨 있다면 자녀들도 효에 거스름 없이 유지를 받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바람직한 장례문화는 노인세대에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장례의향서에는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것부터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염습을 하고 수의를 입을지, 시신처리는 어떻게 할지 등 장례 전반에 걸친 내용을 직접 선택하도록 돼 있다. 예컨대 부고는 ▲널리 알릴지 ▲알릴 사람에게만 알릴지 ▲장례 후 알릴지 중 선택하는 식이다. 또 장례식은 ▲전통문화 계승차원에서 지켜달라 ▲간소하게 치러 달라 ▲가족과 친지만 모여 치러달라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