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착수한 IC카드 단말기 보급사업이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여신금융협회는 각 카드사를 통해 1000억원 기금을 조성했지만 미숙한 운용으로 IC단말기 보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IC단말기 보급사업은 해킹에 취약한 마그네틱 방식의 MS단말기보다 보안성이 우수한 IC단말기를 180만여 영세가맹점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단말기를 실제 관리하는 밴(VAN)사와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해 180만 가맹점 중 교체대상 가맹점 정보를 알 수 없게 된 것. 사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협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머니위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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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현재 조건의 IC단말기가 보급되는 것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재 보급하는 IC단말기에는 NFC(근거리무선통신) 결제기능이 없기 때문. 국제시장에서 점점 보편화 돼가는 NFC 결제기능을 제외한 건 시대에 역행한다는 주장이다.
◆정체된 IC단말기 보급사업


지난 2014년 7월 8개 카드사는 기금 1000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해킹에 취약한 마그네틱방식의 MS단말기를 IC단말기로 교체하기 위한 기금이다. 정보유출을 방지하고 유럽의 경우 이미 IC단말기가 보편화됐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됐다.

사업진행을 위해 여신협회는 IC단말기 보급사업을 진행할 밴사를 입찰받았다. 분명 밴사에겐 영업망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가맹점수수료를 인하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밴협회 소속 12개 밴사 중 1곳도 입찰에 응하지 않았다.

여신협회는 밴사에 15만원가량의 단말기를 공급하고 영세가맹점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 밴사가 영세가맹점으로부터 받는 관리비와 수수료를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반면 업계 내 일정규모 이상의 시장지배력을 가진 밴협회 소속 밴사들은 굳이 관리비·수수료를 낮추면서까지 단말기를 공급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협회 소속 밴사들이 빠지면서 IC단말기 지급대상 가맹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현재 연매출 2억원 미만 영세가맹점 수는 180만개, IC단말기를 최대한 저렴하게 제작해 1대당 15만원으로 맞춘다면 1000억원으로 총 65만개의 단말기를 교체할 수 있다. 180만 가맹점 중 우선 교체대상 가맹점은 기존 밴사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된 가맹점이지만 이들이 어디인지 아는 건 협회 소속 일부 밴사뿐이다.

결국 IC단말기 사업자로 선정된 금융결제원, 한국스마트카드, 한국신용카드네트워크 등 3개의 밴사가 180만 영세가맹점을 직접 찾아 돌아다니며 일일이 계약기간 만료 여부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 결과 IC단말기 보급이 시작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영세가맹점을 지원하겠다는 협회의 사업방향과 기존 밴사와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며 발생한 일이지만 기존 밴사를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지속됐다.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여신협회는 “다음 주부터 TV 등을 통해 광고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가맹점주가 홈페이지에서 직접 신청할 수 있도록 해 IC단말기 보급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광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단말기 계약기간이 명시된 영세가맹점 리스트를 기존 밴사들이 제공하지 않는 한 이 사업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일부 밴사가 여신협회 사업에 비협조적이라고 해서 사업 자체가 정체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여신협회가 지난 카드정보 유출사건 이후 금융당국의 압박에 못이겨 철저한 준비없이 서둘러 사업을 추진해 빚어진 문제”라고 지적했다.

◆NFC 탑재 안돼 보급돼도 문제

애초 IC단말기에 NFC 결제기능 탑재를 반대했던 카드사들이 수개월이 지난 현재 속속 NFC 결제방식의 서비스를 선보여 사실상 NFC 기능이 탑재된 단말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신협회는 NFC 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IC단말기 보급사업을 원안 그대로 진행해 시대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8개 카드사는 IC단말기 보급 관련 안건을 추가로 논의했다. IC단말기에 NFC 결제기능을 포함할 것인지, 원안대로 진행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원안인 IC칩 결제방식의 단말기 가격은 최소 15만원인데 NFC 기능을 탑재하면 10만원가량 추가되기 때문이다.

일부 카드사는 NFC 기능 탑재에 반대했다. 모바일 결제방식이 아직 표준화되지 않았고 앞으로 NFC 외에 또 어떤 새로운 방식이 나올지 모른다는 게 반대이유다. 하지만 최근 NFC방식에 회의적이던 카드사들이 속속 NFC 결제방식서비스를 시작하며 기존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NFC 결제기능을 포함할 필요가 없다던 주장과 상반되는 모양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11월 비자카드의 VCP(VISA Cloud-based Payments)를 도입, NFC 결제서비스를 시작했다. VCP는 HCE(Host Card Emulation)를 기반으로 만든 기술로 카드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해 결제 시 고객 스마트폰으로 가상 카드정보와 암호화 키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KB국민카드는 마스터카드와, 롯데카드는 유니온페이와 협약을 맺어 마찬가지 HCE를 기반으로한 NFC 결제시스템을 각각 도입키로 했다. 모두 NFC 단말기가 필요한 서비스다. 합의 이후 NFC에 대한 시각이 바뀐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NFC 결제방식은 국제표준으로 부상 중이다. 그 선두주자로 애플페이가 있다. 애플의 영향력으로 영국에서는 이미 2014년 말 기준 전국 가맹점의 50% 이상이 NFC 결제단말기를 보유했다. 애플은 유니온페이와 제휴를 맺고 중국 최대명절인 춘절(2월8일)에 맞춰 2월부터 중국에서 애플페이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중국 유일의 카드사인 유니온페이는 중국 내 360만대의 NFC 결제단말기를 깔았다. 3만대에 그친 국내 실정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NFC 결제방식이 점차 확대되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NFC 기능을 포함하지 않기로 했던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장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NFC방식은 현재 단말기 보급률이 낮지만 다양한 정보저장방식이 가능하고 기술적으로 성숙됐다”며 “현재는 신용카드 결제가 많지만 NFC 결제기술 사용에 대한 유인이 생겨 인프라가 형성된다면 국내에서도 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