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증권거래계좌를 열 수 있는 ‘비대면 계좌개설’이 시행된 지 4개월째다. 비대면 계좌개설은 국내에서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어 도입 당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증권사의 성적표는 우수하다. 비대면 계좌개설 고객이 은행보다 4배가량 많다. 비대면시스템은 증권사 수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브로커리지(주식매매 중개)부문의 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 다만 비대면 고객을 잡기 위한 증권가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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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명 중 1명, 비대면 증권계좌 개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22일 이후 3개월간 19개 증권사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계좌를 개설한 것은 12만7581건이다. 지난해 한달 평균 증권사에서 만든 주식계좌가 17만건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새로 주식을 시작하는 고객 4명 중 1명이 비대면 계좌개설을 이용한 셈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지점수로 대면채널이 부족한 증권사의 잠재 계좌개설 수요가 비대면 계좌개설로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보다 3개월 먼저 비대면 계좌개설을 시행한 12개 은행의 경우 6개월간 3만1212건의 계좌만 비대면 방식으로 개설됐다. 은행 지점수가 7400개인 것에 비해 증권사 지점수는 1100개 밖에 되지 않는 점이 오히려 비대면 계좌개설을 늘렸다.


비대면 계좌개설의 증가는 증권사에 일반 계좌개설 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준다. 기존에는 고객이 주식계좌를 만들려면 증권사 지점이나 위탁을 맡긴 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비대면 방식으로 계좌를 개설하면 지점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서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전체 증권사 지점에서 개설한 한달 평균 증권거래계좌는 149개다. 한달 평균 비대면 계좌개설 수는 4만2527개. 이를 나눠 보면 비대면 계좌개설이 약 285개 지점의 역할을 대신 한 셈이다. 또 증권사가 은행에 주는 수수료도 아낄 수 있다. 통상 증권사는 고객 유치를 위해 은행에 계좌개설 대행을 맡기고 한 계좌당 1만원가량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키움증권의 경우 매년 은행에 지급한 수수료가 250억원에 달한다. 아울러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오프라인 지점 프라이빗뱅커(PB)에게 상담을 받는 사례도 늘어나 대면 영업까지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혜택 봇물… 고객잡기 ‘치열’

알토란 같은 비대면 계좌개설 고객을 잡기 위한 증권사의 경쟁은 치열하다. 지점운영비와 수수료 등을 절약할 수 있는 만큼 그 돈을 마케팅비에 쏟은 것. 증권사들은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할 경우 주식거래 수수료를 일정기간 면제해주거나 3~5%에 달하는 높은 수익률의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고객 유치에 나섰다. 고객은 마케팅 혜택을 얻고 전체 주식매매시장 규모도 커지면서 일석이조 효과를 얻은 셈이다.


비대면 계좌개설에 나선 19개 증권사 중 가장 빠르게 치고 나간 곳은 키움증권이다. 키움증권은 지난달 20일까지 총 4만4888개의 계좌를 비대면으로 개설했다. 전체건수의 35%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키움증권은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온라인증권사라는 강점을 살려 고객기반을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본인확인 절차 간소화를 위해 영상통화를 고객이 선택하면 바로 고객센터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또한 많은 영상통화 인증을 처리하기 위해 24명의 전담 직원을 배치했고 인증 가능시간을 오후 5시에서 밤 9시까지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또 NH투자증권은 모바일증권 브랜드 ‘나무’(NAMUH)를 출범하고 비대면 실명확인방식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개설비용이 감소된 만큼 주식거래 수수료도 0.01%까지 낮추고 사용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휴대전화 번호를 고객 CMA 계좌번호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 신속·정확은 필수… 생체인증 도입 ‘잰걸음’
증권사 비대면 계좌개설이 큰 폭으로 늘었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일단 모바일 계좌개설에 익숙지 않은 고객의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비대면 계좌개설을 시도한 고객 가운데 최종 개설에 성공한 고객은 전체의 65% 수준이다. 10명 중 4명은 도중에 정보입력을 잘못하거나 본인인증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계좌개설을 포기한 것. 현재 본인인증방식으로 영상통화나 본인계좌에서 신규계좌로의 일정금액을 이체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연결이 끊어지거나 확인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고객들의 불만이 생겼다.


비대면 계좌개설을 포기한 A씨(33)는 “수수료가 싸다는 말을 듣고 비대면계좌를 새로 만들려고 했는데 개설 도중 오류가 났다”며 “다시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기 싫어서 그냥 계좌개설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증방식, 특히 생체인증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1월 일부 증권사들과 함께 바이오인증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IT위원회’를 발족했다. 금융결제원, 코스콤 등은 각기 다른 콘셉트로 생체인증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금융결제원은 안전하게 보관하는 측면에서, 코스콤은 단말기에서 사용자 편의성을 증진시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생체인증 기술은 스마트폰이 이를 지원하는지 여부와 보안이 얼마나 철저한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이런 부분을 해소하면 증권사도 고객의 편의성 증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생체인증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