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하마’. 한국에서 아이 한명을 키우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소득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마찬가지다. 아이가 있는 가정의 가계수입 중 절반은 대부분 아이를 위해 지출한다. 그야말로 돈이 아이를 키우는 세상이다.
‘출산비용, 기저귀와 분유 값,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교육비, 입시학원비, 대학등록금…’. 대한민국 부모들이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데 쓰는 주요 양육비 목록이다. 여기에 장난감을 비롯한 의료비, 옷값, 교재 및 재료비, 용돈 등 부가적 비용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아이 한명을 낳아 사회인으로 키워내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자료를 토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총 양육비는 3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출생 후 대학졸업 때까지 22년 동안 들어가는 돈을 합산한 결과로 재수, 휴학, 어학연수, 결혼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불과 6년 전 2억5000만원과 비교하면 20%가량 증가한 수치다.
‘억’ 소리나는 비용만큼이나 더 큰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출산과 육아비용. 한 소비자단체가 집계한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 10명 중 8명은 아이 양육비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가 돈과 맞물려 가정경제를 흔드는 주체가 된 것이다. 임신에서 양육에 이르기까지 아이에게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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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없으면 임신도 못한다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직장인 최소연씨(31)는 의사로부터 처음 임신 사실을 들었을 때 ‘나도 이제 엄마가 된다’는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최씨 앞으로 계산서 한장이 날아왔다.
임신확인을 위해 받아야 하는 초음파 검사비용이었다. “4만800원입니다.” 1분여의 짧은 검사를 마치고 받아든 영수증은 앞으로 벌어질 지출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2주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서 받아야는 기본검진은 왜 이리도 많은지….
산전검사(11만5000원)부터 1차 기형아검사(8만9000원), 정밀초음파(8만7000원), 당뇨검사(8만9000원), 입체초음파(6만7000원), 막달검사(5만3000원) 등을 비롯해 꼭 챙겨먹어야 하는 엽산(11만원), 비타민(7만5000원), 철분제(9만원)까지 39주 임신기간 동안 최씨가 병원에 지불한 비용은 95만원이었다. 여기에 제왕절개 수술비용과 5박6일의 1인실 입원료 등 150만원이 더해져 총 245만원이 병원비로 지출됐다.
물론 병원비만으로 출산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배냇저고리, 속싸개, 겉싸개까지 신생아에게 필요한 옷은 다양하고도 많았다. 신생아 필수품으로 불리는 젖병소독기(15만원)부터 유아용세탁기(45만원), 이불(37만원), 욕조(4만원), 유모차(185만원), 범퍼침대(23만원), 매트(3만원), 카시트(25만원), 애착인형(5만원), 장난감(30만원), 체온계(8만원) 외에도 보습크림, 물티슈, 면봉, 세안제 등 아이용품은 도무지 사도 사도 끝이 안 보였다. 특히 ‘유기농 딱지’라도 붙으면 어느새 제품값은 두배로 뛴다. 이렇게 최씨가 육아용품을 사는 데 들인 돈은 490만원.
어디 그뿐인가. 이름만 태아일 뿐 각종 선천성 질환과 수술비를 보장하는 태아보험료로 7개월간 지불한 비용 39만원. 불어나는 배를 감당하지 못해 구입한 산모용 속옷과 의류, 복대와 손목보호대 비용 40만원. 평생 한번뿐인 만삭의 몸을 기록하기 위한 만삭촬영비용 60만원. “산후조리 사치는 낭비”라며 선택한 중간급 산후조리원 비용 310만원. 최씨가 임신부터 출산까지 지난 10개월간 들어간 비용을 추산한 결과 약 1170만원에 달했다.
최씨가 대한민국 표준 30대 여성임을 감안하면 요즘 아이 한명이 태어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이 1000만원가량 되는 셈이다. ‘고운맘카드’라 불리는 국가지원금 50만원을 포함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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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부터 23세까지 총 3억원 들어
고등학생 아들과 5살된 딸아이를 키우는 윤경숙씨(49)는 최근 한 마트의 파트타임 사원으로 입사했다. 가장 큰 이유는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 윤씨의 남편은 중소기업 부장으로 월 수입이 세후 약 500만원이다. 이 정도면 수입이 적은 것도 아니지만 윤씨의 가계부는 늘 적자. 원인은 육아와 교육비에 있었다. 두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만 매달 350만~400만원에 달한 것.
윤씨 부부의 지출내용을 살펴보자. 5살 난 딸에게 매달 들어가는 돈은 어린이집 비용 50만원(보육료 35만원+특기활동비 15만원). 여기에 식비, 의류비, 의료비, 장난감까지 합치면 둘째 아이에게 드는 비용만 월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만 1세부터 5세까지 아이 한명당 드는 비용이 월평균 80만원이다.
조금 커서 초등학교에 진학해도 마찬가지다.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 태권도학원 등 기본적인 학원만 보내도 한달에 50만원은 족히 나간다. 과도기인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막대한 사교육비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큰 아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역시 적지 않다. 체육을 전공하는 아들의 교육비가 어마어마하다. 최소 매달 100만원씩 학원에 바쳐야 한다. 여기에 주요 과목 과외비, 교재비와 교복, 용돈까지 합치면 아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월 200만~250만원. 남편의 월급 대부분이 두 아이 양육비로 지출되는 것이다.
최씨와 윤씨 부부를 기준으로 성인까지의 양육비를 계산해보면 ▲태어날 때 1000만원 ▲영아기(1~4세) 3000만원 ▲유아기(5~7세) 3500만원 ▲초등학교(8~13세) 7500만원 ▲중·고등학교(14~19세) 8900만원 ▲대학교(20~23세) 7800만원 등 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 총 3억1700만원이 드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3억원이나 되는 높은 출산 및 양육비용에 대해 개인이 아닌 사회적 해결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출산·고령사회 연구소 한 관계자는 “양육비용의 상당 부분이 과소비적 풍토와 관련이 깊은데 내 아이에게 남들 만큼 해주고 싶다는 심리 때문”이라며 “이 같은 현상을 일부 부모의 몰지각으로 치부하는 시각은 이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직장을 가진 여성을 기준으로 하는 출산정책과 사회제도가 필요하며 비용부담과 사회 분위기를 개인에게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