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순자산은 1919년 1만6000파운드에서 사망 직전인 1940년대 중반 41만파운드로 늘었다. 케인즈가 남긴 “주식투자는 미인대회와 같다”는 투자격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미인대회는 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여성을 선택해야 한다. 주식투자도 자신만의 관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주식을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사고 싶어하는 주식에 투자할 때 주가가 잘 올라간다.
성장성이 높은 기업이라고 주장해도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주가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중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것은 미술품 투자에도 종종 적용된다. 자신이 보기엔 그저 그런 그림이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거나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 싼 값인 경우가 흔하다. 미인대회처럼 주식시장과 미술시장에서도 투자가 목적이라면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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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단색화' 전시공간. /사진=뉴시스 유상우 기자 |
◆시대 따라 달라지는 그림·주식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인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듯 주식 종목도 변한다. 시장 흐름의 중심이 성장주인지 가치주인지, 거래소의 대형주인지 코스닥종목인지 이해한 후 투자하면 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미술시장 흐름도 마찬가지다. 대중적으로 별 관심을 받지 못했던 화풍이 시대를 주도하는 화풍이 되기도 한다.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던 화가가 사망 후 재평가받기도 한다. 미인의 기준이 바뀌듯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식과 미술품의 기준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해한다면 수익률 올리기에 유리해진다.
현재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3인방으로 이중섭·박수근·천경자 화백이 꼽힌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발표한 ‘2000~2011 국내 아트옥션 작품별 낙찰가격 100순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가부터 100위까지의 작품 중 절반 이상이 박수근 작품이다.
역사상 최고가도 박수근 작품으로,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빨래터’가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구매수수료를 포함하면 거래대금이 50억원가량 될 것이다. 1950년대 후반에 그려진 ‘빨래터’는 독특한 질감과 단순한 선으로 여성의 일상을 표현한 유화다.
당시엔 ‘빨래터’가 고가를 기록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해외무역회사의 한국주재원이었던 한 미국인이 가난에 시달린 박수근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지원했는데 이때 박수근이 고마움의 표시로 준 작품이 ‘빨래터’다. 그랬던 작품이 현재 한국 최고가격의 그림이 된 것이다.
지난 2010년 6월엔 국내 미술품경매사상 두번째로 높은 낙찰가가 나왔다. 바로 이중섭의 ‘황소’(35억6000만원)다. 이중섭은 1956년(40세) 적십자병원에서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작고했다. 훗날 회고전과 재평가작업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그의 작품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황소’는 이중섭과 동향 출신인 사람이 1955년 미도파화랑 개인전에서 쌀 10가마니를 주고 가족 시리즈 3점을 구입했는데 이후 이중섭이 부탁해 ‘황소’와 맞바꿔 소장하게 된 작품이다.
‘빨래터’와 ‘황소’의 사례처럼 훗날 보석 중 보석으로 평가될 작품을 우연찮게 소장하는 경우가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주식에서 의외로 대박나는 경우가 있다.
미술경매시장이 회복되면서 지난해 낙찰총액이 전년(720억원)보다 35% 증가한 970억7300만원을 기록했다. 2008년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출품작은 같은 기간 대비 1740점 늘어난 1만3822점이었고 낙찰률은 64%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미술경제지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낙찰총액이 가장 큰 작가는 김환기로 총 100억7744만원에 달했다. 낙찰된 46점의 작품당 평균가격은 2억1907만원이고 1968년작 점화 ‘무제 16-VII-68 #28’ 의 낙찰가는 16억원이다.
2위인 이우환 작품의 낙찰총액은 87억6305만원이며 낙찰된 72점의 작품당 평균가격은 1억2171만원이다. 이우환 화백은 일본 모노파(1960년대 일본현대미술운동)의 창시자로서 동양사상으로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수근은 총 20억401만원으로 전년 8위에서 10위로 내려왔다. 낙찰작품당 가격은 평균 1억5415만원으로 여전히 최고수준이다. 주식시장으로 치면 황제주 자리를 유지하는 셈이다.
낙찰수와 낙찰총액은 환금성을 나타내므로 투자에 초점을 맞출 때 고려해야 할 요소다. 주식투자 시에도 주식의 가치뿐만 아니라 환금성을 고려하는 투자자가 많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단색화
최근 주목해야 할 새로운 흐름은 태동한 지 40년 된 단색화다. 단색화는 한가지 색이 아닌 여러 색이 뒤섞인 단색으로 현상을 표현한다. 미묘한 명암 속에서는 흰색이 흰색이 아니고 검은색이 검은색이 아니듯 한가지 색 같지만 한가지 색이 아닌 그림이다.
여러 화랑에서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등의 단색화 작품을 선보이면서 좋은 호응을 이끌어냈으며 해외아트페어에서도 단색화 작품의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
크리스티 홍콩 가을 경매에 신설된 단색화 섹션에는 이우환 작품에 큰 관심이 모아졌다. 이우환의 단색화는 모든 조형의 기본이 되는 점과 선을 주로 사용한다.
단색화는 1970년대에 등장해 1980년대 사회변혁적 민중미술,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는 동안 조용하게 사조를 이어오다 40년만에 유행의 중심에 섰다.
단색화의 경우 가격이 1년간 5~10배나 올랐다. 주식시장의 폭등주를 보는 듯하다. 과열 뒤 거품이 해소되는 후유증이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색화의 인기는 소장하려는 수요의 증가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초저금리시대 투자의 관점에서 단색화를 구입할 시기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주식시장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테마가 해외에서 먼저 각광받은 후 한국에서도 크게 각광받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 미술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회복되는 추세다. 세계미술품경매시장의 점유율은 미국(21%), 중국(18%), 프랑스(11%), 영국(9%), 독일(7%), 이탈리아(6%), 덴마크(3%), 일본(3%) 순이고 나머지 국가가 22%를 차지한다(2014년, Art Economics).
한국이 주요 국제협력기구(OECD) 국가에 비해 순수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가 낮은 편이므로 문화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대중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가 작품보다는 저가 작품이 많이 나와 활발하게 거래되도록 미술계에서 신경 써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