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잘 지냈니?"
"예! 형님도 잘 지내셨죠?"
"나야 항상 똑같지. 너희들은 계획한 대로 잘 살고 있지?"
"잘 안돼요! 그래도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다."

가을을 알리는 비가 내린 지난 9월29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맞은편의 한 커피숍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박나단(22)·정용수(22)·이하나(22)·김경제(23). 이들 4명은 서로 친구 사이로 기자가 잠시 다른 일(치킨집)을 하던 지난 2011년 기자와 함께 가게를 꾸려가던 이들이다. 당시 이들의 신분은 고등학교 3학년.

'고3인 학생들을 데리고 장사를 했냐'는 질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친구들의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을 듣고는 부모님들을 뵙고 동의를 얻었다. 물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한 탓에 이들이 필요한 이유도 크게 작용했지만….

사실 이때 어떻게 동의를 얻었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내뱉은 딱 한마디 말이 떠오른다. “이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이 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 부모는 자식의 아르바이트를 허락했다.

어찌됐건 우리 5명은 이때부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고3의 세월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가까이 함께 했다. 서로 땀 흘려 일하고 다투고 보듬으며 같이 고민하던 소중한 시간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 기간 동안 기자는 어른놀이(?)하며 아이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척 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아이들은 스스로 각자의 목표를 정하고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했고, 아이들의 도전을 보면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분명 내 고3시절보다 이 아이들은 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4명은 사회라는 치열한 경쟁의 길목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사회 진출의 갈림길에 선 이들 네 친구의 도전 이야기를 소개한다.


 

[청년이 미래다] 고3 알바생 4명의 '3년 후'

◆ 고3, 갈피 못 잡는 4명의 아이들

한창 수험 준비로 바쁜 시기인 고3 여름방학. 박나단과 정용수 학생은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여타 다른 고3들이 학원과 도서관에 앉아 책을 파며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는 것에 반해 정보산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친구는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이때 기자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당시 장사를 하고 있던 기자는 일손이 필요했기에 이들과 만났다. 면접을 보러 온 이 두 학생에게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이 둘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용수 군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둘이 살았으며 50세를 훌쩍 넘긴 용수 아버지는 직장이 없었다. 나단 군은 장사를 하는 부모의 벌이가 신통치 않아 가정형편이 무척 어려웠다.

이틀 뒤 또 다른 고3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찾아왔다. 바로 이하나 양과 김경제 군이었다. 두 학생은 용수나 나단 군과 다르게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 두 학생 역시 넉넉지 않은 가정여건으로 일자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경제 군은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하던 친구로 고등학교도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었다. 하지만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수술과 전학 등의 사유로 1년 휴학해 다른 친구들보다 1살이 많았다.

이들에게도 “일단 생각해 본 후 연락하겠다”고 말한 뒤 곰곰이 생각했다. 다음날 이 친구들에게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면 일을 하자"고 말했고 4명의 친구들은 이튿날 아르바이트 취업에 대한 부모님 동의서를 가져왔다. 이후 이들 부모가 걱정을 할 것 같아 직접 전화를 드렸다. “일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이번 주말에 가게로 한번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후 주말에 부모님들을 만나 가게 음식을 대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학생의 부모는 “자신이 못나서 고3인 아들 뒷바라지를 못하고 있다”며 미안해했고, 일부 부모는 “저 녀석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고 성을 냈다.

이러한 부모들에게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며 친구들의 학업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고 방황하지 않도록 친 동생들처럼 여기며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이렇게 설득을 한 이후 이들 4명과 본격적으로 일을 했다. 나이가 같은 3명은 서로 알던 사이였고 1살이 많은 경제군은 서로 안면이 없었지만 금세 친해졌다.

◆ 결정을 내려야 했던 2011년 10월

치킨집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서로 짜증을 내며 다투기도 했지만 금세 화해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들끼리 고민도 서로 말하고 들어주는 진짜 친구 사이가 됐다. 이렇게 함께 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10월이 됐다. 학교에서 동기들이 대학진학 준비를 하고 취업에 나서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본 탓인지 4명의 친구들은 항상 “난 어떡해야 하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서로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형님 전 뭘 해야 할까요?” 가장 살갑게 다가오던 용수가 물었다. 이 질문을 받자 ‘어른스런 모습을 보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언이랍시고 했는데 ‘꼰데’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대학 갈 생각이 아니면 기술 배워서 취직해야지.”

이 말을 내뱉은 후 많이 후회했다. 옆에서 봐오면서 이 친구들이 뭘 원하는지, 어떤 특기가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는 인맥을 동원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지인 중에 한명이 적성 및 직업컨설팅을 하고 있어 4명의 친구들을 보내 상담을 받도록 했다.


[청년이 미래다] 고3 알바생 4명의 '3년 후'

◆ 갈림길에 흩어진 4명의 학생

상담내용을 지인에게 전해들은 후 이 친구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가게 영업을 마치고 가게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해서는 안 되지만 약간의 음주도 곁들였다. 배를 채운 후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가장 하고 싶은게 뭐냐”고….

그러자 용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 돈 벌고 싶어요. 돈 모아서 곱창이나 닭발집을 하고 싶어요” 이후 다른 친구들도 말문을 열었다. 경제는 전기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고, 나단이는 항공정비가 비전이 있을 것 같다며 항공정비 전문학교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홍일점인 하나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성적이 너무 안 좋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각자에게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한번 알아보고 일주일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일주일 뒤 다들 열심히 조사해 왔다. 하나는 재수를 해 의상디자인 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경제는 전기 일을 하는 외삼촌을 따라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고 나단이는 남영역에 위치한 항공정비 전문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했다. 용수만 아직 정확한 진로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각자 자신의 길을 스스로 결정한 이후 하나, 경제, 나단이는 가게를 떠났다. 하나는 오전에 편의점 알바를 하며 오후에 미술학원을 다녔고, 경제는 외삼촌과 함께 공사현장을 누볐다. 나단이 역시 항공전문학교를 다니게 됐다.

용수만 이후로 기자와 함께 6개월가량 일을 더 했고, 이후 공익근무요원을 하며 서대문에 꽤 유명한 곱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홀로서기는 진행형

이후 3년여가 흐른 지금. 치킨집 사장과 종업원이 아닌 기자와 각 분야에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만남은 약간 어색했지만 네 친구들의 눈동자를 보니 잘 지내는 듯 했다. 하나는 재수를 통해 결국 서울에 있는 대학의 의상디자인 학과에 진학했고, 경제와 나단이는 군대를 다녀와 다시 현장과 학교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용수는 자세히 묻지는 안았지만 약간의 자금을 모아둔 듯 했다. 각자가 목표로 한 삶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 4명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