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은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담당검사였음이 밝혀지면서, 이를 은폐하는데 참여했다는 의혹이 일고있다. /사진=뉴스1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은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담당검사였음이 밝혀지면서, 이를 은폐하는데 참여했다는 의혹이 일고있다. /사진=뉴스1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은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박상옥 전 형사정책연구원장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검사로서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관 임명동의안의 임명동의 요청사유나 박 후보자의 주요 경력에도 박종철문치사 사건을 담당했다는 내용은 빠져 있어 일부러 누락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서울대학교 3학년이던 박종철군19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해 영장 없이 불법으로 강제 연행된 후 경찰의 물고문 등으로 숨진 사건이다.

경찰은 같은 달 15일 박군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면서 단순 쇼크사했다고 발표했으나, 부검의의 증언과 언론보도 을 통해 의혹이 제기된 후 사건발생 5일만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이후 같은 해 2월 27일 고문경찰관으로부터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자백을 받았으나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2명만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고 폭로하자 여론에 떼밀려 검찰은 3명을 추가로 구속했다.

박 후보자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한 서 의원은 “박 후보자 당시 담당검사로 사건의 실을 알고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수사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며 “대법관으로서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일 치러질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의 당시 역할과 대법관으로서의 자질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