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7일 용산구 원효로1가 44-11번지부터 시작되는 200m 남짓한 인쇄소 골목에 들어서니 허름한 건물에 작은 공장과 회사가 뒤엉켜있다. 그러나 해가 저물면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세련된 음식점 간판에 불이 켜지면 가게를 찾는 사람들로 붐비고 ‘크게 될 놈 뭘 해도 될 놈’, ‘감자 살래, 나랑 살래’ 등 익살스러운 문구가 적힌 복장의 직원들은 주문을 받느라 분주해진다. 감자튀김·치킨·삼겹살·철판요리·백반 등의 메뉴로 골목을 채운 6개의 음식점은 모두 청년장사꾼이 운영한다. 도무지 가게가 들어설 것 같지 않은 섬 같은 이곳을 청년장사꾼은 ‘열정도(島)’로 바꿔 놨다.


 

감자집 /사진=임한별 기자
감자집 /사진=임한별 기자
아지트 /사진=임한별 기자
아지트 /사진=임한별 기자
열정고깃집 /사진=임한별 기자
열정고깃집 /사진=임한별 기자

◆청년창업의 롤모델 ‘청년장사꾼’
청년장사꾼은 지난 2012년 1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장사를 하되 전문가처럼 잘하자는 의미로 힘을 합친 단체다. 5명이 모여 노점부터 시작한 청년장사꾼은 경복궁 금천교시장에 오픈한 ‘열정감자’로 순식간에 청년창업의 롤모델로 떠올랐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이태원 이슬람사원 앞에서 커피전문점으로 시작했던 첫 사업은 망했다. 상권이나 수요를 분석하지 않고 싼 임대료만 고집한 결과였다. 세법을 잘 몰라 세금폭탄도 맞았다. 한번만 더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추가 대출을 받아 지난 2012년 10월 서울 경복궁 금천교시장에 열정감자를 차렸다. 시중에 파는 모든 감자와 기름을 가져다 시험한 후 최상의 조합으로 만든 감자튀김은 이른바 대박을 터트렸다.

이후 문을 연 새로운 매장도 잇따라 성공했다. 청년장사꾼은 이제 11개 음식점을 운영하며 30명이 넘는 정직원을 둔 어엿한 기업이 됐다. 이들 음식점에서 나오는 연 매출은 30억원에 육박한다. ‘내가 직접 그 지역의 주민이 되고 상인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청년장사꾼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청년장사꾼은 지난해 11월 ‘열정’으로 문을 연 원효로 인쇄소 골목 열정도에서 금천교시장 열정감자에 이은 또 한번의 성공신화에 도전한다. 돈이 없기에 임대료가 싸야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야 하며 유명한 상권과 가까워야 한다는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원효로 일대에서 청년장사꾼은 새로운 열정의 불씨를 당겼다.



 치킨사우나 /사진=임한별 기자
치킨사우나 /사진=임한별 기자
철인28호 /사진=임한별 기자
철인28호 /사진=임한별 기자
판 /사진=임한별 기자
판 /사진=임한별 기자

◆옛 인쇄소 골목의 유쾌한 변신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입소문을 타며 손님을 끌어모은 ‘열정감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감자집’이 새로 생겼다. 상표권이 문제였다. 경복궁 금천교시장에서 이름을 알린 열정감자가 화제가 되고 TV 방송을 타자 누군가 상표를 등록해 소송을 걸었다. 열정감자란 상호를 버리고 감자집이 된 이유다. 더 이상 열정감자는 없지만 가게 계약부터 메뉴 개발과 인테리어까지 막막했던 모든 위기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열정만은 그대로다.

원효로 인쇄소 골목 열정도가 그렇다. 청년장사꾼은 자본이 부족하기에 권리금과 임대료가 높은 기존 상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전혀 새로운 장소를 찾던 중 지난해 재개발이 무산돼 공동화가 진행 중인 원효로 일대를 알게 됐다. 상권이 전혀 없는 이곳에 한 매장으로는 승부가 어렵겠다 싶어서 6개의 음식점을 동시에 오픈했다. 공사는 전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접 했다. 청년의 약점인 자본으로 인한 문제를 시간과 열정으로 해결한 것이다.

남영역, 삼각지역, 효창공원앞역 사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구성된 블록의 세 꼭짓점에는 높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그 가운데 과거 인쇄소가 밀집했던 골목이 있다. 현재 이곳은 기존에 있던 인쇄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유휴시설이 늘었다. 고급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 속 섬 같은 이곳은 청년장사꾼의 땀과 열정으로 다시 활기를 찾았다.

소자본 창업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으로 청년창업문화를 선도하고 스스로 지역을 활성화해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청년장사꾼. 이들의 도전이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는 “청년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섬에 놀러 가는 느낌을 주고 싶다”며 “똑같은 먹자골목이 아닌 문화가 있는 거리를 만들어 지역민들과 상생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는 누구?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29)는 초등학생 때 반장 당선 기념으로 학급에 소보로빵을 돌렸다. 하지만 햄버거를 돌린 옆 반 반장에 샘이 난 그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에게 “소보로빵은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따졌다가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 대표는 돈을 많이 버는 사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현재 연 매출 30억원을 자랑하는 청년장사꾼을 운영하며 11개의 음식점을 갖고 있다.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지 고민해 목표를 찾고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사진제공=청년장사꾼
/사진제공=청년장사꾼

김 대표는 지난 2009년 7월 군대를 전역하고 3일 만에 ‘총각네 야채가게’에 입사했다. 1년6개월 동안 새벽 별을 보고 일어나 다시 별을 보고 퇴근하는 생활을 했다. 이후 지인들과 지난 2012년 청년장사꾼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다양한 종류의 점포를 성공시켜 요식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청년창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로 인정받아 지난 2013년 7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이 됐다.
과거의 그는 손님에게 어떻게 더 잘해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다. 직원들에게 어떻게 더 잘해줄까를 고민한다. 직원에 대한 관심이 손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숙소비용까지 부담하는 이유도 ‘사람을 남기자’는 그의 장사철학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점포를 계속 내는 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라며 “소상공인 창업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청년장사꾼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말하는 창업 4계명>
1. 목숨을 걸 정도가 아니면 장사하지 마라.
2. 대표·사장 등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3.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지원금을 받아라.
4. 사업은 망해도 사람은 남겨라.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