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촉법 발효로 좀비기업 정리 본격화, 살아남기 안간힘

부실기업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 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간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나름대로의 기업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기업을 살리기는커녕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좀비기업의 수는 최근 5년간 700개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한층 강화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신기촉법)이 공표·발효되며 영업활동으로 은행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만성적 한계기업(좀비기업)에 대한 정리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살리느냐 죽이느냐’ 옥석가리기 예고


“신기촉법을 활용해 회생 가능한 기업은 지속될 수 있도록 탈바꿈시키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과감히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신기촉법 관련 간담회를 열고 “기업구조조정은 마치 환부를 치유해 새살을 돋게 하듯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생산적인 부문으로 자금을 흐르게 하는 과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좀비기업을 정리하고 산업 재정비를 통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현재 국내기업들은 ▲수출부진 ▲채산성 악화 ▲금리·환율 변동 ▲내수 위축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30대 그룹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은 최근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 주최 ‘부실기업 실태와 구조조정 방안’ 토론회에서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보면 2014년 한계기업의 비중이 전체 상장사의 31.3%를 차지하고 2012~2014년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미만인 만성적 좀비기업이 전 업종에 고루 퍼져 있다”며 “30대 그룹 중 17개 그룹이 좀비기업”이라고 지적했다.

다수의 대기업이 좀비기업에 포한된 탓에 전체 기업부채 규모(2347조원)에서 좀비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1.2%(약 492조원)에 이른다. 이들은 현재 저금리에 기대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금리인상이 시작될 경우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성이 커져 기업부채발 경제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이 짙다.

김 자문위원은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좀비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 부족으로 고용이 둔화되고 살아남기 위한 가격덤핑 등의 불공정 경쟁이 촉발돼 정상기업의 투자와 고용까지 저해될 수 있다”며 “더 늦기 전에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임 금융위원장도 “스스로 살아나려는 노력이 없는 기업은 어떠한 지원이 있어도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고 경영인의 철저한 경영정상화 의지가 선행되지 않는 구조조정은 단지 좀비기업의 연명일 뿐”이라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기업구조조정을 늦추거나 미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생존 위해 체질개선 나선 기업들 

이처럼 금융권발 고강도 구조조정이 예고된 가운데 기업 스스로도 인원 감원, 사업재편 등의 자구책을 강구 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인력구조조정 계획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인력구조조정 계획이 없다’는 48.8%, ‘모르겠다’는 43.5%, ‘구조조정 계획이 있다’는 7.7%로 나타났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기업이 절반도 안 되는 셈이다.

‘모르겠다’는 응답을 한 기업의 상당수는 이미 지난해 대규모 인력 감원을 실시한 상황에서 올해 추가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할 경우 노조와 여론 등의 거센 반발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모호한 답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30대 그룹의 80%는 올해 전반적 경영여건이 지난해보다 악화(소폭악화 70%, 대폭악화 10%)될 것으로 전망했다. 나머지 13.3%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 6.7%는 소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보다 더 혹독한 기업발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기업들의 올해 중점 추진전략도 ‘사업구조조정 등 경영내실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재계 선두주자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매각, 인수·합병(M&A) 등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미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카드,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매각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판단 아래 계열사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같은 작업을 올해 내내 끌지 않고 최대한 일찍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포스코그룹도 올해 혹독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지난 11일 주주총회에서 “구조조정 혁신을 통해 올해 1조원의 경비를 절감하겠다”며 “지난해 34개 비핵심 계열사에 대한 조정을 완료한 데 이어 올해는 54건의 추가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한 두산그룹은 올해 두산건설, 두산엔진, 두산인프라코어 등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를 대상으로 대대적 구조조정에 착수할 예정이다. 또 지난해 5조5000억원에 이르는 사상최대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은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비핵심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저성장과 경기침체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시너지가 없는 계열사는 부담”이라며 “핵심 역량과 시너지를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는 방향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 대다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기촉법이란
지난해 말로 일몰된 기촉법이 한층 강화돼 재탄생했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신기촉법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절차인 워크아웃 제도를 규정한 법이다. 이전 버전과의 차이는 크게 2가지다. 우선 워크아웃 절차에 참여하는 채권단의 범위를 은행, 보험 등 채권금융회사에서 회사채 등을 보유한 모든 금융채권자로 확대했다. 기업 자금조달에서 은행대출 등 간접금융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해 채권금융사만 참여하는 구조조정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구조조정 관여자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또한 기촉법 적용 대상을 총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대기업에서 30억원 이상 중소기업으로 확대했다. 신기촉법이라는 무기를 쥔 금융당국은 오는 4월 말까지 금융권 신용공여액 1조3581억원 이상인 주채무계열을 대상으로 재무구조 평가를 완료한 뒤 5월 말까지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게 할 계획이다. 이어 오는 7월 초에는 대기업 구조조정 대상을, 11월 초에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할 예정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