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개혁의 마지막 과제로 꼽은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을 놓고 은행권이 시끄럽다.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연차가 쌓이면 자동으로 연봉이 오르는 호봉제를 손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원회는 성과주의를 도입해 은행권의 고임금체계와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연내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부서 성과에 묻어가는 저성과자의 무임승차를 줄여 연공서열에 익숙한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것. 더욱이 수익악화를 겪는 은행권의 비용절감, 효율성 증대를 위해 고임금에 해당하는 은행원의 인력구조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순이자마진이 지난 2006년 1분기 2.80%에서 2008년 4분기 2.46%, 올 3분기 1.56%로 떨어진 반면 은행직원 4명 가운데 1명은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

최근 금융연구원의 ‘금융인력 기초통계 분석 및 수급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종사자의 초임은 남자 5000만원, 여자 4500만원이다. 판매관리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2%에 달한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성과제 도입에 적극적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은행권 내부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사진=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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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 우선시
금융지주 수장들은 성과주의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은행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연공서열 위주의 임금 및 인사고과체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만큼 성과중심의 체계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지주 중에선 NH농협금융지주가 속도를 내고 있다. 농협금융은 부서와 지점에 적용하던 성과제를 개인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인성과지표를 개발하는 중이다. 필요 시 외부전문가 투입도 고려하고 있다.

농협금융의 임금체계 개편에서 주목할 점은 정성평가를 정량평가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즉, 실적 순서로 성과급을 주는 것이 아닌 직원의 자구노력, 기업 비전과 철학 이행 여부 등의 비중을 높여 평가할 계획이다.

아울러 직원에게 자가평가를 받아 성과지표에 반영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임직원이 스스로 근무 성과목표를 설정하고 달성여부에 따라 평가를 내놓는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지주에서 개인성과지표 개발에 앞서 노조와 논의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직원들의 성과까지 평가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포커스] 은행 성과주의, ‘무임승차’ 차단할까

◆5~7등급 품은 개선안 마련 시급
성과제 도입의 관건은 소위 하위등급으로 불리는 5~7등급 성과자의 반발을 잠재우는 것이다. 부서평가에 따라 성과를 받던 일부 직원들의 성과급 감축이 예상되는 만큼 반발도 커질 전망이다.

KB국민은행은 영업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자가진단서비스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자가진단서비스는 영업직원들이 영업과 자기계발 실적 등을 토대로 평가등급을 확인하고 스스로 실적을 진단하는 서비스다. 개선안에는 현행 성과지표를 세분화해 실적이 낮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항목을 추가할 예정이다. 즉, 영업실적 비중이 줄어들 가능성도 커졌다.

국민은행은 이달 초부터 사내망 게시판을 통해 성과제 도입, 자가진단서비스 관련 의견을 받고 있다. 게시판은 인력지원부가 관리하고 영업직원들이 자율방식으로 작성하며 철저히 익명으로 운영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게시판에는 실적이 낮은 직원들의 요구항목이 세밀하게 올라오는 것으로 안다”며 “개선안이 나오면 내년에는 본점 직원을 포함한 자가진단서비스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나머지 시중은행도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을 점진적으로 추진한다. 신한·하나·우리·기업은행은 올 연말 인사평가 때부터 직원들의 업무특성별로 평가항목을 세분화해 수치를 매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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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신한 새 노조와 합의 필요
은행권이 성과주의 도입에 성공하기 위해선 노조와의 합의가 급선무다. 특히 이번달 새로운 노조가 출범하는 기업·신한은행은 새 집행부를 대상으로 성과제 임금체계 도입을 설득해야 한다.

기업은행은 이달 1일, 신한은행은 이달 10일 새로운 노동조합 선거가 시작된다. 신한은행은 성과제 적용을 일부만 확정했고 기업은행은 현 노조가 성과주의 도입에 총파업으로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새로운 노조와의 합의도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달 1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는 성명을 통해 ‘금융개혁의 탈을 쓴 노동개악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융노조도 ‘성과제는 직원을 서열화하고 노동자를 직접 통제하려는 의도’라며 총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업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노조가 임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성과제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은행 내부에서도 새로운 임금체계 트렌드에 공감하는 분위기”라며 “새로운 노조를 설득한다면 국책은행이 성과제를 먼저 도입하고 시중은행이 동참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올 연말 당국과 금융지주 수장들이 성과주의 도입에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노조와 임직원들이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