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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
국토부가 조현아(40) 대한항공 전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일각에서는 제왕적으로 군림하는 오너 경영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지난 6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KE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주행하던 중 다시 탑승구로 돌아가 사무장을 내려놓고 출발한 것에서 시작했다.
당시 한 승무원은 1등석에 타고 있던 조 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 너트를 봉지째 건넸다. 이에 격분한 조 전 부사장은 고성을 지르며 책임자인 사무장을 질책했다. 당황한 사무장은 조 전 부사장이 지시한 기내 서비스 규정을 바로 찾지 못했고, 결국 사무장은 비행기에서 내리게 됐다. 이 사건으로 비행기는 20여분 늦게 인천으로 출발하며 250명의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그런데 여론을 더 흥분시킨 것은 대한항공이 내어놓은 사과문이었다. 사건 직후 대한항공은 “비상상황이 아닌데도 항공기를 되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한 것은 지나친 행동”이라면서도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와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며 조 전 부사장을 두둔하는 사과문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건의 원인이 그룹 내에서 오너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한진가 재벌 3세가 어떤 방식으로 회사에서 영향력을 구축했는지를 보면 사건의 원인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미국 코넬대를 졸업한 후 1999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한진그룹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했다. 입사 7년이 지난 뒤 상무보로 승진해 첫 임원을 달고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대한항공의 등기이사이자 계열사인 한진관광, 칼호텔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등의 대표이사, 항공종합서비스의 이사도 역임하고 있다.
등기이사의 권한은 기업에서 매우 크다. 기업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하는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바로 이사회에서 선임한다. 대한항공의 경우 사내 등기이사는 총 6명이고 이 중 조양호 회장, 그의 매형 이태희 법률고문, 조현아, 조원태 부사장등 4명이 친인척관계다.
외부에서 보기에 조 전 부사장은 회사의 주요 보직을 맡으며 사내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 같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한진 계열사들의 지분을 늘려 회사의 지배권을 손에 넣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벌의 세습이 최종목표라는 것.
지난 11일 재벌닷컴은 조 전 부사장을 포함한 삼남매가 보유한 상장기업의 주식가치가 1286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08년의 72억원에 비해 17.9배에 달한다. 이들이 자신의 주식가치를 단 5년만에 스무배에 가깝게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조직 재편을 통한 간접 지배와 지주회사와 대한항공의 주식을 교환하는 형태의 유상증자 등이다. 대한항공 삼남매는 이런 방식으로 일가의 지분율을 높였다.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지분율은 6.76%에서 15.49%로 늘었고,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삼남매는 각각 131만3097주, 131만4532주, 131만716주를 보유하게 됐다. 삼남매의 지분율은 7.43%에 달한다.
한 가지 의혹이 더 있다. 지난 8월 한진그룹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석기업은 삼남매가 보유한 자사주 7만1880주를 24만7796원에 매입했다. 이를 통해 삼남매는 매각대금으로 현금 178억1100원을 받았다. 이 가격은 삼남매가 지난 2009년 주당 10만7958원에 매입했을 때 보다 2.4배 가량 증가한 금액이다. 삼남매는 이 거래로 5년만에 100억의 차익을 실현한 것이다. 삼남매는 정석기업의 주식을 자산관리공사의 공개매각을 통해 취득했다. 당시 조양호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자 조중훈 회장의 정석기업 지분을 상속받으며 상속세의 일부를 주식으로 납부했다. 납부된 주식은 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가 공개매각 처분됐고 결국 대한항공 삼남매가 10만원대에 매입했다.
문제는 정석기업이 삼남매의 자사주를 매입할 때 책정한 가격 24만7796원은 주당순자산가치(BPS)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기업의 순자산을 주식 수로 나눈 BPS는 상장기업의 주가가 적정한가를 판별할 때 사용한다. 삼남매가 이 주식을 취득할 때의 BPS는 13만8806원이었다. 하지만 정석기업은 이보다 10만원 이상 비싼 가격에 자사주를 매입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측은 “복수의 회계법인을 통해 공정한 방법으로 가치를 산정했고, 구체적인 산정방법이나 회계법인 이름은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에서 재벌 3세는 돈을 벌 수 있는 알짜 사업과 어김없이 관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사옥 1층의 카페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명의로 돼있다. 이같이 재벌 3세의 성장을 도우며 ‘오너가 바로 회사’라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기업에서 어찌보면 이번 사건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 전 부사장의 검찰 고발이 예정된 가운데 향후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