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김OO 의원의 초등학교 동창이 거기 회사 사장이래.” 흘러가는 풍문으로 넘길 수 있는 얘기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다르다. 이런 소문이 돌면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치기도 한다. 김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알게 모르게 수혜를 입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확산됐을 때도 현재 개발된 백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련주들이 급등했다. 지난 2월 간통죄가 폐지된 후 콘돔제조업체인 유니더스가 상한가로 직행하는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종목을 ‘테마주’라고 부른다. 통상 테마주는 실제 회사의 수익에 도움을 줄지 여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단지 투자심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종목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테마주는 사실 온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테마주의 사전적 정의는 주식시장에 어떤 새로운 이슈가 발생했을 때 사업방향이 비슷한 종목끼리 묶어놓은 무리다. 단지 이를 악용해 부당이득을 챙기려는 세력이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STOCK] 테마주, 너 언제 어디서 왔니

◆ 테마주의 시작 ‘유전개발 관련주’
국내에 기록된 최초의 테마주는 ‘북예멘 유전개발 관련주’다. 건설주 파동으로 증시가 침체됐던 지난 1984년 7월, 삼환기업이 북예멘 정유공장 건설에 나선다는 소식이 시장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로 인해 정보가 알려지기 전 7300원에 머물렀던 삼환기업의 주가는 불과 6개월 새 1만6000원에 도달하며 120% 가까이 치솟았다.

삼환기업이 강세를 보이자 자원개발 관련 종목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에서 유전이나 가스전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이 10여개사 상장돼 있었는데 그중 선경(현 SK네트웍스), 유공(현 SK이노베이션), 현대종합상사, 삼환기업은 자원개발 테마주 4인방으로 불렸다. 이들의 주가는 삼환기업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유공의 지분 50%를 보유한 선경의 주가는 같은 기간 2470원에서 7560원까지 급등하며 세배가량 상승했고 유공도 8100원에서 1만9950원으로 2.5배 올랐다. 현대종합상사의 주가도 두배 이상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윤재수 전 한국투자증권 이사는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 주식투자 100년사>에서 “당시 선경의 주가가 급등해서 사기 어려워지면 그 대신 유공이나 삼환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면 됐다”며 “자원개발 테마주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최초로 등장한 테마주”라고 서술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만리장성 4인방’ 테마주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근거 없는 소문이 본격적으로 주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알루미늄이라는 회사는 중국정부가 만리장성에 알루미늄 새시로 바람막이를 설치하는 데 협력업체로 선정됐다는 소문이 돌며 급등했다. 이어 이 공사에 동원되는 인부들이 신을 검정고무신을 모두 납품하게 됐다는 루머도 같이 돌며 태화라는 기업이 동반 상승했다.

더 황당무계한 것은 삼립식품이다. 공사인부들이 간식으로 호빵을 먹는다는 소문에 주가가 폭등한 것. 심지어 호빵을 먹다가 체할 경우를 대비해 소화제로 ‘훼스탈’을 공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한독약품의 주가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우습지도 않은 소문에 의해 폭등한 ‘만리장성 4인방’은 결국 대한알루미늄(2001년)과 태화(1999년)의 상장폐지로 마무리됐다.

뒤이어 등장한 테마주는 ‘정치인 테마주’다. 정치 테마주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7년 17대 대선 즈음이다. 당시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에 20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는 ‘4대강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자 관련주가 폭등했다.

특히 정부의 공사를 주로 맡던 이화공영은 같은해 4월 800원대에 머물던 주가가 12월 2만5000원을 뛰어넘었다. 불과 8개월 새 주가가 30배 넘게 오른 셈이다. 이후 급격한 추락을 이어간 이화공영의 주가는 지난 25일 기준 3000원대 언저리에 머물러있다.

이 같은 일이 있은 후 선거 때마다 정치인 테마주는 거르지 않고 등장했다. 박근혜 테마주, 안철수 테마주, 문재인 테마주, 박원순 테마주, 김무성 테마주 등 유력정치인이라면 테마주 하나씩 거느리는 모양새다.

◆ 테마주 3개 중 1개는 ‘작전’

근거 없는 정보를 통해 막무가내로 연결된 테마주의 수익률은 보잘 것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8대 대선 6개월 전부터 대선이 끝난 후 1년 동안 정치인 테마주로 알려진 147개 종목의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이들 종목은 7.8% 상승한 반면 상장사 투자수익 상위 150개 종목의 평균 상승률은 88.3%로 나타났다. 예측이 불가능한 정치 테마주를 사기보다 수익성이 높은 종목을 고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얘기다.

문제는 수익률만이 아니다. 147개 정치 테마주 중 무려 49개 종목에서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혐의가 발견됐다. 3종목 중 1개는 소위 ‘작전’ 세력이 개입한 셈이다.

이들은 테마주로 엮을 만한 종목들을 미리 저가에 매집한 후 이슈가 터지면 관련 종목으로 연결하는 수법을 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동원되는 방법은 인터넷에 있는 주식사이트나 검증되지 않은 주식전문가들의 방송, 전화상담 등을 통해 개인투자자에게 루머를 유포하는 형식이다.

최근에는 SNS가 널리 확산되면서 댓글로 여론을 조장하는 방법도 종종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테마주가 형성돼 가격이 폭등하면 세력들은 가지고 있던 물량을 털어낸다. 이 같은 방법으로 금감원이 적발한 47명은 총 66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금융당국은 근거없이 묶인 테마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시장 상황을 감독하고 있다. 다만 수만개에 달하는 주식관련 사이트나 정보의 댓글까지 단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장감시당국 관계자는 “사실이 왜곡되거나 학연·지연·혈연 등 불필요한 정보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문제”라며 “다만 주식토론 게시판 등에 올라오는 댓글까지 일일이 감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 등이 있어 가치판단을 강제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사실에 근거한 정보로 만들어진 테마주는 시장 효율성을 증대하는 효과가 있다”며 “투자자가 기업의 공시 등 객관적인 자료를 잘 살펴보고 올바른 테마주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