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들의 애환과 시름을 달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무학’. 대표제품인 화이트와 좋은데이는 그야말로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대표주'로 떠올랐다. 지난 80여년간 품어온 세월만큼 그 땅에 살다 갔거나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그 속에 온전히 녹아있기 때문. 기쁘거나 위로받고 싶은 날, 사람들은 친숙한 초록 병을 벗 삼아 너도나도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대한민국 주류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무학을 이끌고 있는 최재호 회장(55). 소주에서 전통주, 과일 리큐어주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며 주류업계의 '주류'로 올라선 그는 이제 업계 변화를 이끄는 선구자다. 비슷하지만 조금 낯선 분야에 도전하기, 그리고 가장 중심에 있는 주류문화를 지켜나가기를 병행하며 그는 자신의 이름을 굳건히 넓히는 중이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그를 경상남도 창원공장에서 만난 날은 지난 10월 1일. 무학의 86주년 창립기념일이자 최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만 30년째가 된 의미 깊은 날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무학은 참 많이도 달라졌다. 1년에 1000만병을 판매하던 지방의 작은 소주회사는 월 5000만병을 판매하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2억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기준 815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현재 직원 수만 600여명. 올해 들어온 무학인만 해도 157명에 달한다.


“돌아보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어려운 면도 있었어요. 우선 86년 동안 지속적으로 고객들의 사랑을 받아 온 것은 늘 감사하고 고마운 부분이죠. 반면 사람이나 기업이나 오래되면 쇠퇴기를 걷게 되는데 살아남기 위해선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그 답에 대한 고민은 영원한 숙제인 것 같아요.”

그는 처음부터 ‘지역’에만 꿈을 가두지 않았다. 전국주를 넘어 가장 까다로운 꼭대기인 세계 무대에서 뛰기를 원했다. 처음부터 적당히 매출이 나오는 시장을 공략하고 지역 내에서 적당한 찬사를 받으며 아버지 회사를 물려 받은 2세 경영인이라는 한계와 함께 인정받기를 원했다면 아마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독한 경쟁'의 세계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혹은 무학다움’이다.


[CEO] '저도주 신화' 이끈 '무학다움'
[CEO] '저도주 신화' 이끈 '무학다움'

◆ ‘왜?’라는 질문이 낳은 '저도주 신화'

최 회장은 성공한 리더의 전형을 깬다. 이 전형이라는 것은 술에서 우리가 가지는 선입견 일 것이다. “소주는 취해야 한다, 25도는 돼야 소주다, 술은 독하고 써야 제 맛, 소주는 다양화되기 힘들다…” 그는 이런 선입견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어렸을 적부터 반항심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어떤 제품이 있으면 저 병은 왜 저렇게 만들었지? 색상은 왜 저걸 선택했지? 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려고 해요. '왜?'라는 생각이 늘 훈련되다 보니 게임을 하더라도 똑 같은 방법으로는 안하죠. 모든 것에는 변화가 있어야 해요. 무학이 걸어온 길도 마찬가지죠.”

국내 최초 저도주 신화라는 수식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최 회장은 지난 1995년 25도로 고정된 소주시장에 23도짜리 저도주인 ‘화이트’를 출시하면서 국내 소주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당시 화이트는 3가지 변화와 함께 탄생됐다. 2도 낮춘 도수, 그리고 녹색병과 돌려 따는 병마개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소주=25도’ 공식을 깸과 동시에 현재 소주하면 떠오르는 병 디자인의 역사가 지방의 한 소주기업에서 내놓은 술에서 비롯된 셈이다. 화이트는 소주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출시 1년 만에 1억병 판매를 돌파,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2006년엔 16.9도의 순한 소주 ‘좋은데이’까지 선보이며 무학은 저도주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1990년대는 자도주보호법이 폐지됐다 살아났다가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점이었어요. 어려운 여정에 포함되면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한맥 등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면서 가능성을 보고 다시 신제품을 출시하기를 반복하던 중에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죠. 그 원동력이 화이트고 좋은데이는 거기에 이어 2탄으로 탄생됐죠.”

여성도 즐겨 먹을 수 있는 술, 취하도록 마시는 주류문화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놓은 좋은데이의 성장세는 놀라웠다.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대선주조의 ‘C1’으로 대변되던 부산의 소주시장까지 단숨에 삼켜버렸다.

좋은데이는 부산·울산 소주시장의 75%를 장악하며 현재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대표 소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출시 8년 만에 15억병 판매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CEO] '저도주 신화' 이끈 '무학다움'
[CEO] '저도주 신화' 이끈 '무학다움'

◆ 주류 트렌드 바람 타고 전국·글로벌주로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학은 지난 5월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를 잇따라 출시하며 과일 리큐어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일본 ‘과일 리큐어’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한 최 회장의 계획대로 국내서 첫 고개를 넘은 셈이다.

“해외 트렌드가 먼저 그렇게 바뀌어 갔어요. 상대적으로 주류문화의 변화가 빠른 일본시장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향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일본에 먼저 10여종의 제품을 출시한 뒤 국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죠. 수도권 공략, 마케팅 등을 고민하던 찰나에 때마침 롯데주류의 ‘순하리’가 나오면서 돌풍을 일으켰고, 무학의 컬러시리즈도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시장 반응은 ‘플러스’로 돌아왔다. 출시 10여일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병을 돌파하며 출시 두달 만에 2500만병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수도권 진입 확대를 위한 교두보도 마련했다. 부산과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6월부터는 전국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입점하면서 유통망을 더욱 확대했다. 용인, 일산, 울산, 부산 등 전국단위로 커버할 수 있는 물류센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컬러주 도입으로 수도권 진입이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무학은 전국 주류가 될 수 있는 요건을 2년 전부터 갖춰왔어요. 무엇보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죠. 또 다른 주류회사보다 가장 많은 제품을 만들었던 회사라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잠재력을 놓고 볼 때 전국주로서 무학의 성장기반은 닦였다고 봅니다. 앞으로 소비자 반응과 평가를 토대로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맛의 리큐어 제품도 계속해서 개발할 겁니다.”

최 회장은 오는 2018년까지 국내시장에서 위치를 견고히 한 뒤 ‘2019년 글로벌 주류기업’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글로벌기업이 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계획이다. 우선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을 시작으로 유럽, 미국 등의 국가에 점진적으로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CEO] '저도주 신화' 이끈 '무학다움'

◆ 굿데이 뮤지엄 개관… 변화를 이끄는 선구자

남들과 다른 길, 다른 생각, 변화를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무학다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최 회장의 꿈이자 소명의식이 됐다. 자신이 들어선 길에서 획을 긋는 일, 국내 주류시장에 역사성을 띠는 일을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결국 주류도 문화의 힘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관한 국내 최대 주류 박물관인 ‘굿데이 뮤지엄’도 그러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전세계에 다양한 주류문화를 알리고 싶었어요. 인류와 함께해 온 술의 역사가 어떤지, 전 세계에는 어떤 술이 있는지, 단순히 취하고 마시는 술이 아닌 술에 담긴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죠. 직원들에게도 전세계에 얼마나 많은 술이 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직원들에게는 하나의 도서관이 되고 고객들에게는 다양한 주류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탄생된 배경이다. 박물관에서는 최 회장이 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수백개의 술을 포함해 3000여종의 세계 술 테마관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외 마산의 주류 역사, 무학의 발자취 등을 소개하는 1970년대 재현전시관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방문객이 점차 늘어나면서 지역의 관광명소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제 주류를 하나의 문화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 속에서 기업가는 트렌드를 만들고 미래를 내다봐야 하죠. 새롭게 진화하지 않으면 그 산업은 몰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25도의 소주만 다 같이 고집했다면 아마 일본의 정종이나 다른 술들이 우리 소주시장보다 더 커졌을 수도 있습니다. 변화를 이끄는 선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방증이죠.”

새로움, 다름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자극하며 한발 앞서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주류문화라는 철학을 얹는 것. 최 회장은 30년간 이어온 그 절묘한 결합에 대한 고민을 앞으로도 이어갈 생각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