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사내유보금과 관련해 해당기업에 세금을 매기기로 한 때문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매출액에서 매출원가, 판매관리비, 영업외 손익, 법인세, 배당금을 빼고 남은 이익을 사내에 쌓아둔 금액. 즉,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남겨두는 자금을 말한다.
정부는 올해 1월1일부터 이 같은 사내유보금에 대해 ‘기업소득환류세’라는 이름을 붙여 과세하기로 했다.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는데 제조업 등 투자가 많은 기업은 당기소득의 80%, 금융·서비스업 등 투자가 적은 기업은 당기소득의 30%를 과세기준율로 잡아 투자금·배당금·임금 증가분을 뺀 차액에 10%의 세율로 세금이 매겨진다. 기업소득 가운데 투자와 배당, 임금인상 등으로 80%를 사용하지 않으면 법인세와는 별도로 기업소득환류세로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유보금 최대 ‘삼성’, 최대 징수액 ‘현대차’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10대 그룹 중 사내유보금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이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말 연결기준 삼성그룹의 사내유보금은 196조8000억원이다. 10대 그룹 전체의 36.6%에 달하는 규모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두 번 째로 많은 124조5000억원이고 SK그룹과 LG그룹은 각각 58조8000억원과 47조9000억원으로 3,4위를 차지했다. 이어 포스코그룹(44조9000억원), 롯데그룹(28조6000억원), 현대중공업그룹(17조2000억원), GS그룹(10조4000억원), 한화그룹(6조원), 한진그룹(2조7000억원) 순이다.
사내유보금이 많다고 해서 기업소득환류세를 많이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제조업 80%, 비제조업 30%' 기준을 적용할 경우 10대 그룹 중 환류세액이 가장 큰 곳은 현대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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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재정연구포럼 주최로 열린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동욱 기자 |
CEO스코어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올해 내야할 환류세는 5550억원 규모다. 계열사별로는 현대차 2000억원, 현대모비스 1280억원, 기아차 890억원, 현대하이스코 810억원 등이다. 다만 현대차는 지난해 9월 10조5500억원에 인수한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매입이 투자로 인정될 경우 환류세액은 대폭 줄어들 수 있다.
다음은 삼성그룹으로 대상기업인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메디슨, 시큐아이 등 4곳의 환류세 총액이 3800억원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3580억원으로 삼성그룹의 ‘사내유보금 세금’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밖에 SK그룹은 6개 계열사가 920억원, 롯데그룹은 9개 계열사가 345억원으로, 재계순위 상위그룹의 환류세 부담액이 상대적으로 크다.
지난해 기준 기업소득환류세의 과세 대상이 되는 대기업은 700여곳으로, 기업들이 올해 처음 도입되는 환류세제로 인해 지난해와 비교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세액은 총 1조원대로 추산된다.
◆"전례없는 소득환류세 지나치다"
사실 기업소득환류세는 세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금으로, 정부는 사내유보금 과세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 경기활성화를 이끌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가 기업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며 정부와 큰 온도차를 보인다.
전국경제인엽합회 측은 “사내유보금 과세는 내수를 증대시키기는커녕 이중과세에 따른 추가적인 법인세 증가효과를 가져와 장기적으로 기업의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며 과세가 부적절하다는 내용의 건의서를 최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재계가 기업소득환류세제의 시행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배당확대와 관련해서다. 기업들은 정부가 과세를 통해 사내유보금을 배당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이는 외국인 투자자만 배불리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우량기업 중 배당여력이 높은 기업일수록 외국인 보유지분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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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1.8%, 현대차는 43.7%, SK하이닉스 49.9%, 포스코 54.2% 등 주요 우량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오르내린다. 결국 기업소득 환류세를 통해 사내 유보금을 외국인 배당소득으로 돌리고 나면 그만큼 국내기업들의 투자재원이 소진될 우려가 크다.
주식투자나 기업 인수·합병(M&A) 투자를 환류세 적용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도 논란을 부추긴다. 가령 삼성과 한화간 1조9000억원의 빅딜만 해도 한화그룹의 지분 매입이 투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상호 주력사업 확충을 위한 거액투자인데도 세제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의 허용범위와 관련해서도 기업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기업소득환류세법상 업무용 건물에 대한 투자는 인정하지만 기존 건물을 매입하거나 토지를 구입해 업무용 건물을 짓지 않고 묵혀 두는 것은 투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삼성동 한전부지 매입 건을 과연 투자로 인정해 줄지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기업투자 활성화보다 세수 증대가 목적?
과세기준율의 일률적용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사업 영역에 따라 매년 신규 설비투자를 진행하기가 어려운 기업들이 있음에도 정부는 ‘제조업 80%, 비제조업 30%'라는 획일화된 잣대를 내세웠다.
이는 금융업 등 서비스업종의 경우 지점을 늘리거나 전산 설비를 일괄 교체하지 않는 이상 대규모 투자가 어렵고, 설비중심이 아닌 인력 중심인 IT 기업 또한 투자액을 늘리기 쉽지 않은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조치로 평가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 이익의 80%를 무조건 배당과 임금인상, 투자에 쓰라는 것은 지나친 경영규제"라면서 "이는 최고경영자와 주주, 이사회가 결정할 기업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결국 정부의 기업소득환류세제가 기업 투자 활성화 목적이 아닌 세수 증대 목적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