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을 지켜본 직장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컴퓨터가 프로기사보다 바둑을 더 잘 둔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사람들은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일자리가 위협받을 경우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직장생활을 마친 시니어는 승승장구하던 인생이 저물었다는 기분에 우울증에 빠진다.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 교수는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직업을 잃은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최근 '앙코르시니어'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로 인한 상실감을 떨치기 위해 제2의 직업을 찾아 나선다. 시니어에게 재취업은 경제적 이익은 물론 신체적·정신적인 건강도 증진시켜 인생을 '앙코르'하는 효과를 준다.

베이비부머의 재취업 열기로 지난 3월 기준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371만2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 2580만명의 14.3%에 달했다. 사회초년생인 20대 취업자는 이보다 5만9000명 적은 365만3000명이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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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험 분야 진출, 창업열기 ‘후끈’
앙코르시니어의 특징은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했고 다른 연령층보다 심리적·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 '직업'(job)뿐 아니라 ‘일’(work)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회 구성원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가지고 싶어한다.

따라서 재취업에 성공한 시니어들은 평생 일하던 업무와 상관없이 전혀 모르는 분야에도 과감히 도전한다. 10명 중 6명은 기존의 경력을 살려 같은 분야의 회사에 들어가지만 4명은 미경험 분야에 진출한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가 구직회원 중 재취업에 성공한 40세 이상의 중장년 1724명을 조사한 결과 미경험 분야에 취업한 중장년은 653명(37.9%), 전공 관련 분야에 진출한 중장년층은 1071명(62.1%)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생계유지가 여의치 않아 단기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도 늘었다. 지난 3월 60세 이상의 임시직은 11만7000명으로 지난해 8월 9만5000명에서 2만2000명 증가했다. 시니어의 임시직 취업자는 매달 10만명 안팎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지난해 11월에는 11만3000명, 12월에는 13만8000명까지 치솟았다. 임시직은 통상 계약기간이 1개월 이상 1년 미만인 단기 일자리를 뜻한다. 이들 시니어는 준비되지 않은 은퇴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 퇴직 후 부부·자녀와의 갈등 등에 부딪혀 서둘러 재취업에 나선 경우다.

은퇴자금을 기반으로 창업에 나선 시니어도 증가했다. 지난해 8월 기준 50대 이상 자영업자 숫자는 409만4000여명으로 1년 새 6만명가량 늘었다. 전체 자영업자 중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47.5%에서 2014년 말 57.6%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20·30대의 자영업자 비중은 각각 5%포인트가량 줄어든 반면 중장년층 이상의 창업은 늘었다.

시니어의 자영업 과밀화 현상은 자칫 개인파산으로 몰릴 우려가 있으나 은퇴 후 자신의 영업점을 가져 주인의식이 단단해지고 잘되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정년이 없기 때문에 오랜시간 사업을 유지하다 자녀에게 사업을 물려줄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과도한 부채에 의존해 성급하게 창업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창업이 유사업종에 쏠리지 않고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경영노하우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앙코르 시니어] 제2 직업, 청춘을 소환하라

◆불안은 그만, 핑크빛 재도약하려면
앙코르시니어는 풍부한 인맥과 조직생활, 사회적 연륜 등을 겸비해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눈높이를 낮추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재취업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창업을 비롯해 재취업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먼저 연봉·규모·근무조건 등에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화려했던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눈높이를 너무 낮출 필요는 없다. 일자리가 생기면 무조건 시작하려는 접근은 육체가 피로에 지쳐 쉽게 포기할 수 있다.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전략도 요구된다. 전문적인 자격증은 경력과 함께 재취업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밖에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본인의 인생관에 부합하는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일인지 검토하는 것도 제2의 직업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앙코르 시니어] 제2 직업, 청춘을 소환하라

"새로운 삶을 디자인하라"
- 한주영 50플러스코리안 회장
한주형 50플러스코리안 회장은 40대 후반 금융전문가로 활약하던 시절,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인 소개로 만난 한 교수는 한 회장에게 노년학을 공부할 것을 권고했고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노년학 석사과정을 밟은 후 한국에 돌아와 교보생명의 노년 전문위원으로 재취업했다.

한 회장은 강연과 컨설팅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들이 큰 시련에 빠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50대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직장생활뿐 아니라 여성은 갱년기, 남성도 신체적인 변화를 겪는 시기인데 이들을 위한 제도와 정책은 부실한 상태였던 것.

이에 한 회장은 50대 이상 퇴직자에게 퇴직아카데미, 일자리 안내사업을 제공하는 50플러스코리안을 세웠고 앙코르시니어를 위한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퇴직 후 인생의 목적, 가치와 의미를 담은 새로운 직업을 가질 것을 조언한다. 한 회장은 "은퇴 후 무엇을 할지 모르는 당혹감에 빠지기 전에 새로운 삶을 디자인하고 자기계발에 몰두하면 미래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제4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