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군포에서 안양으로 출퇴근하는 A씨는 회사에 구두를 두고 다닌다. 워킹화를 신고 하천길을 따라 도보로 출퇴근하다 보니 점차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자연스레 그의 신발장에는 워킹화가 쌓였다. 비가 올 때 신는 방수신발을 비롯해 계절별로 다양한 워킹화를 사 모으는 게 취미가 됐다.
‘걷기 열풍’이 아웃도어업계의 흐름을 단박에 바꿔놨다. 부담스러운 등산장비를 벗은 사람들은 도심과 숲을 오가며 가볍게 걷기에 적절한 워킹화를 찾았고 일상과 어울리면서도 적절한 기능성을 갖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 |
K2 플라이워크 워킹화 옵티멀브리드3. /사진제공=K2 |
◆등산화 가고 워킹화 오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격히 성장한 국내 아웃도어업계는 최근 몇년 새 어려움에 처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광풍처럼 시작된 등산복 열풍으로 많은 업체가 사업을 급격히 확장했다”며 “트렌드에 의지해 성장했던 사업인 만큼 유행이 끝나자 사업축소도 급격히 이뤄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웃도어업계는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각사의 매출집계를 살펴보면 올 1~10월까지 국내 상위 10개 아웃도어브랜드의 매출이 일제히 감소했다. K2와 블랙야크, 라푸마, 밀레, 콜럼비아 등은 매출이 전년대비 15% 이상 줄었고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제외한 대부분의 브랜드가 매출 역성장을 기록 중이다. 더 이상 사람들이 일상에서 등산복을 찾지 않자 아웃도어시장이 활력을 잃은 것이다.
이에 아웃도어업체들은 다른 먹거리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등산복 수요감소를 만회하고 추후 판매증진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아웃도어업계의 눈은 자연스레 ‘걷기 열풍’으로 향했다.
![]() |
아이더 모멘텀 라인. /사진=머니투데이 DB |
K2의 ‘플라이워크’ 라인이 대표적 성공사례다. 워킹화의 개념이 생소했던 2013년 K2는 워킹에 특화된 브랜드라인 플라이워크를 론칭해 성공을 거뒀다. 기능과 디자인에 따라 10만~20만원대의 다양한 모델을 선보인 플라이워크 워킹화는 걷기 열풍과 일상에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는 트렌드를 공략했다.
러닝화와 스니커즈처럼 심플한 디자인에 등산화의 접지력, 쿠셔닝, 미끄럼 방지 등의 기술을 적용해 기능성과 함께 평소에도 코디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 인기요인으로 평가받는다.
K2에 따르면 플라이워크 라인은 2013년 론칭 후 지난해까지 약 70만족이 판매됐다. K2의 전체 신발매출 중 플라이워크 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36%, 지난해 45%에 달했고 올해도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플라이워크가 성공하자 아웃도어업계는 워킹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 익스트림의 기능성을 강조한 등산화나 트레킹화에서 벗어나 트레일링이나 가벼운 산책 등에 적합한 기능을 강조한 것.
네파는 지난 4월 ‘프리워크’를 선보였다. 통기성을 강화해 더운 여름 걷기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머렐은 심플한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를 강조한 ‘버센트’를 선보였고 밀레는 러닝과 트레킹 모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디노스’를 출시했다.
![]() |
네파 프리워크. /사진=머니투데이 DB |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로 재편되나
변화는 워킹화에 그치지 않는다. 기능성 제품으로 성장한 아웃도어업계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걷기 열풍을 통해 ‘일상 속 가벼운 운동’, ‘활동적 일상’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며 “이 흐름을 타고 아웃도어업계는 단순한 기능의 강조가 아닌 패션과 일상 속 활용도를 중요시하는 브랜드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아웃도어업체들이 모두 매출감소에 허덕이는 가운데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이 ‘나홀로 성장’을 거둔 상황을 업계는 이런 관점에서 해석한다. 2012년 포화상태인 아웃도어시장에 등장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젊은 층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했다.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눈에 띄는 색깔 일색이던 패딩시장에서 채도를 낮춘 색상의 제품을 출시해 평상시 입기에 부담이 없도록 했고 절개선을 최소화하고 허리선을 강조하는 등 미적 요소를 더했다. 마케팅도 달랐다. 눈 덮인 산이 아닌 기차역이나 도심의 카페에서 광고를 촬영해 일상과 어우러진 모습을 강조했다.
기존 아웃도어브랜드도 이 흐름에 올라타는 모양새다. 기존의 익스트림브랜드들이 이 흐름을 반영한 제품을 내놓거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라인을 별도로 출시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현재 전체 제품의 40~60%를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으로 구성했다.
현재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를 지향하는 브랜드는 10여개에 이른다. 노스페이스는 화이트라벨 브랜드를 통해 라이프스타일 라인을 선보이고 컬럼비아는 브랜드의 정체성 자체를 변화시켰다. 블랙야크도 최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나우’를 론칭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이미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가 대세로 자리매김했다”며 “현재 아웃도어의 메인 타깃이 40~60대 중장년층인 반면 라이프스타일은 잠재고객인 30~40대에 중점을 두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걷기 열풍이 과거 등산 열풍만큼의 성장세를 보장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양한 레저 액티비티를 아우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