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현대상선이 2M과의 얼라이언스(Alliance)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엔 구조조정 중인 해운사가 세계최대규모 동맹에 가입한다는 꿈 같은 일이 성사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협상의 이면을 꼼꼼히 살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번 협상의 공식명칭은 ‘2M+H Strategic Cooperation’이다. '2M'은 세계 1·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라인과 스위스 MSC가 모여 만든 해운동맹이며 'H'는 현대상선을 뜻한다. 문제는 +H 이후의 문구인데 말 그대로 현대상선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는 표현이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강경한 어조로 “해운동맹 가입에 실패했다”고 보도했고 국내외 관련업계에서도 반쪽짜리 가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
현대포워드 LA. /사진제공=현대상선 |
◆해운동맹 가입 맞나
현대상선은 이번 협상결과를 두고 “해운동맹과 마찬가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여기서 ‘마찬가지’라는 표현이 참 모호하다. 엄밀히는 동맹에 가입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자동차회사들이 신차 가격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새로운 품목을 대거 탑재했으니 사실상 가격인하”라고 주장하는 행태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2일 진행된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는 “이 문제를 키워 노이즈마케팅으로 이용하면 안된다”면서 “협력의 성격을 규정짓는 형태를 보면 다른 얼라이언스와 같으니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현대상선이 해운동맹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유 대표의 말처럼 ‘얼라이언스의 형태’에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운동맹 제휴단계는 선복매입(Slot Purchasing)·선복교환(Slot Exchanging)·선복공유(Vessel Sharing)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인 선복매입은 다른 해운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slot)을 사는 형태다. 선복교환은 이보다 조금 더 발전된 것으로 해운사가 개별 항로(loop)를 자체 선박으로만 구성하되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해운사 간 교환·운항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선복공유는 항로운영 시 동맹 해운사들의 배를 섞어서 운항하는 형태다.
2M은 ‘선복공유+선복교환’의 강도 높은 제휴관계로 묶였지만 현대상선은 이들과 ‘선복교환+선복매입’의 변형된 형태로 협상을 마쳤다. 이에 현대상선은 오션(Ocean)얼라이언스 등과 동일한 조건의 제휴형태며 타선사에 대한 배타성과 미 해사위원회(FMC)에 보고해야 하는 구속력 있는 제휴관계라는 점에서 명백히 해운동맹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현대상선 관계자는 “선복공유는 선박경쟁력에 따라 좌우된다”면서 “지금은 세계 어느 선사도 2M과 공유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2M도 얼라이언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1단계 협약은 3년간 지속된다. 이후 현대상선의 재무구조와 유동성이 개선되면 협력의 범위를 확대해 기존 2M과 동일한 ‘VSA 파트너’로 전환 가능한 조건이라는 게 현대상선의 설명이다.
긍정적으로는 재계약을 통해 2M의 멤버가 될 수 있어 보이지만 재무구조와 유동성 개선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게다가 3년 뒤에 다시 계약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진해운 물류대란 사태로 한국 선사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진 마당에 2M의 화주들이 현대상선에 화물을 맡길지도 관건이다.
결국 2M과 현대상선은 서로 부담을 느껴 전략적 제휴 형태로 계약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3년 뒤 추가계약과 관련한 문제는 그때 다시 고민하겠다는 서로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 |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사진제공=현대상선 |
◆얻은 것은… 실리 챙긴 국적선사
해운업계에서는 애초부터 현대상선이 2M과 대등한 자격을 얻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체급 차이가 너무 심해서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2M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당사자는 지난 7월14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협상을 시작했고 지난 11일 파트너십에 대해 발표하며 협상을 마쳤다.
현대상선은 3년이라는 짧은 계약기간과 선박 수를 늘리지 않아도 필요한 선복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협상의 성과로 꼽았다. 앞으로 몇년간 해운업계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거란 업계의 분석에 따라 든든한 파트너와 손을 잡는 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선대규모·재무상태·수익성 등 모든 면에서 2M에 열위인 상황에서 실리를 챙긴 최선의 결과라는 평이다. 무엇보다 주력노선인 미주노선 경쟁력이 높고 아시아지역의 경우 2M의 영향을 받지 않아 소형 컨테이너선을 추가 투입할 수도 있다.
새로운 제휴가 시작되는 내년 4월부터는 현재 가입된 G6얼라이언스(3월 계약종료)보다 선복량이 20% 늘어나며 주력노선인 미주서안은 항로가 1개 늘어 총 3개로 운영된다. 전체규모를 비교하면 현대상선은 2M의 7분의1 수준이지만 미주노선은 20~30% 차이로 좁혀진다. 이런 점 때문에 2M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유창근 대표는 “해운업계의 치킨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인 데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면서 “앞으로 2~3년간 내실을 다지며 질적 성장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대상선이 이번 협상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가치는 ‘시간’이다. 채권단의 전폭적 지원 아래 국내 유일 국적해운사로 자리매김한 현대상선이 상처를 치료하고 체력을 기를 여유가 생긴 셈이다.
◆2021년 점유율 5% 달성 목표
현대상선은 ‘2021년까지 시장점유율 5%, 영업이익률 5% 달성’을 통해 글로벌 선도 해운사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주노선은 2M과 함께 물량을 소화하고 아시아노선은 2M과 별도로 고려해운·흥아해운·장금해운 등 국내 중견 선사와 ‘미니얼라이언스’를 구성해 대응한다. 이와 함께 지난 10월 말 정부가 발표한 ‘해운업 경쟁력 강화방안’도 활용할 예정이며 채권단도 전폭적 지지를 밝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현대상선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면서 “결정의 옳고 그름은 내년 상반기면 드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