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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아파트단지 전경. /사진제공=뉴시스 |
전세의 월세 전환이 늘면서 A씨와 같이 주거비 부담을 느끼는 서민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발표한 전·월세 거래동향을 보면 서울 월세 비중은 아파트가 34.0%, 다세대·다가구의 경우에는 50.1%로 집계됐다.
이런 현상은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서민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지난해 2월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통해 월세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도에 허점이 많아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저소득층은 과세미달자로 분류돼 공제받을 수 있는 세금이 없다. 국세청의 2014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귀속소득 기준으로 과세미달자는 1635만9770명 중 512만115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계산으로 근로자 3명 중 1명이 과세미달자라는 결과가 나온다. 국세청에선 연소득이 3인 가족 기준 2254만원 이하, 4인 가족은 2782만원 이하 가구 대부분이 과세미달자에 포함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통계청이 이달 4일 발표한 620만명의 비정규직 평균 급여는 146만6000원, 연봉으로는 1759만2000원이다. 그 어떤 계층보다 월세 세액공제를 받아야할 이들 대다수는 신청조차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연봉이 높은 월세 가구가 신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의료비, 보험료 등 각종 공제를 제하면 월세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세액공제 최대 금액이 75만원으로 한정돼 결국 월세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이 사실상 없다.
비싼 월세에 사는 고액연봉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도를 한정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공제대상은 연간 급여 5000만원 이하에서 7000만원 이하로 크게 확대했다.
부부 중 어느 한쪽만 이 조건을 충족하면 되는데다 보증금에는 상한선이 없어 보증금 9억원 월세 75만원인 서울 강남 84㎡ 아파트에 거주하는 근로자와 보증금 없이 월세 50만원인 용산구 쪽방에 거주하는 근로자가 같은 조건인 꼴이다.
이 제도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언뜻 봐선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주거비 부담 완화라는 본래의 정책취지에도 합치하는 지에 대해 의구심마저 든다.
또한 철저하게 을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세입자가 집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소득세법상 집주인이 9억원 미만의 1주택(부부 합산)을 소유 중이라면 임대소득에 대해 비과세를 적용받고 주택임대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내년 말까지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마찬가지로 비과세를 적용받는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집주인이 월세가 아닌 보증금 관리비 등 월세 세액공제 대상이 아닌 부분을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약 때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세입자들이 세액공제를 신청하기엔 여전히 부담이다.
다만 경정청구제도를 활용해 지난해 귀속분까지 3년, 올해부터는 5년 이내에 관련 서류를 갖춰 청구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유일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잘못된 진단 탓에 설익은 제도가 마련된 것이라며 실효성 있는 제도를 위해 선결 조건을 제시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정부가 이런 유명무실한 대책을 내놓은 근거에는 임대차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이 깔렸다"면서 "임대차시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치를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 부장은 이어 "정부가 정말로 서민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주거비보조의 확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도입, 임대차등록제 등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