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호텔 뷔페식당에서 파견일용직으로 일하던 김영씨(24·남). 김씨는 약 3개월(2013년 12월10일~2014년 3월29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며 근무했다. 말이 일용직이지 근무형태는 정직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씨는 “남자가 더이상 필요없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노동위는 호텔 측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는 다시 청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요청했고 노동위는 지난달 “부당해고가 맞다”며 원직 복직 판결을 내렸다. 김씨의 승리였다. 그러나 롯데호텔측은 아직도 복직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최근 표면화된 소셜커머스업체의 수습사원 해고 논란과 패션업계의 노동력 착취 등은 모두 20대 피해자가 실질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청년노동은 이렇듯 고용 불안정,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인격적 대우 등으로 멍들고 있다. 청년고용의 문제를 다룬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보다 현실은 더 열악한 셈이다.

올해로 6년째. 청년 노동권 향상을 위해 싸워온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을 만나 현재의 논란이 야기된 배경과 청년 채용시장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사장님’이 아니라 시장구조가 문제

김 위원장은 “채용횡포, 갑질 등의 문제를 어떤 몰지각한 특정 기업이나 사람의 잘못된 행위로 규정하기 이전에 그 행위를 용인하는 구조와 노동시장의 질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우선 과도기적 일자리를 원인으로 꼽았다. 통상 노동시장에서 불완전한 지위를 갖는 청년들의 특징이 인턴이나 실습생 혹은 수습사원 등과 같이 교육과 노동이 혼합된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즉 교육과정을 마치고 직업훈련을 받는 등 사회에 진입한 첫단계에서 벌어지는 문제 양상인 경우가 많다.

김 위원장은 “주로 기업이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악용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렇듯 불완전 지위에 놓인 청년들을 쓰고 버리는 것을 용인하는 노동시장 내의 무질서 상태가 이런 문제를 만든 가장 큰 구조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산업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노동시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산업군에 집중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실제 청년유니온에 접수된 블랙기업 제보 직업군을 살펴보면 패션, 출판, IT, 문화, 예술 등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1990년대 제조업 중심의 산업 성장이 정돈된 뒤 2000년대 이후 발달하기 시작한 산업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여년간 이들 산업이 외형상으로는 성장했지만 그 구성원들의 삶이 안정되도록 하는 장치는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산업이 새롭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산업을 규정하는 노동조합 마련 ▲노사 간의 질서확립 ▲노동자의 권리보호 ▲교육과 서비스 제공 등의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시장질서가 무너짐에도 새로운 것이 추가되지 않은 상태를 위기로 규정하는데 지금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딱 그 상태”라며 “결과적으로는 무질서한 산업군에 들어온 청년세대들이 완전한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보는 셈인데 새로운 질서를 규율하는 정부정책, 새로운 양상의 노동조합 등 지금껏 없었던 것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롯데호텔 소공동
롯데호텔 소공동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는 삶

김 위원장은 노동시장에 변화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지금과 같은 갈등이 드러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갈등의 사이즈가 커지면 공감이 확산되고 그때부터 필요한 사회적 대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청년유니온은 이 같은 맥락에서 올해 블랙기업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블랙기업 운동은 나쁜 사장이 아닌 나쁜 사장을 양산하는 기업집단의 구조적 문제를 풀기 위한 프로젝트다.

김 위원장은 “‘저 사람 나빠’를 넘어 내가 일하는 블랙기업 집단이라는 구조의 문제로 분노의 조준이 이뤄지면 대안을 찾는 변화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인 대안은 ‘더 나은 내일’을 그리는 삶이다. 부모세대의 청년시절과 지금의 청년세대를 가르는 기준선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면 경력이 쌓이거나 소득이 올라가는 등 더 나은 내일을 그릴 수 있었지만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지금보다 덜 나빠지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 싸움에 대한 각자의 목표는 다르겠지만 미래에 대한 믿음이 관건이라고 본다”며 “내가 열심히 일한다면 적어도 내일과 모레는 조금 더 괜찮아지는 모습,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청년 노동시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채용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일문일답>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 최근 화두로 떠오른 채용시장의 문제, 어떻게 보나.
▶터질 게 터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가 알려지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사회가 성숙해지는 단계에서 중요한 사회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 베이비붐 세대가 버팀으로 인해서 청년 취업문이 좁아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
▶일자리 문제를 세대 간 갈등으로 몰고 가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본다. 시장의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고 감독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세대 간 갈등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필요한 질서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 이력서에 ‘한줄’ 넣기 위해서라면 불합리한 노동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이들이 있지 않나.
▶그런 행위를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감수’한다는 표현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본인이 괜찮으니 감수한다는 논리는 달리 말해서 법과 제도, 원칙과 정책, 사회적 약속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