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일부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1인당 GNI가 해마다 약 2000달러씩 증가했다. 그렇다면 지난해 국민소득이 늘어난 만큼 국민행복도 증가했을까. 최근의 조사결과를 살펴보기 전에 행복과 소득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부터 보도록 하자.
미국 정치사회학자인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미시간대)가 발표한 20여년간 세계 각국 ‘행복지수’에 따르면 서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1인당 국민총생산이 1만5000달러를 넘을 경우 행복감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이 낮음에도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부탄처럼 행복은 소득이나 재산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이는 경제적 요인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라 경제적 요인 이외 다른 조건이 크게 다를 때 나타나는 결과다.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등은 1인당 소득이 낮지만 종교적 내세관이 사람의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고 경제적 요인만 다를 경우 행복이 경제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러 국가에서 소득과 행복 사이 관계를 나타낸 그림(Inglehart와 Klingeman, 2000)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예컨대 1인당 소득이 5000달러인 국가에서는 국민의 행복지수가 35부터 85까지 매우 폭넓게 분포된다. 이는 행복에 영향을 주는 비경제적 요소들이 많아서다. 또한 소득이 적어 가난할 때도 경제적 요인이 아닌 것에 마음을 지배받으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인당 소득이 1만달러 전후일 경우에는 소득증가에 따라 전반적으로 행복해지는 경향이 뚜렷하고 대략 1만5000달러 이상이 되면 소득증가에 따라 행복이 느리게 증가하는 경향으로 바뀐다. 고소득 영역에서는 소득이 더 많아져도 행복이 포화점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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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 및 국민소득이 경제지표로서는 유용할 수 있으나 인간의 행복을 측정하는 도구로는 많은 한계가 있음이 지적됐다(<문화경제연구> 2009년, 김윤태).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논문에서 서양사회에서 국내총생산이 증가하고 실질임금이 늘어났음에도 사람들의 행복감은 크게 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1974년).
이와 같은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은 당시 큰 충격을 가져왔다. 미국은 지난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실질임금이 2배로 증가했음에도 행복감은 커지지 않았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득수준이 급상승한 일본과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이스털린, 1995년).
일본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국민소득이 7배나 증가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국민소득이 훨씬 적은 필리핀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 같은 견해만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선진국이 된 후의 경제성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정부 정책의 주요 목표도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이스털린 역설이 비판받는 이유로 한 국가 내 개인의 행복감을 소득 계층별로 분석한 결과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득격차에 따른 행복감의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아도 소득과 행복은 대체로 긍정적 상관관계를 가진다(Hagerty와 Veenhoven, 2003년). 결국 저소득층부터 고소득층까지 모두 포함하려면 행복은 집단 내에서 심리에 영향을 주는 상대적 소득과 개인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절대적 소득, 양쪽 모두에 의해 좌우된다는 절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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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행복도 연령대별 풍선효과
우리나라의 경우 고도성장한 시대에는 소득증가에 따라 국민의 행복도가 골고루 상승한 편이었다. 비록 과거에 비해서는 경제성장 속도와 국민소득 증가속도가 둔화됐지만 아직 우상향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모든 국민 계층의 행복도가 동반 상승하기 힘들어진 시대로 들어섰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경제적 행복 추이’(제15차 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풍선효과가 이해된다. 지난해 12월11~19일 전국 성인 남녀 812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경제적 행복지수는 44.5점을 기록했다. 이는 전기(2014년 6월) 대비 0.9포인트, 전년 동기(2013년 12월) 대비 3.9포인트 오른 것이며 지난 MB정부 5년에 비해서도 상승세를 탄 것이다. 그러나 계층별로는 엇갈리는 결과가 나타났다.
5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전기대비 4.7포인트 상승했고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은 전기대비 8.2포인트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함으로써 중·고령층의 경제적 행복감이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됐다.
가장 낮은 연령층인 2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전기 대비 1.1포인트 상승한 48.9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30대는 20대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전기 대비 3.4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40대는 5.3포인트 낮아져 전 연령층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실시한 조사에서 60세 이상의 경제적 행복감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지난해 7월부터 확대 지급된 기초연금 영향이 일부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보다 연금제도가 잘 정착돼 노후 걱정이 적은 선진국에서는 60세 이상 고령층의 행복감이 20대 젊은 계층처럼 높아 U자 커브 형태를 나타낸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조사가 시작된 지난 2007년 12월 이후부터 7년 동안 20~60대가 많아짐에 따라 경제적 행복감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난해 하반기에 처음으로 선진국과 같은 U자 커브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65세 노인은 지하철을 무료로 승차할 수 있고 기차, 국내 항공기 등의 운임은 일부 할인받는다. 모든 공원·고궁·국공립박물관에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며 목욕, 이발 등 경로우대업종에서는 자율적으로 경로우대를 실시한다.
각종 공연과 문화상품도 경로 우대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취약 독거노인에게 정기 방문전화, 필요한 보건·복지·의료혜택을 발굴·연계·지원하고,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는 도우미를 보내 가사활동을 지원하는 ‘노인 돌봄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노인에 대한 혜택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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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행복 걸림돌, 노후준비
고령층은 복지가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안락한 생활이 가능해짐에 따라 행복감도 당연히 커진다. 반면 고령층 복지에 대한 부담은 사회적으로 경제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하는 중간 연령층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30~40대의 행복지수 감소와 50~60대의 행복지수 증가는 풍선효과로 나타난다. 당장 30~40대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결국엔 누구나 고령층이 돼 그 혜택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사회가 선진국형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경제적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노후준비 부족’(24.8%)과 ‘자녀교육’(22.6%)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연령대별로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20대는 ‘일자리 부족’(27.7%), 30대는 ‘주택문제’(31.1%), 40대는 ‘자녀 교육’(42.4%)을 가장 먼저 꼽았다. 50대는 ‘노후준비 부족’(28.8%)과 ‘자녀 교육’(20.7%)이 비슷했고 60세 이상은 ‘노후준비 부족’(48.5%)이 압도적이었다.
사회에 진입하는 20대는 일자리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지만 일자리를 찾은 30대는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면서 주택문제를 행복해지는 데 걸림돌로 인식하는 것이다.
40대부터 50대 초반까지 경제적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자녀교육 문제다. 주택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개인에게도 기존의 장애물이 줄어들면 또 다른 요소를 장애물로 여기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결국 누구나 고령층이 된다. 따라서 60대 이후에는 노후준비 부족이 경제적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점을 인식하고 20~30대부터 노후준비를 시작하기를 권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