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간 남는데 영화 뭐 볼까요? 골라주세요. 1. 검은 사제들 2. 007스펙터” 

└ 111111 검은사제들요. 강동원 봐야
└ 222222222222 두번 봤어요


[커버스토리] TV·음악·소설까지 골라주는 시대

최근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질문과 댓글이다. A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양자택일 혹은 다지선답으로 물어보면 A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객관식에 답을 준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선택의 갈림길에서 타인에게 결정을 맡기는 소비자의 선택장애를 “죽느냐, 사느냐”라며 고뇌하던 햄릿의 성격에서 따와 ‘햄릿증후군’으로 명명했다.
햄릿증후군시대에는 단순 추천기능을 넘어 이용자의 취향과 선호도 등을 분석해 개인별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 큐레이션서비스가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특히 뉴스나 TV(동영상), 음악과 소설 등 콘텐츠를 재분류하는 서비스가 한창이다. 이 같은 큐레이션서비스는 당신의 24시간과 함께한다. 선택에서 자유롭고 싶을 때 전문가의 추천에 고민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

피키캐스트
피키캐스트
◆신미디어의 탄생 

SNS로 하루를 시작하는 햄릿(29). 그는 모바일콘텐츠 큐레이터서비스인 ‘피키캐스트’를 관심사로 설정해놓고 매일 새소식이 전달될 때마다 ‘좋아요’를 누르기에 바쁘다. 피키캐스트가 소개하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다르다. 혼자 밥 먹기 좋은 식당을 소개하거나 힘들고 지칠 때 듣기 좋은 노래가사를 선별해주고 혹은 그날의 기사 중 ‘핫’한 소식을 전해준다.
지난해 선보인 피키캐스트는 무수히 많은 정보 중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흥미롭고 재미있는 콘텐츠만을 엄선 제공하며 콘텐츠 큐레이션서비스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사진이나 움짤(움직이는 이미지), 음악, 짧은 텍스트 등 모바일에 최적화된 형태의 콘텐츠를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매일 100만명이 넘는 이용자가 방문하는 인기 앱으로 급성장했으며 사용자의 80%가 10~20대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층의 소통의 한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이 같은 큐레이션서비스를 언론매체로 인식하는 비율이 32.7%에 달했다. 기성언론을 위협하는 새로운 미디어가 된 셈이다. 급기야 언론사들도 최근 기사의 선별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LG유플러스 '큐레이션'
LG유플러스 '큐레이션'
◆리모컨 돌리기 ‘그만’

‘301번(무한도전), 505번(유아인)’. 햄릿은 새로운 IPTV서비스를 접한 뒤 TV채널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LG유플러스가 이달 초 드라마·예능·영화·다큐 등의 인기VOD를 300번부터 999번까지 약 500개의 가상채널 형태로 구성한 ‘큐레이션TV’를 출시했기 때문. 기존 VOD 시청 시 복잡한 단계를 거쳤던 것과 달리 채널의 번호만 누르면 원하는 VOD를 바로 시청할 수 있다. 예컨대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고 싶을 경우 301번을 누르면 바로 시청이 가능하다.

KT의 IPTV서비스인 ‘올레tv’는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이용자 개인의 취향에 맞는 VOD를 소개하는 ‘실시간 감성 큐레이션’서비스를 개발했다. 고객의 평소 시청패턴과 VOD 시청 후 입력한 별점 평점을 통합분석, 개인별 취향에 따른 맞춤콘텐츠를 실시간 제공한다.

경쟁사 SK브로드밴드 또한 고객별 맞춤영화를 추천해주는 ‘스마트무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겨울왕국>을 시청한 고객이 추천시스템에서 유사 영화를 추출한 후 <라푼젤> 등을 추천받는 방식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변화무쌍한 콘텐츠 중 고객 취향에 맞는 것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앞으로 시장지배력을 위한 이통 3사의 콘텐츠 큐레이션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KT 지니뮤직
KT 지니뮤직
심장의 선택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오전 6시. 햄릿이 음악소리에 잠을 깬다. 비 내리는 새벽 그의 음악서비스 앱이 위치와 날씨를 토대로 모닝콜의 노래를 선곡한 것. 새벽운동에 나서자 스마트워치와 연동된 앱은 햄릿의 심장박동 수를 체크해 몸 상태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준다. 빨리 달릴수록 비트가 빨라져 경쾌한 음악으로 바뀐다. 퇴근 후 늦은 밤, 잠자리에 드는 햄릿을 위해 클래식이 연주된다.

음악서비스 ‘지니’를 운영 중인 KT뮤직은 고객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디지털 음악서비스를 제공한다. 위치와 날씨를 기반으로 음악을 선별해 모닝콜로 들려주는 ‘굿모닝 지니’, 스마트워치로 심박 수를 측정해 그에 맞는 음악을 재생하는 ‘지니 스포츠’, 운전 중 음성명령으로 안전운전을 보장하는 ‘지니 드라이브’, 음악과 SNS를 결합한 음악채팅 ‘뮤직허그’, 숙면유도가 가능한 ‘굿나잇 지니’ 등이다.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멜론’ 역시 10년간 구축해온 2800만 고객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개인별 큐레이션서비스를 지원한다. 고객의 감상이력, 멜론 내 활동내역에 따라 아티스트별 팬 지수를 수치로 확인하고 맞춤형 곡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빅데이터 분석기술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음악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커버스토리] TV·음악·소설까지 골라주는 시대
◆쏟아지는 책, 그중 OO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 중이라면? 책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를 위해서도 큐레이션서비스가 존재한다. 인터파크도서의 문학 큐레이션서비스 ‘노블박스’는 ▲하루 30분 이상 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한번쯤 고민하고 질문할 수 있는 주제가 있는지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재미가 있는지 등의 기준을 놓고 매월 문학담당 MD, 북DB 콘텐츠전문가와 출판사가 함께 도서를 선정해 추천한다.

대중의 관심 밖에 놓인 시에도 큐레이션서비스가 가미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책서비스 북스데이는 좋은 시를 일상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도록 ‘시 큐레이션서비스’(가칭)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200여명의 시인들이 참여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인호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콘텐츠 전쟁시대에서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큐레이션서비스가 가장 중요하다”며 “고객의 성향과 감정, 선호도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전달하는 비즈니스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