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가 강력 반발에 국방부 금연정책 ‘겹주름’

필립모리스·JTI코리아가 이달부터 군 국방마트(PX)에 자사 담배를 납품하기 시작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국방부가 군납담배에 대해 경쟁입찰방식을 도입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군에서도 외산담배를 판매할 수 있게 됐지만 국내 잎담배(엽연초)농가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국방부가 6월부터 한층 강화된 금연정책 실시를 예고해 외산담배제조사의 시름이 깊다.


/사진=뉴시스 박문호 기자
/사진=뉴시스 박문호 기자

◆첩첩난관 ‘군납담배’

국방부는 지난달 13일 군납담배 심사 결과 필립모리스 ‘말보로 골드 오리지널’, JTI ‘메비우스 LSS 윈드블루’, KT&G ‘레종 프렌치 블랙·보헴시가 슬림핏 브라운’ 등 4종을 신규 군납담배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PX에 납품되는 담배는 20여종으로 매년 심사를 통해 4~5개의 담배를 탈락시키고 새로운 종류의 담배를 선정한다. 이번에는 ▲보헴시가 미니 5mg ▲Esse 수 ▲레종 프레쏘 1mg ▲보헴시가 쿠바나 1mg 등이 제외되고 빈자리 중 절반을 사상 처음으로 외산담배 2종이 채우게 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심사를 진행했다”며 “맛, 디자인, 가격 등을 고려해 높은 점수를 받은 품목을 PX 납품담배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외산담배의 군납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당장 전국 잎담배농가에선 외산담배제조사들이 국산 잎담배는 전혀 구매하지 않는 가운데 군대에까지 판매망을 넓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립모리스와 JTI는 국내산에 비해 50~100% 값이 싼 수입산 잎담배만 사용한다.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외산담배제조사들은 국산 잎담배를 전혀 구매하지 않는데 외산담배가 PX에 들어가면 그만큼 KT&G의 잎담배 수매량이 줄게 되고 결국 국내 농가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군인들이 피우는 담배까지 외산담배가 공급되는 것은 국부유출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필립모리스는 내년부터 90억원 상당의 국내산 잎담배를 구입해 사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전체 매출액(지난해 기준 8108억원)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어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산 잎담배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후 세부사항을 놓고 엽연초생산조합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JTI는 필립모리스(경남 양산), BAT(경남 사천) 등 다른 외산담배제조사와 달리 독자적인 국내 생산시설이 아예 없다. 대신 KT&G 신탄진공장 일부를 빌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제품을 생산 중인데, 올해를 끝으로 국내에서 철수해 해외에서 제조한 담배를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담배업계 관계자는 “군납담배는 1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만큼 국내생산 없이 전량 수입에 의존할 경우 재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처음으로 군납업체로 선정된 JTI가 군납제품은 국내에 남기고 다른 종류만 철수할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KT&G가 총매출액의 3%가량(808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반면 외산담배제조사는 매출액 대비 0.02~0.1%(5600만~3억7100만원)만 환원하며 수익의 대부분을 모국에 송금한다는 점도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잎담배농가들은 ‘외산담배를 PX 납품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국방부에 재심의를 요청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민 정서를 좀 더 고려해야 했다”며 국내 잎담배농가에 힘을 실어주며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선 국방부 장관도 부정적 시각을 보이며 사상 처음으로 외산담배 군납을 허용한 것이 외산담배제조사의 소송 제기 등 지속적 압박에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필립모리스와 BAT는 이번 군납 심사를 앞두고 9년 연속 군납담배 심사에서 탈락한 게 부당하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담배업계 관계자는 “군납담배는 규모 자체가 큰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두 회사 모두 선정될 경우 군이 외산담배제조사 압박에 밀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평가점수가 더 높은 1곳만 선정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군에서 외산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장병들은 제대 후에도 같은 담배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재 40%를 넘어선 외산담배 점유율이 앞으로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말보로 골드 오리지널, 메비우스 라이트. /사진제공=각사
(왼쪽부터)말보로 골드 오리지널, 메비우스 라이트. /사진제공=각사

◆국방부 ‘담배와의 전쟁’ 예고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6월 말부터 장병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금연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는 장병들에게 ▲먹는 금연치료제 처방 ▲금연구역 단속 강화 ▲금연운동 성과 부대 휴가 및 포창 등의 조치를 담은 강력한 금연정책 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나아가 군 안팎에선 최근 몇년간 정부 차원의 금연정책 시행 이후 성인 남성 흡연율은 30%대로 떨어졌지만 군 장병 흡연율은 여전히 4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PX 담배 판매 금지 등 더 강력한 금연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결국 필립모리스와 JTI는 군납업체로 어렵게 선정되자마자 또 다른 난관에 둘러싸인 형국이 됐다. 이에 대해 외산담배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금연정책 확대와 관련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다”며 “다만 합리적인 규제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