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까지 4조3000억원 손실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영업중단이 우려됐던 대우조선해양이 가까스로 회생 기회를 잡았다.

대우조선 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최대 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29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대우조선 지원방안을 논의한 끝에 신규 출자 및 대출 방식으로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 상당의 금액을 긴급수혈키로 결정했다. 산은이 2조6000억원, 수은이 1조6000억원을 분담한다.


이번 자금지원은 대우조선으로서는 회생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지적이 그치지 않아 더 이상의 자금지원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 기자간담회.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 기자간담회.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부실 털어낸 정성립호, 순항할까

채권단이 지원키로 한 4조2000억원은 올해 3분기까지 손실을 모두 메울 수 있는 큰 금액이다. 지난 5월 취임한 정성립 사장이 이끄는 대우조선은 원점에서 다시 사업을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우조선의 대규모 손실은 지난 5월 취임한 정 사장이 2분기 실적에서 '빅배스'(과거의 부실요소를 한 회계연도에 반영하는 회계기법)를 단행하며 드러났다. 정 사장은 취임 직후 회사의 숨겨진 부실이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이를 정리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대우조선은 2분기 3조원, 3분기 1조2000억원 상당의 손실을 각각 반영했다.

대우조선 측은 3분기를 끝으로 모든 영업손실이 반영됐다는 입장이다. 엄정한 실사과정을 거쳐 손실 우려가 있는 부분까지 모두 반영한 결과기 때문에 채권단으로부터 지원받는 4조2000억원의 자금이면 유동성 우려 없이 원만한 사업진행이 가능하다는 것. 대우조선 한 관계자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모든 손실을 반영했기 때문에 4분기부터는 오히려 일부금액이 환입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도 대우조선이 생각보다 빠르게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대우조선은 전세계 조선업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수주잔량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정상권의 고부가가치 선박건조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수주 잔량은 9월 말 기준 131척, 850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 달한다. 게다가 이중 42%가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과 LPG선이기 때문에 수익성도 높다.

다만 현재 수주물량 소진 이후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은 의문이 남는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저유가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어 상선만으로는 의미 있는 실적을 내기는 어렵다. 실제로 대우조선이 올해 수주한 물량은 LNG선 9척, 컨테이너선 11척 등 43억여달러로 연초 수주목표인 130억달러의 33.5%수준에 그친다.

고수익을 위해서는 해양플랜트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지만 해양플랜트로 인해 사상최대 적자를 경험한 대우조선이 공격적인 플랜트 수주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지난 5월 취임과 동시에 리스크가 큰 해양플랜트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한 선박건조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 을지로 사옥. /사진=머니위크DB
대우조선해양 을지로 사옥. /사진=머니위크DB

◆노조, ‘고통분담’ 누구와 하나
영업중단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에 자금이 수혈돼 숨통이 트였지만 더 큰 과제가 남아있다. 대우조선이 이 지경까지 온 이유를 명백히 찾아내 책임자를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앞으로 본격화될 ‘한계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말 자체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산업사에 길이 남을 이 사태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하면 제2, 제3의 대우조선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란 법은 없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조선 노조에 ‘고통분담’을 명목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쟁의행위를 자제하겠다’는 내용의 자구안 동의서를 요구했다. 회사의 존폐를 볼모로 한 요구에 노조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정작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아무런 고통을 나눠갖지 않는데 누구와 고통을 분담하라는 것이냐는 분개가 터져 나온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난에 대우조선 노조는 경영난을 고려해 임금을 동결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공정만회 대책을 자발적으로 제안하는 등 고통분담의 자세를 보였다”며 “정작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전 경영자는 임기종료와 함께 책임도 사라지고 관리 없이 낙하산 인사 꽂아 넣기에 급급했던 정부와 채권은행이 노조를 죄인 취급하는 현 세태는 고통분담이 아니라 고통전가일 뿐”이라고 일침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회사 정상화가 우선이지만 회사의 방만경영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현우 대우조선해양 노조 기획실장은 “이번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 원인은 전임 사장들이 실적은 부풀리고 부실은 숨겼기 때문”이라며 “산은이 전 경영진의 배임 여부를 조사해 책임을 묻는다고 밝혔기 때문에 일단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진뿐 아니라 이를 방치한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의 책임도 엄중히 따져 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 교수는 “대우조선사태는 산업은행의 문제고 궁극적으론 금융당국의 문제”라며 “대주주로서 책임을 망각하고 경영진과 노조의 자구노력만으로 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채권은행과 그 뒤에 숨은 감독당국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구조조정을 은폐하기도 하고 주도하기도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의 좀비기업을 막을수 없다”며 “채권은행을 통한 구조조정뿐 아니라 법원에 의한, 자본시장에 의한 구조조정 등 다양한 방안을 배양하는 것이 제2의 대우조선을 막을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