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업계에서는 드물게 여성CEO로 우뚝 선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51)는 자신의 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선택과 집중으로 정의했다. 그렇다고 선택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라는 건 아니다. 노선을 확실히 하면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양 대표는 대학생 때 만난 남편과 함께 장성한 아들, 딸 두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안정적인 의사생활을 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 후 불과 5년 만에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시총 6000억원의 바이오업계 거목으로 자리매김 한 양 대표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꾸밈없는 자세로 사람을 대하다
메디포스트는 태아의 탯줄에서 나오는 혈액인 제대혈을 보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제대혈 보관 분야에서는 시장 점유율 43%로 독보적인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골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은 관절염분야에서 세계 유일의 허가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다. 이 같은 회사를 일궈낸 양윤선 대표의 시작은 의사 생활에서 비롯됐다.
![]() |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사진=머니위크 임한별 기자 |
“사실 대학 다닐 때부터 사업을 꿈꾼 건 아니에요. 병원에서 제대혈을 보관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병원에서의 한계를 느꼈어요. 제가 사업가가 된다는 선택이 아니고 제대혈 보관을 병원에서 하는 게 좋은가, 외부 기관에서 도맡아 하는 게 좋은가의 선택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 골수은행은 있었지만 제대혈은행이라는 국가시스템은 없었다. 골수 기증자도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혈은행은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양 대표는 생각했다. 의사라는 자리가 아닌 일을 생각한 그는 2년간 근무한 병원을 떠나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신출내기 여의사에게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 가장 힘들었어요. 막상 사업을 진행하다보면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인데 이를 해결할 사람들이 부족한 거예요. 어떤 어려움이든 누가 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없었던 겁니다.”
이런 이유로 양 대표는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녀는 절대 목적의식을 갖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다. 그녀가 만난 어떤 사람은 “그런 것까지 얘기해도 돼?”라며 되묻기도 했단다. 그만큼 그는 솔직하고 진정성있게 사람에게 다가간다. 기자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보여줬던 꾸밈없는 웃음과 인터뷰 내내 쾌활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의 무기일 수도 있다.
그런 양 대표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사회 진출을 앞둔 학생들이 멘토를 요청하며 연락해오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내가 학생들의 요청을 거절하면 그건 목적을 위해 사람을 가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저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왜 제 말을 들어줬을까요. 저는 제가 받은 만큼 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돌고 돌아 업보로 오는 거겠죠.”
![]() |
/사진=머니위크 임한별 기자 |
![]() |
/사진=머니위크 임한별 기자 |
◆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선택 필요
양 대표가 여성이라 그럴까. 메디포스트에는 여직원이 많다. 원래 생명공학과 관련한 연구원 중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하지만 이 회사는 여직원이 전체 직원의 60%가량을 차지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다만 제대혈 보관을 위해 상담을 하는 고객이 주로 산모다 보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직원들을 직접 뽑는 각 임원이나 본부장들도 대표가 여성이다 보니 어떤 차별을 하기가 쉽지 않겠죠?(웃음)”
양 대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도 여직원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한 예로 필라테스 동호회를 들 수 있다. 지난해 판교 사옥으로 옮기며 만든 필라테스룸에는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필라테스를 하려는 직원들로 붐빈다. 전문강사도 초빙해 1대1 맞춤 지도를 하고 있어 여성직원들에게 인기다. 물론 남성직원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이용하는 직원은 없다. 그래서 양 대표는 필라테스룸 못지않은 규모의 헬스장도 갖춰놨다.
또한 메디포스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따르면 여직원이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등을 사용할 때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양 대표가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되는 건 여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임원들에게 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직원들이 신경 쓰지 않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단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여성으로서 일하는 게 힘든 부분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성향과 실력 등을 고려해서 인생 방향을 결정해야 해요. 정말 내조를 잘하는 전업주부가 될지, 아니면 일을 하는 여성이 될지.”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을 하기 위한 열정이나 조직을 위한 헌신의 자세가 없다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다소 단호해 보이는 표정에서 그가 걸어왔던 길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가정을 포기하라는 건 아니에요. 일을 선택했다면 그걸 이해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해요. 집안 살림을 전부 여자가 하면서 일까지 소화해 낼 수는 없으니까. 일을 위해서라도 가정은 정말 중요하죠. 분명 일이라는 것도 365일 계속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도움받을 수 있는 아군, 즉 좋은 남편이 필요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관계 형성 중 하나죠. 여성으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현명한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셈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