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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공원. |
강원도 양구에는 박수근과 이해인이 있다. 그리고 고향 가까이 철학의 터를 잡은 김형석과 안병욱도 있다. 그림과 시와 사상으로 표현된 그들의 아름다운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본다.
◆박수근 공원과 미술관
절구질하는 아낙, 빨래하는 여자들, 아기 업은 소녀…. 그의 작품에는 촌부가 많이 등장한다. 화강암 같은 캔버스에 선은 단순하고 내용은 소박하고 시선은 따뜻하다. 한참을 서서 보게 된다. 어떤 것은 한눈에 보이지만 어떤 작품은 시선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떠야 형상이 들어온다. 조급함을 버리고 걸음을 멈추고 겸손히 바라보는 자에게만 주는 박수근 화가의 선물 같다. 그는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를 소원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밀레와 비슷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 작품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왜 그가 한국의 ‘밀레’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다. 동양적이지만 동양화는 아니고, 서양화의 기법으로 그렸지만 한국적이고 토속적이다. 사실 예술에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선호를 말한다면 한국인에게 밀레 이상이라고 해도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박수근 선생은 ‘인간의 삶과 진실함’을 그렸다. 전시실에 있는 사진과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자니 그림과 함께 그의 인생 전체가 따뜻한 동화 한편으로 들어온다. 그림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뒷모습은 푸근하면서도 강인한데 한편으로는 쓸쓸함이 서려있다. 어머니를 그리워했을까. 아내를 위로하고자 했을까. 실제로 아내와 자녀를 극진히 사랑했다는 그는 가족들의 회상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그는 손수 그림책을 만들어 주는 아버지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하고 신문 연재를 오려서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 화집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박수근 화백이 직접 그린 북을 찢는 낙랑공주, 호령하는 광개토대왕,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보고 있자니 일상에서 딱딱해졌던 마음까지 녹는 것 같다.
박수근미술관은 선생의 생가 터에 건립됐다. 박수근미술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이 있고 자작나무숲, 동상, 전망대, 박수근 산소, 양구민속공예공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창작 스튜디오가 흥미롭다. 이곳에서는 매년 공모를 통해 역량 있는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지원한다. 이곳에 입주하는 작가들은 이곳에서 1년간 창작 활동을 하며 개인전 개최의 혜택을 누린다. 힘든 창작의 시간을 지낸 박수근 선생이 후배 화가들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제 2,3 기획 전시실에는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특히 큐레이터 박명자 여사의 기증품이 한 공간을 차지하는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박명자 여사는 박수근의 작품 굴비와 인연이 있다. 결혼 선물로 받은 이 작품을 생활고 때문에 2만5000원에 팔 수밖에 없었던 박명자 여사는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30년 후 작품을 수소문해 2억5000만원에 다시 구입하고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가격이 10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이 작품 외에도 유명 작가들의 많은 작품을 기증했고 그 작품들을 미술관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입장료 1000원이 황송한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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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팔랑리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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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시문학관. |
◆이해인 시문학관
여기 아름다운 한사람이 또 있다. 1945년 양구에서 태어난 이해인 수녀다. 어린 시절 언니 오빠가 낭송하는 김소월·한용운·윤동주의 시를 듣고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는 그는 “시는 꿈을 꾸게 하는 놀이이고 노래였다”고 말한다. 그 꿈처럼 영혼을 울리는 글과 자신의 인생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있다.
파로호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이해인 시문학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이해인 수녀의 시와 친필 서신, 시집, 번역서, 메모, 물품,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벽면에는 첫 시집인 <민들레 영토> 시를 비롯해 여러편의 좋은 시가 있어 천천히 둘러보며 감상할 수 있고 활짝 웃는 독사진, 마더 테레사와 함께 찍은 사진도 인상적이다. 관련 영상물을 보거나 시를 직접 필사하며 그 감동을 한층 업그레이드 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이해인 수녀가 피천득, 박완서, 김용택, 신달자 등 여러 문인들과 교류한 서신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법정스님과도 따뜻하고 배려 깊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최근 이해인 수녀는 대장암을 극복했다. 그는 투병기간 동안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의 마음으로 암과 친구가 됐다고 한다. 투병 중에는 감사하고 기도하고 웃는 생활 속에서 <엄마>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건강을 되찾은 그녀는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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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 |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
철학자 김형석과 안병욱은 1920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같은 해, 같은 고장, 같은 일로 90평생을 함께 보냈다’고 회고하는 김형석 선생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한평생 우정과 사상을 나눴다. ‘철학의 집’은 이 두 사람의 철학 인생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들은 그 존재 자체가 가르침이 되는 스승이요 어른이다. 안병욱 선생은 고인이 됐고, 김형석 선생은 생존해 있지만 이곳에서 죽음도 가를 수 없는 두 철학자의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안병욱 선생은 ‘생에 대한 관심’에 집중했다. 그는 삶에 대한 보람과 의미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사상계>의 편집위원 및 주간으로 활동했다. 이를 통해 지식인의 각성을 유도하고 국민적 격려와 지원을 얻어 4·19 혁명을 잉태하는 힘이 됐다. 그는 장준하의 영향을 받았고 대학생과 고교생들에게는 도산사상을 전하는 데 힘썼다. 그는 행동하는 철학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모범이 됐다.
김형석 선생은 우리시대의 멘토라 불린다. 어려웠던 시절 서정적인 에세이로 젊은이에게 감동과 꿈을 줬고 수많은 강연을 통해 ‘진리’에 대해 질문했다. 물론 이곳 ‘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에서도 강연회를 열어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전한다. 얼마 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행복을 논하는 선생의 모습은 96세라는 고령을 무색하게 했다. 철학을 우리 삶으로 끌어와 범인에게 나줘주는 선생의 모습에서 참스승을 보게 된다.
빛나는 인물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중 환경의 영향이란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이곳 양구의 어떤 기운이 이들을 만들었을까. 기념관을 둘러봤으니 다음에는 자연 환경을 살펴봐야겠다. 울창한 계절에 다시 와야겠다.
● 여행 정보
☞ 박수근미술관 가는 법
[승용차]
서울춘천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순환대로 - ‘유포리, 양구, 오음’ 방면으로 좌측방향 - 춘양로 - 배후령터널 - 추곡터널 - 수인터널 - 웅진터널 - 학조리사거리 - 학안로 – 박수근로
[대중교통]
양구시외버스터미널 - 농어촌 동면 버스 승차 - 양구기점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박수근미술관: 검색어 ‘박수근미술관’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시와 철학이 숨쉬는 공간: 검색어 ‘이해인시문학과김형석안병욱철학의집’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동수리 100-1
< 여행지 주요 정보 >
박수근 미술관
http://www.parksookeun.or.kr / 033-480-2655
관람시간: (동절기) 오전 9시 ~ 오후 5시 / (하절기) 오전 9시 ~ 오후 6시
입장요금: 어른 1000원 / 청소년·군인 700원 / 초등학생 500원
시와 철학이 숨쉬는 공간 (이해인 시문학관 / 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
http://ymunhak.or.kr / 033-482-9800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이해인수녀님 (관련정보 사이트)
http://haein.isamtoh.com
양구문화관광
http://www.ygtour.kr / 033-480-2251
< 음식 >
고원: 강원도의 재료를 가지고 전라도 식으로 맛을 낸 독특한 밥상을 선보인다.
양푼이김치찌개 2만원 / 능이삼계탕 1만5000원 / 백반 7000원
033-481-9224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양록길 23번길 12-7
금비매운탕: 가게이름처럼 매운탕이 대표음식이다. 푸짐하고 살이 통통한 메기매운탕이면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고 직접 떠주는 수제비도 별미다.
메기매운탕 3만5000~4만5000원 / 메기찜 3만5000~4만5000원 / 콩나물주물럭 8000원
033-482-4900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211-10
< 숙소 >
팔랑리 지게마을: 휴전선 가장 가까운 곳, 펀치볼 지구에 위치한 농촌 체험마을이다. 이곳에서 곰취찐빵, 딸기따기, 가양주 체험 같은 농촌 체험을 할 수 있고, ‘샘터펜션’과 마을 입구에 폐교를 개조해 만든 숙박시설이 준비돼 있다. 순수한 농촌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양구 특산물인 무청 시래기와 곰취 등 향기로운 나물 반찬에 먹는 밥맛도 일품이다. 지리상의 특성 때문에 여행자뿐 아니라 전방에서 휴가를 얻은 군인과 가족도 머물다 가기 좋다.
http://www.palrang.co.kr
033-481-5823 /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1185번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