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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궁 발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8일 오전 경북 경주시 월성의 시굴조사 중 토기와 기와편 등이 발견된 장소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경주 월성’이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일 문화재 위원회 승인을 거친 뒤, 이르면 다음주부터 정밀 발굴 조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연구소는 지난해 12월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중앙지역(5만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고 이같이 밝혔다.
약 50일간 진행된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표층부분을 발굴했다. 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있다. 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연구소는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전북 익산 왕궁리유적, 강원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 사적을 조사했던 베테랑 발굴 인력 100여명을 투입했다. 고고학계는 '단군 이래 최대의 발굴사업'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높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경주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왕궁 복원)'의 이행을 뒷받침한다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월성은 신라 천년 수도의 궁성(宮城)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婆娑王)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의 중요시설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