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손해·근거, 모두 따져봐도 의혹 자초 행보 


512조원을 굴리는 세계 3위 연기금 국민연금공단이 검찰의 표적이 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주요 관련자의 ‘뇌물 혐의’ 적용을 위한 중요한 고리로 지목돼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는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에 가장 큰 금액을 전달한 삼성이 그 대가로 국민연금으로부터 지난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통합 지지를 받아낸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의혹을 자초한 국민연금의 수상한 행보를 살펴봤다.

특수본은 지난 11월23일 국민연금본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사무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다음날에는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소환조사도 실시했다. 국민연금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에 최씨나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이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찬성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월24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찬성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월24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핵심은 국민연금 결정에 최씨나 청와대 측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여부다.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0.35로 정해진 합병비율이 제일모직 지분을 40% 이상 보유한 오너일가에만 유리하고 삼성물산 측에는 불리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이 가운데 제일모직 주총에서는 만장일치로, 삼성물산 주총에서는 69.53% 찬성으로 안건이 통과됐다. 
◆의혹1/절차상 하자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61%를 보유한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합병 찬성을 결정하며 외부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건너뛰고 내부 투자심의위원회만 거쳤다. 이 과정에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업체가 반대를 권고했지만 국민연금은 이를 무시했다. 불과 한달 전쯤 이뤄진 SK와 SK C&C 합병 때 외부 전문위원회에 의결권 행사방향을 맡겼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의 고발 이후 국민연금이 검찰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작성한 내부 문건에서도 내부 인사로만 이뤄진 의사결정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도 전문위원회 결정을 생략하고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주재로 열린 투자위원회만 거친 이유가 미심쩍다고 보고 있다. 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합병 반대 권고를 외면한 이유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개별기업에 대한 의결권행사 결정은 투자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며 투자위원회 스스로 찬반 판단이 곤란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한다”며 “내부 책임투자팀, 리서치팀 등의 검토 내용을 토대로 안건을 다각적으로 심의해 투자위원회에서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혹2/손실 알고도 찬성

하지만 합병을 결정한 지난해 7월10일 투자위원회 회의록에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통해 <머니S>가 확보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합병 찬성론자였던 채순규 리서치팀장은 “우리가 산출한 양사의 적정 가치에 기초해 합병비율을 구해보면 1대0.46”이라며 “합병비율에 있어서는 삼성물산이 다소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제일모직 주식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삼성물산의 손실이 제일모직 수익으로 상당 부분 상쇄된다”며 “양사 주식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에는 합병비율만으로 찬반을 결정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합병 시너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경직 해외증권실장은 “기업지배구조원이 자체로 산출한 합병비율(1대0.43)을 근거로 합병 반대 의견을 권고했는데 삼성이 제시한 합병비율과 국민연금이 산출한 합병비율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냐”며 합병 반대 목소리를 냈다.

또 두 회사의 주식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일모직 지분으로 삼성물산 손실을 모두 커버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국민연금이 자체 산출한 적정비율보다 삼성이 제시한 기준대로 합병할 경우 3468억원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도 논의됐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및 주식가치 상승 여지 등을 재무적 투자자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찬성한 것”이라며 “삼성이 제시한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었으나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적법한 비율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 효과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23일 검찰이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 한 가운데 직원들이 로비를 오가고 있다. /사진=뉴스1 DB
지난 11월23일 검찰이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 한 가운데 직원들이 로비를 오가고 있다. /사진=뉴스1 DB

◆의혹3/시너지 효과 근거 불분명

문제는 국민연금이 예상한 시너지 효과도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투자위원회 회의 당시 채 리서치팀장은 “자체 산정한 합병비율과 삼성 측 합병비율로 인한 합병 이후 지분율 차이가 약 0.44%포인트로 이를 상쇄하려면 시너지가 약 2조원 이상 발생해야 한다”며 “양사 합병으로 기업가치가 약 6% 정도 증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인식 리스크관리센터장은 “합병 시너지에 대한 전망을 근거로 미래가치를 현재 시점에서 긍정적이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검증이 곤란해 장기 주주가치가 상승하는 부분에 대해 실무 수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윤표 운용전략실장도 “주식운용실의 1대0.46 합병비율이 목표주가 중립 정도인 것 같고 시너지가 추가돼야 1대0.35가 정당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주식운용실의 자료는 시너지 효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이처럼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투자위원회는 당일 표결을 강행해 참석자 12명 중 8명 찬성으로 입장을 확정했다.

이와 관련 심상정 대표는 “대가 없이 255억원을 뜯길 삼성이 아니다”며 “삼성은 국민연금의 도움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킨 만큼 돈을 뜯긴 것은 삼성이 아니라 국민이다”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