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의 후계자들이 다시 주목 받는다. 재계의 대표적인 ‘은둔형 경영자’로 불리던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45)이 최근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해서다. 정 사장은 지난달 15일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에서 열린 대구 신세계점 개점 행사에 참석했는데, 입사 20년 만의 첫 공식행사 참석이다.

반면 정 사장의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49)은 활발한 대외활동과 고객과의 적극적 소통으로 유명하다. 본인이 총괄하는 이마트, 복합쇼핑몰 등과 관련한 주요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고 친근한 글귀로 자사 신제품 홍보를 직접 하기도 한다.


◆베일 벗은 은둔형 경영자

정 부회장은 2006년 정 사장이 신세계조선호텔 상무일 때 부회장 직위에 올라 당시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재계 안팎에서 나왔다. 하지만 2015년 12월 정 사장이 신세계그룹의 두축 중 하나인 백화점 부문을 책임지면서 기류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왼쪽)과 정유경 총괄사장. /사진=신세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왼쪽)과 정유경 총괄사장. /사진=신세계

특히 지난해 4월에 남매간 주식교환을 통해 정 부회장은 이마트 주식만, 정 사장은 신세계 주식만 보유하게 되며 외형상 두 사람의 위치는 거의 대등해졌다.
해당 주식거래를 통해 만들어진 지분비율을 보면 절묘하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74)은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각각 18.22%씩 가진 양사 최대주주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 지분만 9.83%를 가진 이마트 2대 주주가 됐고, 정 사장은 신세계 지분만 9.83%를 가진 신세계 2대 주주가 됐다.


이와 관련 신세계 측은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사장이 각자의 사업영역에 집중하기 위한 주식교환으로 경영권 승계와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일하게 나눠진 지분 탓에 재계에선 남매가 이마트와 신세계를 나눠서 승계를 하거나 주요 사업부를 나눠 맡아 경쟁을 시킨 후 경영 성적표가 좋은 이에게 신세계그룹을 책임지게 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핵심 기업(신세계·이마트)의 지분은 남매가 동일하게 나눠가졌지만 다른 계열사까지 들여다보면 정 부회장이 좀 더 유리한 상황이다.

신세계그룹 33개 계열사 중 상장사는 신세계·이마트를 포함해 7개인데 정 부회장은 알짜회사인 광주신세계 지분 52.0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또 신세계건설(0.8%), 신세계I&C(4.31%), 신세계인터내셔날(0.11%)도 보유 중이다.

반면 정 사장은 신세계를 제외한 다른 상장 계열사 지분은 신세계인터내셔날만 0.43% 보유하고 있다.   

◆두 가지 해석 낳은 절묘한 지분 배분

현재까지 보여준 성과를 봐도 정 부회장이 우위에 있다는 평이다. 그는 단독 경영을 맡았던 10년 전부터 신세계그룹의 성장을 주도했고 2011년 인적분할로 신세계와 이마트가 분리된 후에도 이마트 일렉트로마트, 피코크, 노브랜드, 스타필드 하남 등 다양한 성과물을 내놨다.

정 사장은 지난해 강남·센터시티점을 증축했고 김해, 대구 등에 대형 신규점을 개장하는 등 백화점 부문을 맡은 후 공격적 경영 행보를 보였다. 또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도 추가로 따냈다. 짧은 기간 충분히 경영 능력을 보여줬지만 재계 안팎에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의 후계 구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명희 회장의 선택이다. 결국 승계 마무리는 이 회장이 보유한 주식이 어디로 증여되느냐에 따라 갈린다.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장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이마트 9296억원, 신세계 3157억원, 신세계건설 167억원 등 1조2620억원에 이른다.

다만 증여세율(50%)을 감안하면 어느 쪽으로 지분 증여가 이뤄지든 추가로 수천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각 부문에서 공격적 경영 행보를 보인 두 사람의 성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며 “남매 분리 경영으로 갈지, 아니면 성적이 더 좋은 쪽 단독 경영체제로 갈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