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6개월 만에 소위 ‘대박’을 치고 2년 만에 전국 200개가 넘는 가맹점을 두는 등 갈매기살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이어 다양한 미투브랜드가 줄줄이 생겨났다. 일반 고깃집에서도 메뉴판 아래에 위치해있던 갈매기살을 위쪽으로 슬쩍 올려놓기 시작했다.
지금 갈매기살은 특수부위라 부르고 있으며 고깃집에서 하나의 차별화 요소로 부상했다. <서래갈매기>가 촉발한 변화다. 그 중심에 박철 대표가 있다. 박 대표는 이제 해외시장의 선점을 꿈꾼다.
막 물꼬를 터 현재 중국 진출이 한창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13억 대륙이 선택한 맛이라고 한다. <서래갈매기>의 제2막이 열렸다. 진짜 ‘갈매기의 꿈’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중국 시장 필두로 해외 사업 본격화, 1호점 월매출 2억원
빨간 자가용만큼이나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외모. 지나치게 빼어난 외모를 지닌 사람은 자칫 실력을 의심 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래스터 박철 대표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뒤안길을 보면…. 그는 25년 동안 한 우물만 판 뚝심가다.
◇ 중국 시장 필두로 해외 사업 본격화, 1호점 월매출 2억원
빨간 자가용만큼이나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외모. 지나치게 빼어난 외모를 지닌 사람은 자칫 실력을 의심 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래스터 박철 대표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뒤안길을 보면…. 그는 25년 동안 한 우물만 판 뚝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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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대표 (제공=월간 외식경영) |
오픈하자마자 ‘대박’이 났고 현재 하루 200~300팀이 대기하고 있다. 매출은 월 2억원 정도다. 처음에는 내방객의 90% 이상이 한국인이었지만 지금은 90%가 중국인이다. 매장이 유명해지면서 중국 지상파 방송에 4~5번 소개됐다. 지난 10월 중순에는 중국어판 조선일보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의 성공스토리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사에서는 ‘갈매기살’이 중국에서 ‘치맥’에 이어 제2의 한식열풍을 이끌었다고 소개한다. 소문에 따르면 <서래갈매기>를 맛보기 위해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상하이 매장에 오는 손님이 있다는 내용도 있다.
<서래갈매기> 덕에 그 골목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서래갈매기>의 입점으로 손님이 모여들었고 낮부터 긴 줄이 늘어서는 이색 광경이 펼쳐졌다. 게다가 드라마 ‘상속자들’, ‘별에서온그대’ 등 한류 바람이 더해져 오픈한 지 5~7년씩 된 주변 가게들까지 덩달아 매주 최고 매출을 경신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에 비유하자면 서울 ‘가리봉동’이 ‘종로’로 거듭난 격”이라고 표현했다.
해외사업에 돌입한 것은 2012년 초. 1년여 준비 끝에 2013년 4월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6월 중국 산둥성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했다. 9월 중국 상하이 법인을 설립하고 직영점을 오픈한 후 11월 중국 랴오닝성, 장쑤성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완료했다.
중국 진출이 본격화 된 것이다. 2014년 1월 저장성, 6월 광둥성, 허난성, 후베이성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진행하고 8월 베이징에 직영 1호점을 오픈했다. 현재 해외에 문을 연 매장은 총 10개로 상하이 직영 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5년 내 중국에 100개 매장이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이 같은 순항에 박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고기를 부위별로 즐기고 테이블에서 즉석으로 굽거나 쌈 싸먹는 한국 문화를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고기 외에도 추가로 구성한 순두부찌개 등 한식 메뉴도 인기가 좋다”며 “무엇보다 케이팝, 드라마 등 한류 바람의 덕을 많이 봤다”고 공을 돌렸다.
이어 “무에서 시작해 계약서 쓰는 것부터 힘들었지만 해외 인터뷰 때 현지 기자들이 ‘<서래갈매기> 덕에 한국의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고 많이 알게 됐다’고 할 때마다 그간의 어려움은 씻은 듯이 사라질 정도”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지금 어깨가 무겁다. 단순한 기업 브랜드가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맛집이 됐기 때문이다. 이젠 중국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리딩 브랜드가 됐다.
◇ 실패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서래갈매기>의 성공
<서래갈매기>는 박철 대표의 자신감이 ‘바닥’이었을 때 시작한 ‘구멍가게’였다. 직전 강남 일대에 매장 여러 개를 두고 한 매장에서 월 1억원씩, 순수익만 월 5000만원씩 벌어들였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다가 두 번 연속 엎어졌기 때문이다.
◇ 실패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서래갈매기>의 성공
<서래갈매기>는 박철 대표의 자신감이 ‘바닥’이었을 때 시작한 ‘구멍가게’였다. 직전 강남 일대에 매장 여러 개를 두고 한 매장에서 월 1억원씩, 순수익만 월 5000만원씩 벌어들였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다가 두 번 연속 엎어졌기 때문이다.
사업 확장으로 번 돈을 날린 것은 물론 추가로 7억~8억원을 적자 봤고 그나마 잘되는 매장은 하루아침에 건물주에게 쫓겨난 터라 속이 더 상했다. 개인적으로 준비했던 일도 사기를 맞는 등 모두 망했다. 화불단행이라더니 모든 일이 한 번에 터져 감당하기 힘들었다.
당시 그에게 사업은 두려움을 넘어선 트라우마였다.
사업에 대한 주변의 권유는 끊이질 않았고 사업가 기질을 타고났던 박 대표는 어렵게 재기를 꿈꾸며 매장을 오픈하게 된다. 원래 49.59㎡(15평)짜리 어묵 바로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안됐다.
사업에 대한 주변의 권유는 끊이질 않았고 사업가 기질을 타고났던 박 대표는 어렵게 재기를 꿈꾸며 매장을 오픈하게 된다. 원래 49.59㎡(15평)짜리 어묵 바로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안됐다.
일산에서 매장을 차렸을 때 회식자리로 인상에 남았던 한 부속고깃집이 문득 생각났다. ‘그거다’ 싶었다. 점포를 개조하고 업종을 바꿔 2007년 4월 재 오픈했다. 그 점포가 바로 서울 회기역 근처 <서래갈매기> 1호점이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으니 그제야 마음이 한 층 놓이더라고요. 이제는 최선만 다하면 되겠구나 싶었지요.”
다른 업소와의 차별화를 위해 ‘근’ 단위 판매 전략을 도입하는 등 사활을 걸었다. 같은 집을 하루에 4번씩 가서 먹고 오기도 했다. 고기 양념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픈 전 두 달 바짝 양념 개발에만 매달렸다.
맛 테스트를 수도 없이 진행했다. 사실 처음에는 맛에 대한 자신이 없어 오픈 일정을 미루려고도 생각했다.
“오픈 준비를 완료하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맛은 성에 차지 않고 자신감은 여전히 없고 겁나고, 일주일을 그냥 보냈습니다. 오픈 날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평소 눈물이 많지 않았던 박 대표였지만 그 전 사업 실패에 대한 상처가 크고 깊었다.
“그 때도 일을 겪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청 울었거든요. 수시로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은 아마 그 이후부터였을 겁니다.”
“그 때도 일을 겪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청 울었거든요. 수시로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은 아마 그 이후부터였을 겁니다.”
일단 오픈 일정은 맞췄다. 대신 맛을 위한 연구, 개발은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루에 20만~30만원씩 팔았다. 갈매기살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도 있었고 채소 하나 없는 찬에다 연탄불에 구워 먹어야 하니 손님이 올 리 없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20만~30만원씩 팔았다. 갈매기살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도 있었고 채소 하나 없는 찬에다 연탄불에 구워 먹어야 하니 손님이 올 리 없었다.
하지만 ‘대박’이 터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서히 방문 고객 수가 늘더니 어느 순간 가게가 사람들로 터져 나갔다.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한 갈매기살의 매력이 통한 것이었다. 게다가 푸짐한 양, 저렴한 가격에 이른바 ‘잭팟’이 터졌다.
6개월을 넘기면서 가맹점을 내달라는 문의가 계속 왔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전개보다 오래가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고사했다. 직영점 오픈에 힘을 실었다. 2호점 역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 한 목숨 살리려 시작한 가맹점사업, 대박 물꼬 터
오래가는 브랜드, 지역의 명소가 되기 위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고사했던 그가 마음을 돌린 것은 한 젊은이를 만난 후였다.
◇ 한 목숨 살리려 시작한 가맹점사업, 대박 물꼬 터
오래가는 브랜드, 지역의 명소가 되기 위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고사했던 그가 마음을 돌린 것은 한 젊은이를 만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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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대표 (제공=월간 외식경영) |
1년 반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기존에 가맹점을 내달라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업 진행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순식간에 20여개를 오픈했다. 가맹점의 대박행진으로 창업 희망자는 늘어만 갔다.
본사는 가맹 개설과 동시에 본사 인력을 추가하고 시스템 보완과 정비하기 바빴다. 원재료 수급의 어려움도 겪었다. 물량 확보가 미흡해 6개월간 가맹 사업을 멈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창업 대기자가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외식업계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광고나 홍보 없이 직영점 오픈 4년 반 만에 약 230개 가맹점을 오픈했다.
“그 젊은 총각 덕이지요. 아직도 저를 만나면 생명의 은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뿌듯하지요. 제가 어딜 가서 또 생명의 은인이라는 소리를 듣겠어요(하하).”
<서래갈매기>는 258개까지 전국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문제는, 트렌드는 변하고 사람들은 빨리 식상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서래갈매기>는 현재 매장이 150개 정도로 퇴보하는 추세입니다. 100%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물량 수급이 힘들고, 소비자에게 어필할 만한 새로운 이슈 거리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문제는, 트렌드는 변하고 사람들은 빨리 식상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서래갈매기>는 현재 매장이 150개 정도로 퇴보하는 추세입니다. 100%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물량 수급이 힘들고, 소비자에게 어필할 만한 새로운 이슈 거리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솔직하게 밝혔다. 그래서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한다. <서래갈매기 시즌2>를 비롯해 <서래판>, <서래맥주집> 등 기존 점주들에게 대안이 될 만한 콘셉트로 브랜드를 기획했다. 리브랜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 해왔고 제일 잘 하는 거라 생각해 비슷한 업종을 선택했다”며 “하지만 브랜드 별로 특색 있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맹비 없고 인테리어도 직접 시공 가능하도록 했다”며 “이미 리브랜딩한 매장도 몇 개 있고 그 점주들이 입소문 내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마진율이 좋고 매출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뿌듯하다고.
그밖에 불고기 등 정갈한 한식 위주의 <서래불고기>와 국내산 갈매기살을 사용하는 <서래통>을 론칭해 직영사업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올해 중반부터는 국내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