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풍경만 관찰해도 그 지역의 특산물, 동네 사람들의 성향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시장이 이렇게 지역의 성향과 전통을 알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오래됐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물건은 많다. 또한 이를 개인이 전부 다 일일이 만들어 쓸 수도 없다. 물물교환이든 화폐(조개 혹은 금속 등)를 사용하든 다른 사람이 만든 물건을 사고 내가 가진 물건을 원하는 사람에게 파는 행위는 과거부터 존재했다. 이것이 특정 지역에 모여서 규모가 커진 것이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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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이전 시초… 선조 때 5일장 완성
우리나라 시장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고대 한반도 남쪽에 있던 소국인 ‘진한’(辰韓)에서 철이 생산되며 진한의 시장에서는 철을 중국의 돈처럼 사용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후 삼국시대의 기록을 찾아보면 신라 소지왕 12년(서기 490년) 경주에 경시를 두었다. 지증왕 10년(509년)에는 동시를 설치했고 효소왕 4년(695년)에는 서시와 남시를 설치해 시장을 감독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불교가 융성하면서 상거래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성읍을 끼고 열리는 향시, 교총의 요충지에서 열리는 주시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현재의 시골장의 틀이 세워졌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특정 간격(5일, 10일, 혹은 매달 특정 일자)으로 열리던 정기시장인 향시가 성종때 전라도에서 형성됐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에 이르러 향시의 수가 많아지자 하루에 왕복이 가능한 30~40리(11.7km~15.7km)마다 장이 들어섰다. 또한 장들이 겹치지 않게 장날을 분담하는 5일 단위의 순회방식으로 연결됐다.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도 각 지방에서 통상 5일마다 혹은 매달 두차례가량 날짜를 정해 열리는 시골장의 기원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제가 시장규칙을 제정(1914년)해 종래의 시장을 재래시장, 식료품 판매시장, 수산물·청과 경매시장으로 나누고 시장의 설치와 변경, 수의 증감 등에 대해 도지사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지난 1926년 조선총독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5일장 숫자는 1356개로 집계된다.
이후 1980년대 들어 5일장과 같은 정기시장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며 농촌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다. 대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소상인들의 연합체 구조를 갖춘 상설시장이 주류로 떠올랐다. 이들 정기시장과 상설시장을 묶어 최근에는 ‘전통시장’이라 부른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전통시장 수는 전국에 총 1502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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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고 비위생적→ 깨끗하고 믿을 만한 곳
‘시장’이라는 단어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 손을 잡고 먹어본 음식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우리가 제일 싸다고 소리치며 물건을 파는 아줌마를 떠올릴 것이다. 뜯어낸 박스에 매직으로 가격을 써놓은 채 조그만 과도로 채소를 다듬으며 손님이 지나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할머니, 잔뜩 늘어놓은 생선 중 하나를 집어 커다란 통나무에 올려놓고 큼지막한 칼을 내리쳐 다듬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설시장이 아니라 정기시장을 다녔다면 장타령(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다니는 각설이를 추억할 수도 있겠다.
통상 시장상인들은 농·축·수산물과 다양한 공산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굳이 공통적인 부분을 찾자면 에누리(흥정)나 덤, 큰 목소리, 지저분함, 냄새 정도일 것이다.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
이와 같은 전통시장이 변하고 있다. 낡고 비위생적이라 신뢰하기 어려워 시장을 버리고 떠난 고객을 붙잡기 위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신선한 채소, 장모님 손맛 등 에둘러 표기했던 원산지 표기가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검사결과 청주의 가경터미널시장이 ‘2014년 원산지표시 자율관리 최우수 전통시장’으로 꼽혔다고 밝혔다. 입점업체는 물론 노점상까지 모두 완벽하게 원산지를 표시했다는 것.
농림부는 이에 대해 “전통시장은 원산지표시가 명확하지 않다는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려는 시장상인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이뤄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렇듯 ‘믿기 힘들고’, ‘바가지나 씌우던’ 전통시장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미 몇년 전부터 각 지역의 시장들은 해당 시장을 상징하는 로고를 만들고 캐릭터(마스코트) 개발에 나섰다. 낡고 뒤처졌다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인 1658년 개시된 한약재시장인 대구약령시를 찾으면 한약을 담는 사발과 탕약기를 의인화한 약초롱이와 약령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울산의 신정상가시장은 먹거리를 파는 상인 캐릭터를, 수암상가시장은 우리 전통문화인 상고 돌리기를 하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또 다수의 전통시장에서 지적되는 주차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사업비를 조성해 1000대를 동시 주차할 수 있는 주차타워와 냉·난방 시설, 엘리베이터 등 백화점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춘 곳(부산진시장)도 있다.
서울 방학동 도깨비시장처럼 깜짝 세일, 중곡제일시장의 공용쿠폰, 청주 육거리종합시장의 전통시장 상품권 등 고객유치를 위한 독특한 공동마케팅을 진행하는 곳도 늘어났다.
대형마트의 급속한 확산과 이에 따른 고객 쏠림현상으로 상권을 빼앗긴 전통시장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들어갔다. 오랜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전통시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 합본호(제370·3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