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부 김혜숙씨(46·수원시 권선구)는 주말이면 종종 아이들과 함께 건강계단을 찾는다. 아이들에게 '일상 속 나눔'에 대한 교훈을 주고 싶어서다. 여기를 걸을 때마다 불빛과 함께 피아노 소리까지 나오니 아이들도 꽤나 만족해한다.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몇번씩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재미있게 놀면서 남을 돕는 것. 김씨는 "요즘은 어른도, 아이도 걷는 일이 많이 줄었는데 이렇게 계단을 오르며 나눔의 의미까지 나누니 참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1월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디큐브백화점 지하 2층. 신도림역 방면으로 가는 통로에서는 간간히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예쁜 모양의 계단이 있다. 커다란 하트가 그려진 이 계단은 밟을 때마다 '도레미파솔'과 같은 계이름 소리가 난다. 단조로운 계단에 시·청각적 재미를 더한 이색 작품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 가운데 일부는 계단 옆에 자리한 에스컬레이터를 탔지만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상당수가 해당 계단을 이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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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대성산업 |
◆1석3조의 계단 운동법
이 계단은 지난 8월 구로구와 대성산업의 디큐브백화점이 손잡고 설치한 것이다. '걸으며 기부하는 건강계단'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계단 이용 활성화와 이웃사랑 실천을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계단에 센서가 설치돼 있어 걷기만 해도 기부금이 자동 적립되는 방식이다.
우선 건강계단은 두 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인 피아노 계단은 밟을 때마다 피아노 소리와 불빛이 나오도록 설계됐다. 2구간인 이벤트 계단은 사진공모전의 우수작품, 각종 캠페인 내용 등을 페인팅해 주민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곳곳에 계단을 이용함으로써 소모된 열량과 건강수명 등의 정보가 함께 제공된다.
계단 옆 벽면에는 현황판이 설치돼 사업안내와 건강계단 하루 이용자 수, 누적이용자 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용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평일 하루 1500여명, 주말 하루 3000여명이 건강계단을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 한사람이 계단을 이용할 때마다 10원이 적립된다. 기부금은 대성산업에서 후원하기로 했다. 연 최대 2000만원 범위 내에서 적립, 연말에 구로희망복지재단에 전액 기부돼 무료급식소, 사회복지시설, 다문화가족 관련시설 지원 등 저소득층과 아동·청소년을 위한 복지활동에 쓰일 예정이다. 지난 11월25일 오후 5시 기준, 건강계단 누적이용자 수는 21만2046원으로 총 210만원가량 적립됐다.
시민들은 재미있게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금도 적립하는 이중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셈이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건강계단 설치 전 3%에 불과했던 계단 이용자 수가 40%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디큐브백화점 관계자는 "계단이 긴 편이고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평소 계단 이용이 많지 않았지만 기부하는 건강계단이 조성된 이후로 계단 이용객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일부러 이곳을 찾는 시민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한 유치원에서 단체로 방문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계단에 대해 설명해주고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즐거워했다는 후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원들도 건강계단을 이용하기 위해 길을 돌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계단을 이용한 직장인 김지혜씨는 "운동도 하고 기부도 하고 에너지도 절약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라며 즐거워했고 대학생 최유미씨는 "평소 기부라고 하면 거창한 방식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 색다른 재미까지 느끼며 기부할 수 있으니 참 좋다"며 반겼다.
◆건강·기부계단 10개로 확산
이 같은 건강계단은 앞으로 주변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올해 구로구 등 8개 구에 각각 연간 2000만원, 서울역과 왕십리역에 각각 1년 동안 1억원을 기부금으로 조성하는 계단을 설치키로 하고 각 구청이 지역 내 후원업체와 협약을 맺어 진행하는 '서울시 기부하는 건강계단사업'을 추진 중이다.
구로구 외에 중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양천구, 금천구, 영등포구, 서초구, 송파구 지하철역에도 기부계단이 순차적으로 설치돼 일상 속 기부문화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건강도 챙기고 기부도 할 수 있어 호응도가 높다. 바로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지만 기부계단에 대한 설명을 읽고 일부러 계단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 또 피아노 소리가 나서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거나 기부금액이 적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계단처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퍼네이션은 기부에 대한 금액적인 부담감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낮추는 등 기부에 대한 인식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퍼네이션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디큐브백화점은 다가오는 연말을 맞아 멤버십카드에 쌓인 포인트를 현금처럼 기부할 수 있는 멤버십 포인트 기부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올해로 3년째 진행하는 캠페인으로, 디큐브 멤버십 포인트가 5000점 이상이면 백화점 4층 고객센터를 방문해 기부할 수 있다. 1000포인트 단위로 추가 기부가 가능하며 포인트 금액만큼 현금으로 환산돼 기부된다. 오는 12월25일까지 진행하며 고객들이 기부한 포인트는 연말에 구로희망복지재단에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