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가장 관객이 많았던 외화 <아바타>의 누적관객수(1362만4328명)는 설 연휴 기간에 넘어섰다.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2009년, 1145만명)에 이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를 두편 만들어낸 한국 최초의 ‘쌍천 감독’이 됐다. 배우 오달수는 한국 최초로 누적 1억 관객 돌파의 영예를 안았다.
<국제시장>은 지금까지의 다른 대박 영화에 비해 관객층이 모든 세대, 모든 계층, 전국 모든 지역에 고루 분포된 점이 특별하다. 20·30·40대 관객층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관람했으며 평소 극장에 잘 가지 않는 50대 이상 관객의 비중도 10%를 넘는다. 나이 든 세대가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지난날을 회상할 때 젊은 세대는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을 떠올리는 등 상호 소통을 가능케 한 것이 원동력으로 보인다. <국제시장>의 흥행요소 세가지를 살펴봤다.
◆흥행요소①=배고팠던 한국사
<국제시장>의 대박 요인은 여러 각도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거의 모든 관객을 울린다.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 관객이라도 최소한 한번 이상 울게 된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울지 않는 관객을 보기 힘들다.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막내동생 막순이가 미국으로 입양돼 한국말을 잊어버리고 귀 뒤 사마귀를 보여주며 혈육임이 확인되는 장면에서는 소리내어 흐느끼는 관객도 많다.
눈물 나게 하는 영화는 자칫 신파조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관객을 울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실제 있었던 사실들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울고 난 뒤에는 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들을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게 만든다.
마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코믹함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다. 아카데미와 칸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인생은 아름다워>는 국제시장과 비슷하게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만든다.
윤제균 감독은 코미디인 <신혼여행>이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영화계에 데뷔했다. <해운대> 이전까지 그가 연출한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두사부일체> 등은 모두 코미디 장르였다. 원래 코믹한 영화를 잘 연출하는 감독이기에 고난의 인생길을 지나온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서도 관객을 웃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슬픔만 유도하는 영화보다는 중간 중간 웃게 만듦으로써 사우나에서 냉온탕을 드나들며 신체적 쾌감을 느끼듯 정신적인 쾌감을 극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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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한재호 기자 |
◆흥행요소②=정치색깔 배제
두번째 요인은 영화의 배경이 식상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상업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된 과정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지금까지 별로 없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독일 광부로 일하러 가던 시절 한국의 총 수출액은 1억달러였고 1인당 국민소득은 76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170달러, 태국은 220달러였다.
<국제시장>을 본 후 한국의 역사교육이 오래된 과거의 역사에 치중됐음을 새삼 느꼈다는 사람도 많다. 물론 이 영화가 현대사 전부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역사물도 아니고 상업용으로 만들어진 2시간짜리 가족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한국전쟁에서 흥남철수하던 당시 부두의 모습, 전국 각지에서 피난민들이 모인 부산 국제시장, 60년대 파독광부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했던 독일 함보르광산, 70년대 국군 장병들과 기술근로자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간 베트남 등의 모습을 고증을 거쳐 완벽하게 재현했다.
이 영화의 총제작비는 140억원에 달한다. 20억여원을 들여 부산을 비롯 체코의 탄광 박물관, 태국 등 3개국 로케이션을 감행했다. 또 국제시장의 시대별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100여일 동안 길이 150m의 대규모 세트를 일산과 부산 기장군에 설치했다. 의상은 시대별로 2000벌씩 약 1만벌에 달하는 분량을 준비해 사실감을 살렸다. 배우들의 20대부터 70대까지 변화된 모습을 실감나게 보이도록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해외 특수분장전문가를 활용했다.
<007 스카이폴> 스웨덴 특수분장팀은 얼굴 근육의 움직임과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노인 얼굴의 질감을 만들어냈다. CG 작업은 국내외 4개 업체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역사적인 사건들이 배경으로 등장함에도 정치적인 색깔은 배제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순수한 감성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6·25 전쟁을 다룰 때도 흥남철수에서 많은 군수물자를 버리면서까지 사람을 구해내는 휴머니즘에만 초점을 맞췄으며 북한인민군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 오랫동안 존속했던 국기 하강식의 경례 장면은 엄숙한 애국심을 강조하지 않고 관객으로부터 웃음을 유발한다. 각종 정치적 사건들과 민주화운동 장면 등은 영화가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게 하기 위해 더더욱 넣지 않았을 것이다.
윤 감독은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국제시장>은 ‘12세 이상 관람가’ 가족영화다.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영화라 어설픈 정치 메시지를 넣고 싶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주인공(덕수)과 그의 부인(영자) 이름은 윤 감독 부모님의 실명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파 영화로 낙인찍은 논객의 말이 회자되면서 한동안 언론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필자가 진보성향이 강한 대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이 영화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대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어머니가 주제인 영화는 많았지만 아버지를 다룬 영화는 흔치 않다. 이 영화는 아버지를 중심에 놓았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국제시장을 영어로 옮긴 것이 아닌 ‘Ode to My Father’(아버지에게 부치는, 또는 아버지를 기리는)다.
윤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개인사에서 출발한 영화로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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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한재호 기자 |
◆흥행요소③=현재 아픔도 담다
주인공 덕수는 한국 대부분 가정에서의 전통적인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공감을 이끌어냈다. 나이 든 아버지들은 덕수처럼 흔히 자식과 소통하지 못하고 대화보다는 화를 내는 경향이 강하다.
윤 감독은 이에 대해 “어렸을 땐 아버지의 행동과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짜증을 냈는데 내가 아버지가 된 뒤에야 이해하게 되더라”고 회고했다.
영화는 아버지의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아버지 성격이 왜 그렇게 됐는지를 이해시킨다. 이를 통해 우리들도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비단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다른 사람의 태도를 겉으로 비판하기에 앞서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단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아픔까지 표현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덕수가 독백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가슴 찡해 눈시울 붉힌 사람이 많다.
이 대사는 윤 감독이 직접 썼는데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한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도 하고 싶은 말이거나 언젠가 하게 될 말이다. 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힘든 시기를 지나기 때문이다.
한국이 고도의 성장을 이룬 후에도 IMF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의 아픔이 있고 높아진 학벌의 반대급부로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아픔이 있다. 내수시장 침체로 빚만 늘어가는 중년 자영업자들의 아픔, 충분치 않은 노후준비로 인해 장수시대가 축복만은 아닌 노년들의 아픔도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청년 세대를 힐링해줬듯 <국제시장>은 ‘아버지는 더 아프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면서 아버지 세대를 힐링해줬다. 나의 아픔만 알아달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줘야 할 것이다.
<국제시장>은 과거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코드도 포함됐다. 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난 여동생의 미국 남편이 등장하고 국내 최초의 베트남 국제결혼 기사가 나온다.
이제는 다문화주의로 가는 글로벌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자세를 짚어봐야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막말하는 고등학생과 덕수가 싸우는 장면이 있다. 덕수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파독 광부로 독일에 가서 거칠고 힘든 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고 동생의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이제는 한국이 세계 몇대 강국으로 올라서면서 한국보다 훨씬 못사는 국가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다. 국내 체류외국인 수가 150만명이 넘었다. 그들을 우리가 어떤 태도로 대하고 그들과 어떻게 융합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한편 1960년대에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해 8000여명의 광부와 1만명이 넘는 간호사가 독일에 가서 일했듯이 요즘 글로벌시대에는 덕수 시절처럼 고된 노동이 아닌 부가가치가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도 된다.
취업난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해외로 눈을 돌려 일자리를 개척하는 정신도 가질 만하다. 이를 위해 국가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만큼 글로벌시대를 잘 활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제시장>은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필름 마켓을 통해 아시아 여러 지역에 판매가 완료돼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유럽 바이어의 관심도 높다. 해외 각국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