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만건'.
 
사상 최악의 고객정보 유출사고를 일으킨 KB국민·NH농협·롯데카드 등 카드 3사(2월1일)의 신용(체크)카드 재발급 요청과 해지·탈회 요청건수다. 해지신청 건수는 228만3000건으로 기존 고객 보유(2702만장) 대비 9.7%에 달했다. 탈회 건수는 84만건이다.

신용카드사들이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 1억건이 넘는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지면서 비난여론과 감독당국의 제재라는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노도(怒濤)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은 KB국민카드와 NH농협카드, 롯데카드. 금융당국은 3개 카드사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당장 '수익급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승인금액은 총 545조17억원으로 전년대비 4.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카드승인금액 연간증가율'이 한자리수를 기록한 것은 2005년 협회가 카드 통계를 산출한 이래 처음이다.

카드사에 대한 신뢰 역시 급격히 떨어졌다.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2월5일 발표한 11개 카드사의 브랜드지수(BMSI)를 보면 KB국민·농협·롯데카드는 물론 신한·삼성카드 등도 함께 이미지가 실추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카드는 정보유출 항목이 공개된 지난달 17일을 전후해 지수가 33.1에서 27.6으로 5.5포인트나 떨어졌다. 국민카드는 51.5에서 46.2, 농협카드도 39.1에서 38.5로 주저앉았다. 이와 더불어 신한카드(52.3→50.5)와 삼성카드(41.7→39.6)도 각각 1.8포인트, 2.1포인트 하락했다.

카드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올해 경영전략은 적자를 피하는 것"이라며 "수익확대는 기대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소나기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현재의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사진=뉴스1 박지혜
▲사진=뉴스1 박지혜

◆CEO 부재·영업정지 사면초가

개인정보 유출사태의 주범인 카드 3사는 사면초가다. '최고경영자(CEO) 사퇴', '3개월 영업정지'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KB국민카드의 경우 분사한지 3년도 채 안돼 또 다시 지주(은행)에 흡수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카드사들이 제일 우려하는 부분은 영업정지다. 금융당국은 3개 카드사에 대해 2월17일부터 3개월간 영업정지 처벌을 내렸다. 역대 카드사들이 받았던 처벌 중 최고 수위다.

이에 따라 신규고객 유치에 손이 묶이고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마저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또 오는 3월까지 전화·문자메시지·이메일 등 비대면 대출모집이나 영업도 할 수 없다.

문제는 대출과 현금서비스 금지에 따른 실적 저하다. 그동안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는 카드사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실제로 2012년 기준 카드론 이용금액은 24조6840억원으로 2002년과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역대 최고실적을 기록했다. 여행알선, 통신판매 등 카드사의 부수업무도 매년 역대 최고실적을 갈아치웠다. 2012년 기준 부수업무 실적은 2조9000억원 규모였다.

영업정지가 상반기에 이뤄진 점도 치명타다. 카드사들은 상반기까지 신규회원 유치 등 한해 영업목표를 절반 이상 달성하고 하반기부터는 상반기 성과가 선순환되는 구조다. 가장 중요한 시기가 새학기가 시작되는 1~3월이다. 하지만 당장 단문메시지(SMS), 이메일 등을 이용한 마케팅이 영향을 받음에 따라 카드사들은 동력을 잃게 됐다.

카드모집인 운용에 어려움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업정지를 받게 되는 카드사 모집인의 경우 3개월 동안 일감을 잃게 된다. 영업정지와 무관하게 해당 카드사들이 이들 모집인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모집인 조직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CEO리스크도 불확실성 리스크를 확대시키고 있다. 올 들어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과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이 정보유출 사태를 책임지고 사퇴했다.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역시 사태 수습을 이유로 사표가 반려됐지만 이후에는 수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기자
▲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기자

◆카드사 위기극복 어떻게

그렇다면 기로에 서 있는 카드사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장의 해결책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실상 단기적으로는 뾰족한 해법이 없는 셈이다.

우선 떨어질대로 떨어진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고객들이 안심하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 또 최근 홈페이지 접속 지연과 콜센터 연결 지연 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내부 전산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시스템 마련도 시급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소비자 보호는 개별 금융사들이 결정하는 것보다는 각 협회가 중심이 돼 전 금융사들이 자발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에 앞장서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고객들이 안심하고 금융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CEO 선임 작업도 서둘러 마무리 해야 한다. 이미 와해될대로 와해된 내부 분위기를 바꾸고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인사를 뽑아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정확한 판단력과 냉철한 추진력을 갖춘 CEO 선임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이 살 수 있는 길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고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 외에는 없다"면서 "능력있는 CEO 선임을 통해 위기에 빠진 카드사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