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정민철씨(가명·30)는 요즘 저녁마다 부동산중개업소로 퇴근한다. 오는 11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주택 구입을 추진 중이어서다. 사실 전세자금도 대출을 받았던 터라 수중에 돈은 없지만 집값의 100%도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몇몇 은행에서 상담을 받은 결과 집값의 70%까지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하기 전 신용대출로 미리 자금을 확보하면 돈이 없어도 주택구입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계 빚이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다. 110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는 물론 증가속도 또한 가파르다. 특히 내년 주택담보대출의 심사가 강화되고 분할상환이 추진됨에 따라 연내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사상 최저금리로 절찬리에 판매 중인 ‘주택담보대출 바겐세일’이 더해지자 금융권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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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
◆“연내 싸게 대출 받자” 은행권, 절판마케팅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절판마케팅’에 대해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몇몇 은행이 내년 1월 가계부채관리방안이 시행되기 전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라는 식의 마케팅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자제를 당부한 것.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이런 경고는 공허한 메아리가 된 분위기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민·신한·우리·(구)하나·농협·기업·(구)외환·SC·씨티 등 9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50조4188억원으로 전달보다 5조8781억원 증가했다. 가장 증가폭이 컸던 은행은 국민은행으로 전달보다 1조8473억원 늘었다. 다음으로 우리은행이 1조4366억원으로 증가액이 두드러졌다. 신한은행은 9386억원, 하나은행은 7947억원 늘었다.
이와 관련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시장 호황과 맞물려 그간 움츠려있던 사람들이 주택 구입에 나서면서 가계부채도 폴짝폴짝 뛰는 추세”라며 “은행도 장사를 해야 하는데 안 팔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규제완화와 금리인하 공세로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긴 정부가 금융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가계 빚 시한폭탄이 터지기 직전임에도 가계대출 판매에 팔을 걷어붙인 금융권에 대한 시각은 마냥 곱지 않다. 주택담보대출은 은행권에는 ‘땅 짚고 헤엄치기’로 통용된다. 리스크가 큰 기업대출보다 주택대출이 “안전하고 이자수입도 짭짤하다”는 게 불문율이다.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담당자는 “신용대출은 경제상황에 따라 부실 출렁거림이 심하지만 주택대출은 집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악착같이 갚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가계 빚 시한폭탄이 터지기 직전임에도 가계대출 판매에 팔을 걷어붙인 금융권에 대한 시각은 마냥 곱지 않다. 주택담보대출은 은행권에는 ‘땅 짚고 헤엄치기’로 통용된다. 리스크가 큰 기업대출보다 주택대출이 “안전하고 이자수입도 짭짤하다”는 게 불문율이다.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담당자는 “신용대출은 경제상황에 따라 부실 출렁거림이 심하지만 주택대출은 집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악착같이 갚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올해 은행권은 저금리로 님(NIM)이 하락했음에도 주택대출 수수료 등을 통해 상당부분 수익하락을 방어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국내 18개 은행의 올 상반기(1~6월) 중도상환수수료 총액은 244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연간 중도상환수수료 총액인 3847억원의 63%에 달하는 수준이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의 상반기 중도상환수수료 수입이 449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714억원의 62.9% 수준에 달했고 우리은행은 352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471억원의 74.7%를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신한은행 323억원(66%), 농협은행 274억원(74.6%)으로 나타났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가계부채가 이미 과잉상태인데 금융권이 경쟁적으로 세일하듯 주택담보대출을 파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며 “LTV 등 완화된 대출조건을 충족한다 해도 리스크가 뻔히 보이는 대출이라면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가계부채가 이미 과잉상태인데 금융권이 경쟁적으로 세일하듯 주택담보대출을 파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며 “LTV 등 완화된 대출조건을 충족한다 해도 리스크가 뻔히 보이는 대출이라면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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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SC·씨티 ‘취약’
베어스턴스는 월가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로 튼튼한 재무구조를 자랑한 우량은행이었다. 미국 대공황에도 굳건히 버텼지만 신용이 낮은 고객에게도 집값의 100%까지 돈을 빌려주다 연체율이 급상승한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은행 하나 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연쇄 부도를 일으키며 2008년 전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것.
2015년 대한민국에서도 이 같은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불씨가 되살아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내외 금융전문가 82명을 대상으로 한 시스테믹 리스크(Systemic risk)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3년 이내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이 32%로 ‘낮다’는 응답 24%를 앞질렀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의 경기둔화 등 대내외 충격이 가시화될 경우 가계부채가 ‘위기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도화선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미국은 기준금리를 2004년 6월 1%에서 2006년 8월 5.25%로 끌어올렸다. 대출자의 상환부담이 커지면서 연체율이 급증하고 주택매매건수는 급감했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회사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단초가 됐다. 미국은 2004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금리인상카드를 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금리인상도 예고됐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상황은 얼마나 다를까.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국내 시중금리가 1.5%포인트 오를 경우 은행 연체율이 현행보다 최고 5배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금리가 2%포인트 이상 오를 경우 은행은 적자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됐다.
은행별로는 가계부채 부실이 확대되면 한국SC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씨티은행과 SC은행은 총대출에서 가계여신의 비중이 각각 60.0%, 59.1%로 은행권에서 가장 높다.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SC은행이 45.9%로 가장 높고 국민은행(39.1%), 우리은행(32.3%) 순이다. 가계신용대출비중의 경우 씨티은행(16.4%)과 SC은행(11.1%), 신한은행(9.2%)이 높았다.
이에 대해 씨티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가계대출과 신용대출의 비중이 높다는 일부 여신 관련 수치만을 근거로 부실화에 취약하다는 논리는 객관적이지 않다”며 “씨티은행은 16.96%의 BIS비율로 국내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건전성을 가진 은행”이라고 반박했다. SC은행은 이와 관련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가계부실 확대 시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를 통해 제2금융권의 부실이 은행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도 “금융시장은 심리적인 요인이 강하기에 중국 등에서 큰 혼란이 야기되면 안심하기는 어렵다”며 “2금융권에 비해 은행권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지만 자산 대비 부채의 불균형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