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절벽(The Demographic Cliff)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 후 수십년간 소비 흐름의 하락세가 중단 없이 이어질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예측가인 해리 덴트는 <2018 인구절벽이 온다>를 통해 한국의 ‘인구 쇼크’가 머지않았음을 경고했다. 지난 198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와 1990년대 미국 경제호황을 정확히 예측해 명성을 얻은 그는 앞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큰 충격이 한국경제를 덮칠 것이라고 단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가 그 주범이다. 고령화를 피할 수 없다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 하지만 정부가 출산장려정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은 역주행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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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2.72명… 현실은 1.24명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인구억제정책을 펴던 다산국가였다. 정부가 피임약과 피임기구를 무상으로 배포하면서 강력한 인구 억제정책을 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더니 어쩌다 소비도, 노동도, 투자할 사람도 사라지는 인구위기론(?)에 직면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7월 ‘자녀가치 국제비교’ 보고서를 통해 한국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2.72명이라는 조사결과를 소개했다. 보통 2~3명의 자녀를 원하는 셈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일본, 중국, 대만 등 9개 비교국가 중 가장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합계출산율(2011년 기준·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은 1.24명으로 대만(1.11명)에 이어 두번째로 낮았다. 여성 1인이 1자녀를 겨우 낳는 꼴이다.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은 자녀로 인한 행복을 포기할 만큼 양육부담이 더 크다는 데 기인한다. ‘자녀는 부모의 자유를 제한한다’, ‘자녀는 부모의 경제활동 기회를 제한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준다’ 등의 부정적인 항목에서 한국은 모두 1~3위로 상위권에 올랐다. 다른 나라보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제5차 저출산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둘째를 낳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4.2%가 “있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 부모들의 상당수는 자녀를 더 낳고 싶어 한다는 것. 결국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제거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고령화 시대] '아이 울음소리' 다시 틔우려면

◆10년간 예산 80조 투입 ‘헛발질’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위해 투입한 예산만 80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출산율은 되레 뒷걸음질 친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006년 1.25명에서 10년이 지난 올해 1.21명으로 줄었다. 80조원을 쏟아붓고 ‘헛발질’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출산장려금이나 보육지원에 매달렸던 편협한 대책의 한계를 꼬집는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제5차 저출산인식 설문조사’ 결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응답자들이 꼽은 것은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위한 기업의 배려’(35.7%)다. 임신·출산 과정에서 “일이냐, 육아냐”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는 것이 여전히 상당수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올 상반기에만 출산·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준 업체 455곳을 적발했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졌음에도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가부장적 문화도 걸림돌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육아하는 아빠가 멋있다”며 아빠 육아 참여 독려에 나섰다. 오는 11월 말까지 <슈퍼맨이 돌아왔다> 영상활용을 통한 TV 공익캠페인, 100인의 아빠단 등을 운영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출산·양육에 유리한 환경조성을 위해 제3차 저출산 기본계획에 아빠의 육아 참여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출산정책의 외연도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단 기혼부부만이 아닌 만혼·비혼과 같은 ‘결혼 크레바스’(Crevasse: 미혼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균열) 현상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조성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결혼과 출산이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미혼비율을 낮추는 것이 시급하다”며 “소득이 낮으면 이성교제비율도 떨어지기 때문에 청년고용정책을 저출산 대책의 틀 안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저출산·고령화가 경제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지난해 4월 아베 신조 총리가 ‘소자화’(小子化: 어린이 인구감소 현상)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앞서 프랑스는 1989년 출산율 저하에 따른 국가비상사태 선언 후 유럽국가 중 출산율 1위인 1.98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정부는 내년부터 5년간 저출산·고령사회 극복을 위한 3차 기본계획을 추진한다. 박 대통령은 이 3차 기간(2016~2020년)을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출산장려책을 지금처럼 복지부가 컨트롤하는 것은 추진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고용에서 주택, 보육까지 종합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세우려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든지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총대를 메야 한다”고 말했다.

한스 로슬링 교수(왼쪽)와 유경준 통계청장. /사진제공=통계청
한스 로슬링 교수(왼쪽)와 유경준 통계청장. /사진제공=통계청

방한한 ‘통계 석학’ 한스 로슬링 교수
“한국의 저출산율, 양성평등이 해결책”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반드시 개선될 것이다.”
 
통계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인구구조전문가인 한스 로슬링 교수(스웨덴 카롤린스카의학원)가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기념해 내한했다. 지난 2일 통계청이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진행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스페셜 콘서트’에서 그는 “(미래) 최저출산율의 한국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이같이 답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여성 1명이 6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1명의 영아가 사망했는데 지금은 1명의 자녀를 두는 것으로 급격히 변했다.
 
난제를 풀 열쇠는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이다. 로슬링 교수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유럽 선진국의 높은 출산율을 근거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경제와 기술, 사회 분야에서 빠른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이 가사 및 양육, 부모 봉양 등 2중·3중의 부담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며 “여성의 지위향상 및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변화가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미 저출산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을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인 저출산정책을 펼칠 것을 촉구했다. 로슬링 교수는 “저출산 해법의 하나로 이민을 고려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