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당시 인수가격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최소 6조~7조원으로 평가됐다, 많게는 1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수금액에도 불구하고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 등 국내 내로라하는 굴지의 대기업들이 새 주인을 자청하며 달려들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한화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갑자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금까지 주인 없는 신세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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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해양조선. /사진=머니위크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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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건설. /사진=뉴스1 이광호 기자 |
◆본계약 체결해도 안심할 수 없는 M&A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처럼 M&A 절차 진행 중 틀어진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동부하이텍, 남광토건, 극동건설, 아주캐피탈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인지도가 없어 외면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처럼 여러 차례 매각, 재매각 등 우여곡절을 겪는가 하면 경기불황이 겹쳐 이른바 ‘계륵 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각 기업의 사연은 다양하다. 우선 동부그룹의 동부발전당진은 한때 잘나가다 찬밥 매물로 전락한 사례다. 지난해 8월 동부그룹이 동부발전당진을 매물로 내놓을 때만 해도 시장의 관심은 뜨거웠다.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중 유일하게 남은 매물인 데다 매년 수백억원씩 영업이익을 올리는 회사인 만큼 대기업마다 군침을 흘렸다.
동부발전당진은 총 1160㎿ 규모의 국내 최초 민간 석탄화력발전소로 오는 2018년까지 500㎿급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건설해 수도권, 충청 일대에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예상대로 지난해 7월 실시된 예비입찰에 삼탄, SK가스, LG상사, GS EPS,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 쟁쟁한 기업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삼탄과 SK가스가 본입찰에 참여한 가운데 가격경쟁력에서 앞선 삼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지주사격인 동부건설은 지난 8월 매각대금 2700억원을 받고 삼탄과 지분매각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부발전당진 매각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기존의 송전선로를 사용하려면 과부하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 송전선로(345㎸)를 추가로 갖춰야 했던 것. 이에 따른 비용 발생이 문제였다. 30㎞가량 새 송전선을 건설해야 하는데 공사비용만 최소 50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덩달아 화력발전소 가동 시기도 한없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이를 부담스러워 한 삼탄은 계약금을 냈음에도 끝내 동부발전당진 인수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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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던 ‘극동건설 관계인집회’.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
◆ 첫 단추가 중요… 틀어지면 가격하락
시장에서 외면 받는 ‘계륵 기업’ 중에는 이름난 중견 건설사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남광토건이다. 지난 1986년 쌍용그룹에 편입된 후 2008년 대한전선 계열사로 탈바꿈한 남광토건은 부동산 침체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 2012년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남광토건은 그동안 세차례나 주인 찾기에 나설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계속된 건설·부동산경기 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남광토건은 올해 다시 한번 매각절차를 재개할 예정이다. 지난해 남광토건은 예상 매각가격이 500억원이었지만, M&A가 두차례 불발된 까닭에 가격이 다소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법정관리를 졸업한 극동건설도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극동건설은 지난 2003년 법정관리 도중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팔렸고 2007년에는 웅진그룹에 인수됐다. 그러다 지난 2012년 웅진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웅진홀딩스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또다시 주인 찾기에 나섰다.
반면 정말 어렵게 돌고 돌아 주인을 찾은 건설사도 있다. 바로 쌍용건설이다. 총 8번의 도전 끝에 두바이투자청(ICD)을 새주인으로 맞는다. 사실 쌍용건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건설사다. 특히 해외건설에 강점을 갖고 있고 국내외 인지도 역시 높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M&A를 겪으며 상처를 입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영향이 컸다. 쌍용건설은 지난 2007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동국제강과의 첫번째 매각협상이 결렬된 이후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대내·외적인 문제들로 8년을 주인 없이 보내야 했다. 사업조차도 채권단의 눈치를 보며 진행하는 등 많은 제약이 따랐다. 그러는 사이 한때 5위를 자랑하던 시공능력 순위는 현재 19위로 밀려났다.
동부하이텍 매각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국내에선 동부하이텍 인수에 관심을 갖는 대기업을 아예 찾기 힘들다. 대표적인 시스템반도체 수탁생산업체로 한때 현대차를 비롯해 SK하이닉스, LG전자의 인수전 참여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국내 대기업 중 공식적으로 인수의사를 내비친 곳은 없는 상태다.
그나마 동부하이텍에 관심을 보였던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털마저 최근 인수의향을 접었다. 시장에선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중국 SMIC, 국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등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후보들이 본입찰에 참가할지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동부하이텍 매각가격은 1500억원 내외로 추산되지만 인수경쟁이 흐지부지될 경우 가격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M&A시장에서는 첫 단추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한번에 주인을 찾으면 어느 정도 제값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평가가 절하된다. 특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음에도 계약이 불발될 경우 매각에 나서는 기업은 큰 타격을 받는다. 매각사에 문제가 있어 계약이 취소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한 M&A전문가는 “M&A를 성공시키려면 매각사는 인수사의 인수 의지와 자본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한다”며 “특히 첫 M&A 시도가 불발될 경우 그 여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